130년 된 ‘우리말 성경’, 한국 인쇄·출판의 초석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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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년 된 ‘우리말 성경’, 한국 인쇄·출판의 초석이 되다
  • 김목화 기자
  • 승인 2015.12.01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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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주일에 돌아보는 ‘한글 성경 보급’ 이야기

우리말 성서가 우리에게 오기까지

매년 12월 둘째주일은 ‘성서주일’이다. 성서주일은 하나님의 말씀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반포되어 읽혀질 수 있도록 전 세계 교회가 함께 지키고 있는 날이다. 전 세계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서를 묵상하며, 성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함과 동시에 성서를 더욱 사랑하며 읽고 연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한국의 ‘성서주일’ 제정
우리나라에서는 대표적으로 (재)대한성서공회가 성서 보급 사업에 앞장서고 있다. 올해로 창립 120주년을 맞은 대한성서공회는 국내 성서 사업 뿐만 아니라 성경이 필요한 다른 나라까지 적극 돕는 등 성서 사업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성서주일을 앞두고 관련 설교문이나 논문, 영상, 성경 번역 및 보급 통계, 매일성경읽기표 등 다양한 자료를 홈페이지(www.bskorea.or.kr)를 통해 보급하며 누구나 쉽게 성서를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성서주일을 지키기 시작한 때는 1954년이다. 하지만 매년 12월 둘째주일을 성서주일로 드리기까지는 수년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1885년 국내 최초로 개신교 선교사가 입국하고, 1895년 서울에 성서공회 사무실이 들어선 후 4년 뒤, 189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성서공회 주일’이 지켜졌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온 지 14년 만에 성서주일을 드리게 된 것은 타문화에 비해 빠른 편이다. 그만큼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말씀을 사모했는지 알 수 있다.

‘성서공회 주일’을 ‘성서주일’로 바꾼 것은 1900년, 그리고 전국 교회가 공식적으로 성서주일을 12월 둘째주일로 함께 지키기 시작한 것은 1954년이다. 이같은 변화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교회의 성장과 부흥이 ‘말씀’에 근거했다고 본다.

▲ 대한성서공회는 다수의 한글 고본 성서 원본을 보관하고 있다. 대한성서공회는 창립 120주년을 맞아 지난달 26일 서울 정동제일교회에서 한글 고본 성서 원본을 최초로 공개하는 전시회를 가졌다.

우리말 성경의 탄생
한국을 말씀으로 부흥 성장시킨 ‘우리말(한글) 성서’는 어떻게 발행될 수 있었을까? 지금으로부터 약 130여 년 전, 우리나라는 서구 성서공회들의 지원으로 우리말 성경을 번역하고 보급할 수 있었다. 

최초의 한글 성서 번역은 1872년 중국 선교사로 만주에 도착한 스코틀랜드연합장로회 소속 선교사인 존 로스(Jhon Ross) 목사의 헌신이 있었다. 그는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1882년 3월)를 시작으로 성경의 여러 부분을 중국 만주와 일본에서 한글 번역 작업을 진행했다. 순한글로 성서를 번역하고자 노력했던 존 로스 목사는 존 매킨타이어 선교사와 이응찬, 서상륜과 함께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번역했다.

▲ 1882년 발행된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

이외에도 우리나라 교인의 자발적인 성서 번역도 깊은 감동을 남긴다. 약 130여 년 전 조선 정부 관리로 지낸 온건 개화파 양반 이수정은 1882년 일어난 임오군란 당시 위기에 빠진 명성황후를 구해주고, 그 공로로 일본에 가는 기회를 얻는다. 일명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 도쿄에 간 이수정은 농학자 쓰다 박사를 만나 한문 신약성서를 읽고 복음을 받아들인다. 그로부터 7개월 후 이수정은 1883년 4월 29일 한국인 최초로 정식 세례교인으로 거듭난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시작한 이수정은 당시 미국성서공회 일본지부 루미스 총무의 권유로 성서를 번역하기 시작한다. 조선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한글 성서였다. 1년의 시간을 걸쳐 이수정은 제일 먼저 ‘현토한한신약성서(懸吐漢韓新約聖書)’를 내놓는다. 한문 성서에 나와있는 한자어의 음과 훈을 빌어 우리말 조사와 어미를 적는 방식으로 번역해 한국어 어법에 맞게 읽도록 만들어진 한글 성서였다.

당시 우리말 번역성서가 없을 때, 우리나라 교인들은 한문성서를 읽었다. 하지만 한문성서는 한국의 유식한 계층만이 읽을 수 있었다. 이수정이 번역한 성서는 일반 평민도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염두해 제작한 성서였다.

