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앓음’ 이겨낼 때 ‘앓음(音)다움’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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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앓음’ 이겨낼 때 ‘앓음(音)다움’ 얻는다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5.11.10 2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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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에 타는 감사의 가야금
▲ 고운 외모와는 달리 손끝에 생긴 굳은살처럼 단단한 인생을 살아온 가야금연주자 이예랑 씨는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바쁜 일정을 쪼개어 교회의 초청 집회에서도 가야금 연주와 간증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일을 기쁘게 감당하고 있다.

가야금 연주자 이예랑

지난달 1일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에선 제7회 이예랑 가야금 독주회가 열렸다. 가야금연주자 이예랑 씨(동안교회 출석)의 대통령상 수상 1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었다. 2005년,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김해전국가야금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그때 그녀의 나이는 불과 24세. 역대 수상자 중 가장 어린 나이에, “수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연주였다”는 심사평까지 따라와 큰 화제가 됐다.

그러나 그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엔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있었다. 이번에 열린 독주회의 테마는 ‘앓음(音)다움’. 가장 아름다운 가야금 소리는 인생의 모든 시련을 아프게 앓으면서, 거기 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 않고, 그것을 힘차게 뚫고 나올 때에 득음하게 된다는 뜻이다. 고운 외모와는 달리 신산한 시절도 그녀에겐 있었다.

 

은혜로 태어난 세 자매 
태어날 때부터 그녀는 남달랐다. 결혼을 앞두고 불의의 사고를 당한 아버지를 어머니는 모든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편으로 인연을 맺었다.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처지였지만, 그 사랑에 하늘이 감동했는지 쌍둥이를 주셨다. 그 첫째가 예랑, 둘째가 사랑, 훗날 태어난 막내가 ‘자랑’. 그래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걸 자랑하는 딸들이 되라’는 엄마의 꿈이 이뤄졌다.

“어머니도 가야금 명인으로 유명하고(변영숙 교수) 이모들도 유명해서 ‘변씨 패밀리’라고 불릴 정도예요. 그런데 전 어릴 때까지만 해도 가야금에 취미가 별로 없어서 일반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선생님이 변 교수님의 딸이라고 하니까 콩쿨 한번 나가보래요. 그러면 3년간 성적을 A 플러스를 주시겠다고 그러셔서, 성적 욕심은 있었기 때문에 한번 나가본 거죠.”

고등학교 1학년생 출전자는 그녀 혼자였다. 수상자는 대학 특혜가 있었기 때문에 고 3언니들이 주축을 이뤘다. 게다가 다들 전공자들이었다. 포기하려고 화장실에 숨었다가 엄마에게 장구채로 맞고 울면서 올라간 무대. 막상 가야금 앞에 앉자 마치 캄캄한 우주에 혼자 있는 느낌이었다. 결과는 일등이었다.

“그때 제가 가야금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어머니에게 처음 가야금 연주 한곡을 일주일만에 배웠는데, 알고 보니 그게 3년 커리큘럼 과정으로 배우는 거더라고요. 제가 전국대회에서 일등을 하니까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죠.”

뒤늦게 시작한 가야금이지만 어머니로부터 내려온 재능과 끼는 더욱 빛을 발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간 그녀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교수님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하나님이 주신 가야금의 은사를 휘몰이 장단처럼 맘껏 발현했다.

“KBS에서 20년 만에 부활시킨 협연의 블라인드 오디션에서 한 명 뽑는데 제가 뽑혔고요. ‘산조를 명인보다 더 잘 타는 아이가 있더라’는 소문을 타고 일주일 만에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협연하는 데 또 뽑혔어요. 하나님께서 저를 높여주셨어요.”

잠시 슬럼프를 맞았는데, 그때가 2005년 김해전국가야금경연대회에 출전할 때였다. 슬럼프에서 빠져나오는 그녀만의 방법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전국 최고 가야금 경연대회인 김해대회는 가야금만 하는 기악파트와 기악과 창을 하는 병창 파트로 나뉘어져, 양쪽에서 1등을 한 사람들이 겨뤄 최고 대통령상을 받는 방식이었다. 기악파트에서 1등은 자신 있었다. 이미 대학생으로서 장관상을 받은 그녀였다. 1등 상금으로 유럽여행 갔다 오겠다는 말로 반대하는 어머니를 설득해서 출전했다.

▲ 교회에도 찾아가 가야금으로 찬양의 은혜를 더해준다

최연소 대통령상 수상
“그때 이런 기도가 나오더라고요. 하나님, 포기하지 않게 해주세요. 보통 연주를 시작해서 1분 안에 결정이 되거든요. 처음에 실수하면 다 망치는 거죠. 그런 일이 있어도 끝까지 연주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요, 실제로 연주를 시작하는데, 실수로 제 명찰이 가야금 줄 사이에 낀 겁니다. 그때 기도내용이 생각났어요. 아, 이래서 그 기도를 드렸구나. 포기하지 않았죠. 연주 내내 꼽추처럼 허리를 굽히고, 명찰이 줄 사이에 끼어 있는 채로 연주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심사위원들은 오히려 그런 제 모습이 감동스럽게 보였다는 겁니다. 1등을 했어요.”

다음 날 대통령상을 겨루는 기악과 병창의 대결은 사실 승산이 없었다. 병창 1등은 그녀보다 나이도 훨씬 많았고 출전 경험도 있었다. 기악과 병창 심사위원이 6대 6인데, 동률이 되면 물론이고, 7대 5가 나와도 연장자, 과거 출전자에게 상을 주었다.

“소란한 대기실에서 혼자 구석에 무릎 꿇고 앉아 기도드렸어요. ‘무너뜨릴 수 없는 여리고도 주님이 함께 하시면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생애 최고의 연주를 허락해주세요.’ 기도를 끝내고 나오는데, 정말 제 주변이 고요하게 느껴졌어요.”

가야금 앞에 앉았다. 대개는 긴장해서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때가 많은데, 그날은 앉았더니 횡격막이 삭 내려가며 편안해졌다. 마치 유체이탈한 듯 가야금을 탔다. 중간에 박수소리가 두 번 들렸다. 전무후무한 연주라는 심사평이 나왔다. 24세 나이로 대통령상을 받은 것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그후 국악방송 MC에 가요까지 발표하면서 국악의 대중화에 앞장서온 이예랑 씨는 오늘도 가야금 연주자로, 동생 사랑이와 함께 ‘가야랑’이란 이름으로,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 공연을 다니며 가야금의 ‘앓음다운’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돌아보면 정말 감사할 일이 너무 많아요. 때로 힘들고 어려운 시절도 있었지만 그 시절에 앓았던 아픔들이 오히려 진정한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했어요. 어려운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께는 감사할 일들을 더 크게 주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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