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자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참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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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자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참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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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1.10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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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J. 하페만 박사 /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교

‘복음주의자들’은 신앙과 행위의 모든 문제에 있어서 권위 있는 성경의 메시지에 따라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기를 추구하는 자들이며, 특별히 근본주의자들과는 대조적으로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사회 중에서와 그 사회를 위해 그렇게 행동하기를 추구하는 자들이다.

복음주의자들은 사회참여에 헌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은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께 신실하기 위해 일하는 그들의 헌신 영역을, 도덕적 의로움으로, 사회적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의 범주 밖에 있는, 우리 사회에 속한 이들에 대한 정의로 확장하도록 지속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이다.

복음주의자들은 마음이 꺼림칙하다. 복음주의자들이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복음의 암시들을 여전히 거절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복음주의자의 마음은 여전히 꺼림칙한데, 그 이유는 복음주의자들이 믿음과 복종 사이의 불가분이며 유기적인 연결과 관련하여 그들의 삶 속에서의 복음의 암시들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내 세대의 지도자들 및 목회자들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신앙을 개인적 신념들이나 감정들로 축소시킨 손쉬운 맹신주의를 선포함으로써 교회를 저버렸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의 불복종을 신앙에 대한 우리의 권리들로부터 분리한 것에서 기인한 거짓 위로에 의존함으로써 우리의 죄를 핑계대고 묵인한다. 비록 우리들 중 일부가 그것들을 신학적으로 분리하길 원할지라도, 마치 그 둘이 경험적으로 분리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과 우리 문화에 신앙을 선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말은 공허하게 울린다. 사회 복음 운동과 관련된 문제는 정의의 추구가 우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정의의 추구로부터 분리되어, 정의가 결핍되었을 때면 언제든 정의의 추구를 대체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비록 복음주의자들이 더 이상 사회참여를 그들의 신앙과 관련된 것임을 거절하지 않을 지라도, 그들은 그들이 삶 가운데서 죄악을 직면할 때면 언제든지 ‘단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재빠르게 선포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다른 방식으로 성경이 사랑의 행위들로 그 자체를 표현하지 않은 신앙에 대한 주장은 죽은 것이며 의롭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행함 없는 믿음은 살아있고 그 믿음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구원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거짓 위안을 얻는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서의 의롭게 됨은 자기 의의 한 방편이 된다.

그렇기에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들과 타인들에게 사회참여에 동참할 것을 유도하려 한다면, 현 시대의 교회에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신앙 자체에 대한 몇 가지 관점이 있다. 첫째, 타인들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들에 대한 복종은 신앙 자체의 불가분이며 유기적인 표현으로 나타나야 한다. 복종은 어떤 방식으로든 신앙으로부터 분리될 수는 없다. 둘째, 신앙은 하나님에 대한 정보에 정신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선물을 수동적으로 수납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어떻게 기적적인지는 상관없이 그리고 신앙은 심지에 예배에서조차 하나님의 실재에 대한 감정적 집착 혹은 응답이 아니다. 셋째, 능동적인 신앙, 복종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행위의 의가 아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의지와 우리의 의지의 협동효과가 아니다. 그 가운데서 우리의 행위는 우리가 우리의 복종의 삶을 통해 얼마나 신실한지를 하나님께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해 하나님의 행위에 추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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