이후에도 이수정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순한글로 성경을 번역했다. 1885년 2월에는 ‘순한글 마가복음서’를 완성했다. 이 책은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 초기 한국 복음선교사들이 입국할 때 가지고 들어온 성서로, 공식적인 한글성서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 이수정은 이어서 신약성서마태전,신약성서마가전,신약성서누가전,신약성서요한전,신약성서사도행전을 탈고해 1884년 미국성서공회의 자금지원으로 요코하마에서 인쇄 간행하기에 이른다. 

▲ 1887년 발행된 ‘예수셩교젼셔’

한글 성서, 인쇄·출판 발전 동력돼
이후 대한성서공회의 꾸준한 노력으로 성서 번역은 이어져갔다. 구약과 신약이 단편으로 나뉘어 번역되고, 당시 성서주일이었던 1911년 5월 마지막 주일에 드디어 최초의 우리말 완역 성서인 ‘셩경젼셔’가 발간되었다. 성서 번역은 곧바로 성서 개역 작업으로 이어졌다. 개역(改易)은 ‘고친 번역’을 뜻한다. 26년에 걸쳐 구약 개역은 1938년이 되어서야 완성됐다. 신약 개역은 1926년부터 시작해 같은 시기에 마무리됐다.

대한성서공회는 단 한 번의 성서번역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시대의 흐름에 따른 언어의 변화에 따른 개정, 새로운 번역을 더해가며 완성도 높은 성서를 한국교회에 보급했다. 또 성서 번역과 개역은 한글 문화의 발전에도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1938년 ‘셩경 개역’의 초판은 서울에서 출판되었는데, 개역 작업을 하면서 이를 위한 한글 철자법의 정리와 성경을 인쇄하고 보급하기 위한 모든 설비들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 기독교가 성경 말씀으로 부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대한성서공회 권의현 사장은 “성서 보급의 역사를 살펴보면 믿음의 선조들은 성경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성경을 보급한 것이 아니라, 한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기까지 하면서 성경을 보급해 왔다”며 “적극적으로 성경을 보급했기에, 성경 말씀을 따라 사는 삶, 성경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의 토대를 이루어 왔을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성경을 보급하는 일도 감당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 1938년 ‘셩경젼셔’

성서를 사랑하는 한국교회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성서는 1998년 완료된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이다. 1949년부터 새로운 한글 맞춤법에 따라 ‘셩경 개역’을 개정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이후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이 출판되었다. 하지만 사용하는 도중 번역을 개선하거나 수정해야 할 곳들이 발견되었고, 성서학의 발전에 따라 원문의 의미를 더 정확하게 번역해 성경에 반영할 필요가 있었다. 1988년 문교부에서 새로운 ‘한글맞춤법’을 발표하면서 성경 표기법도 수정해야 했다. 1983년부터 작업이 시작된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은 ‘개역한글판’의 특성을 최대한 존중하며 시대와 언어의 변화를 감안해 꼭 고쳐야 할 부분만 개정되며 15년 후 완성됐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우리가 보는 성서로 이어져오고 있다.

읽기 쉽고, 이해도 잘 되는 ‘성경전서 개역개정판’을 내기까지에는 많은 우려와 걱정, 항의가 있었다. 이전의 성경으로 말씀을 접하고 공부했던 성도들의 반발이었다. 예를 들면 오늘날 표준어 ‘우레’가 이전에는 ‘우뢰’였다. 표준어가 ‘우레’로 사용되면서 개역개정판에도 ‘우뢰’가 ‘우레’로 표기되었다. 이를 보고 몇몇 성도들은 성경을 잘못 표기했다며 비판했다.

대한성서공회 번역실 국장 전무용 박사는 “당시 말씀을 너무나 사랑하고 사모했던 한국성도들은 말씀을 암송하고 열심히 공부했다”며 “개역개정판을 접하고 성서를 잘못 냈다는 항의와 의심에 당시 난감한 적도 많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나 사랑한 한국 성도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또 “전 세계의 언어는 당시 문화를 반영해 변화하고 있다. 교과서도 시대적 언어 상황에 따라 변화하듯, 성서도 마찬가지로 현대에 맞춘 언어를 반영해 변화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새로운 세대가 태어나면 그들에게 맞는 성경을 제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자 자연스러운 일이다. 성서공회는 앞으로도 시대에 맞춰 성서를 보급함으로써 오늘을 사는 세대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쓸 것”이라고 덧붙였다.

12월 둘째주일은 대강절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대강절이다. 성서주일을 맞아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이 된 말씀을 묵상하며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다려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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