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수의 문화칼럼] 기독교 문화와 신학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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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의 문화칼럼] 기독교 문화와 신학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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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1.1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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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의 신학문화 (3)

반 퍼슨(C. A. van Peursen)은 문화 발전의 모형을 제시하면서 현대사회에서 나타난 문화 이해의 두 가지 변화를 지적했다. 하나는 각 사람과 각 민족의 삶의 표현을 문화로 보는 것과, 다른 하나는 문화를 역동적으로 보는 것이다. 그는 문화를 “변화에 관한 이야기요, 기존 문화 패턴의 변형에 관한 역사”로 본다. 생명이란 결코 멈추어 있지 않는 특징이 있고, 그 결과 환경에 영향을 주고 또 받는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삶과 삶의 표현을 기반으로 해서 문화를 역동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필자의 생각과 매우 일치한다. 

필자가 이해하는 문화란 생명력의 발현으로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나타나는 결과의 총칭이다. 특히 그 중에서 소멸되지 않고 남아있어 삶의 한 형태를 형성하기도 하고 또 그 자체가 삶으로 경험되는 유무형의 것들을 말한다. 구체적인 결과물이지만 삶의 양식 혹은 환경으로 혹은 사고와 가치관 신념 등의 형태로 나타나 삶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대체로 문화는 인간의 활동에 국한시켜 말하고 있으나 생명활동에 착목해 이해한다면, 인간을 포함한 생태계 역시 유기적인 생명활동을 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문화는 생태계에까지 적용될 수 있다. 유형적인 것을 외적 문화라 한다면, 무형적인 것을 내적 문화라 한다. 양자는 긴밀하게 상호 관계하는데, 외적 문화를 통해 내적 문화가 표현되나, 내적 문화의 작용에 따라 외적 문화가 형성되고 또 특징지어진다.

 문화를 기독교적으로 생각할 때 고려해야 할 부분은 세 가지다. 먼저는 그것이 ‘인간’의 생명활동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인간중심적인 경향을 갖고 있다. 범위는 생태계 차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인간에 의한 것이기에 구원의 능력을 지향하나 한계를 갖고 좌절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는 관점이다. 문화는 결코 절대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다른 하나는 인간의 ‘생명’ 활동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관점이다. 기독교적 인간학에서 보는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를 갖는 존재로서 의미를 갖고 또 모든 생명은 다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화 자체가 영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은 인간의 생명 ‘활동’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인간을 위해 혹은 다른 무엇을 위한 인간의 행위를 환기한다. 목적이 있다는 말인데, 인간에게 즐거움을 안겨주기도 하고 인간의 교양을 함양하기도 한다. 또한 반대의 경우도 일어날 수 있다. 때로는 종교적인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상의 이해를 종합하면, 문화는 생명활동과 더불어 나타난 것으로 본질적으로 하나님에 뿌리를 두지만, 인간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생산하고 또 사용하며, 심지어 문화를 통해 구원을 이루려고 하며, 또한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생산하고 또 사용한다. 이와 같은 문화가 갖는 양면성은 기독교 문화의 과제를 명백하게 한다. 문화의 기독교적인 본질을 밝히고, 인간의 산물로서 문화를 분별하고 기독교 신학적으로 비평해 건전한 문화를 생산하는 데 기여하고, 복음의 확산을 위해 문화를 올바르게 사용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에 기여할 수 있는 문화를 생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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