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역사로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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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역사로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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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0.2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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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 교수 / 백석대 신학대학원

한국교회 성령론의 활발한 논의는 어쩌면 그동안 한국의 신학교에서의 성령론 교육이 교회의 목회현실 그리고 신자들의 현실적인 삶의 경험에서 동떨어진, 비교적 목회경험이 일천한 학자들이 신학적 이론으로서 사변화되고 화석화된 성령에 관한 신학이론을 가르쳐 온 결과에 대한 반발로 볼 수 있다. 평양대부흥운동 등에서 볼 수 있듯 초창기 한국교회는 성령의 강력한 역사하심이 있었다. 비록 당시 목회자들은 신학적인 면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체계화되고 강력한 신학이론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그들은 그들의 목회사역 가운데서 성경을 통달하여 알고 그대로 믿고 실천함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가운데 교회는 생명력 있게 성장하였고 이러한 그들의 목회사역은 한국교회 성장의 탄탄한 밑받침이 되었다. 그러나 이후 한국교회는 개인화 내면화된 성령론을 가르침으로 교회의 집단적, 외적 목회와 신자의 외적 삶에서 나타나고 경험되는 성령의 능력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심지어는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까지 나타내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방언과 신유 축사(귀신 쫓아냄) 등과 같은 현상을 강조하는 오순절운동이나 은사운동 등과 같은 것들이 한국교회에 교회성장과 관련하여 깊고 강력한 영향력을 주면서 한국교회에는 성령론 논쟁이 불붙게 되었다. 개혁주의생명신학 또한 교회와 성령의 관계를 강조하며 성령론의 건전한 신학적 확립과 더불어 이의 교회론적 의의와 목회현장에서의 실천을 강조함으로 교회의 생명력있는 성장을 지향한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이 신학은 학문이 아니라고 말하는 배경에는 신학의 영적 성격 때문이다. 이는 칼빈에게서도 마찬가지인데, 칼빈은 또한 신학을 영적인 성격의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신학이 영적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신학자나 설교자는 “영의 직분”을 맡은 것으로 말할 수 있다. 신학의 영적 성격에 대한 칼빈의 이해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첫째로는 신학의 재료인 성경이 영적인 것이며, 둘째로 성경과 성령과 믿음의 상호 내적 연관성에 대한 칼빈의 이해이며, 그리고 셋째로는 성경의 중심 메시지가 영적 생명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신학의 영적 성격의 두 번째 부분은 성경과 성령과 믿음의 내적 상호관계 때문이다. 성경이 하늘의 교리인 것은 성경의 저작자가 인간이 아니라 성령이시라는 것과 긴밀히 연결되어진다. 성경은 어떤 다른 책들과 같은 역사 속에서 만들어진 인간의 저작물이 아니라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계시로서 성령께서 친히 말씀하시고 기록하시고 보존하신 것이다. 성경이 이런 영적인 기원을 가지며 영적인 권위를 갖는다는 것은 자연적 인간의 이성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의 이성을 초월하는 거듭난 이성, 성령과 결합한 이성, 최고의 이성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의 저자로서 성령께서 내적으로 빛을 비추어 주시고 증거해 주시고 확증해 주실 때에만,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인쳐주실 때에만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을 수 있게 되고 또한 그런 믿는 자가 성령의 조명을 받아 믿음과 경건한 자세로 성경을 볼 때에만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다. 이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은 오직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믿음으로 경건한 자세를 가지고 성령의 내적 조명과 증거(인치심)를 받는 자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신학은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 교회라는 몸에 접붙임을 받은 자들, 여호와의 권속들, 신자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들만 알 수 있는 것으로 특권이며 선택자의 증거요 특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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