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시기를 거치면서 찾기 어려워진 ‘조선예수교서회’의 문서와 출판서적들이 숭실대학교 학국기독교박물관(관장:권영국 교수)에 상당수 소장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890년 6월 25일 설립된 ‘조선예수교서회’(설립당시 조션셩교셔회, 현 대한기독교서회)는 체계적인 문서 선교를 위해 조선 땅에서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들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헤론(J.W. Heron) 선교사의 제안에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들이 뜻을 같이 했다. 이후 조선예수교서회는 문서선교 사업 뿐 아니라 각종 교육서적들을 이 땅에 본격적으로 보급하는 역할을 다했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은 지난 7일 시작해 이달 말 30일까지 선교 130주년 기념 특별전시를 열고 조선예수교서회가 발간한 기독교문서 자료 210여점을 공개하고 있다. 특별전 주제는 ‘근대의 기억, 신앙의 기록’이다.
특히 조선예수교서회는 1940년대 일제 억압기까지 무려 4600만부에 달하는 자료를 출판하며, 우리나라 근대화에 기여한 바가 컸다.
권영국 박물관장은 “조선예수교서회가 발간한 성경과 찬송가, 신문, 잡지, 교과서, 포스터 등 많은 기록물을 통해 오늘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며 “특별전이 기독교문서 출판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담는지를 보여주는 자리”고 설명했다.
숭실대 한헌수 총장도 전시회 개막행사에서 “이 땅에 기독교가 전파된 역사와 맥을 같이하는 118년 역사의 숭실대가 소중한 문서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많은 사람들이 방문해 빛나는 기독교문서 선교의 유산을 살펴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최초 간행물 ‘셩교촬리’, ‘텬로력뎡’
숭실대 정문에 들어서면 우측에 자리한 기독교박물관의 1층 특별전시실에 들어서면 예수교서회 설립 첫해 처음으로 발간된 ‘셩교촬리’를 만날 수 있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번역한 책으로 국내 최초로 발간된 기독교 전도문서이자 기독교 교리의 핵심을 간략하게 기술한 책이다. 삼위일체 신앙과 기독교인이 지켜야 할 덕목 등을 담고 있다.
서회가 연 2회 발간한 ‘예수교서회보’도 볼 수 있다. 전시된 문서는 1904년 11월 발간한 4호로 서회의 문서출판과 관련한 다양한 기록들이 담겨 있다. 4호에는 신앙서적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청국에서 출간된 한문 교리서를 수입하기로 했다는 결의가 기록돼 있다. 이와 더불어 1914~1921년 사이의 서회의 연례보고서도 여러 권 전시돼 있는데 발행도서 목록과 국영문 제목, 서지분류 등이 소개돼 그 당시 서회의 활동 경향성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다.
특별히 조선예수교서회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 등 다양한 책을 출판해 종로감옥소 감방 서적실에 비치했다. 정치사범들을 대상으로 옥중전도문고가 운영되는 점을 활용한 것으로, 기록에 따르면 1903년 1월부터 1904년 8월까지 운용된 문고의 종류는 한문책 232종, 한글책 56종, 영문책 20종에 달한다. 대부분이 성경과 찬송가, ‘텬로력뎡(천로역정)’, 역사와 전기, 지리서 등이었다.
‘천로역정’은 독립협회 해산 이후 복역 중이던 이상재, 이승만, 이원근, 유성준, 김정식, 홍재기 등이 옥중에서 읽고 개신교로 개종하도록 이끈 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게일 선교사가 처음 번역한 천로역정’은 한글로 번역된 우리나라 최초의 영문소설이라는 점에서 근대 국어사와 문학사에 있어서도 사료적 가치는 매우 크다. 숭실대 역사박물관이 보관돼 있는 ‘텬료력뎡’에는 조선말 풍속화가 김준근이 게일 선교사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42점의 삽도가 수록돼 있는 것도 특징이다. 삽도를 보면 갓을 쓴 선비 복장과 선교 모습의 천사 등이 묘사돼 있다. 이는 조선의 문화에 맞춰 외래종교를 수용하고 있는 아주 특징적인 모습도 들여다 볼 수 있다.
주일학교 부흥, 언론발전 기여
한국교회 부흥은 주일학교 부흥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조선예수교서회는 1913년부터 ‘한국선교공의회’(Federal Council of Korean Mission)의 위촉을 받아 계단공과를 출판하면서 다양한 교회학교 교재를 출판했다.
‘즁등쥬일학교공과’, ‘츌애굽쥬일셩경공과 고등반’ 등 계단공과 외에도 ‘만국쥬일공과’ 등을 학생용과 교재용으로 출판했다. 특별 전시회에서는 1940년대까지 당시 교회들이 활용했을 다양한 공과 종류들을 살펴볼 수 있다.
1921년 서울 승동교회에서 ‘제1회 전국주일학교대회’가 개최된 이후 한국교회 안에서는 주일학교 설립이 활성화됐다. 이에 발맞춰 조선예수교서회도 주일학교와 관련된 전도지, 출석부, 인도표 등을 선보였고, 비슷한 기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와 지방노회 회의록을 발간하는 활동도 했다.
또한 서회는 기독교 언론의 초창기 역사를 대표하고 있다. 1897년 4월 최초의 기독교 신문인 순한글 ‘그리스도신문’과 ‘죠선크리스도인회보’를 발행해 해외 각국의 정세와 문화, 지식 등을 소개했다. ‘그리스도신문’은 당대 개화사상 확산에 기여했고 민족주의와도 결합하여 민족운동의 토대를 형성하는 데 공헌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10년 2월부터 1914년 8월까지는 주간신문으로 ‘예수교회보’가 발간돼 조선 장로교 기관지 역할을 했으며, 1918년에는 평양장로신회신학교 기관지 ‘신학지남’을 펴내 한국인 신학자들의 연구무대를 마련해 주었다. 앞서 1915년에는 장로교와 감리교가 연합해 ‘기독신보’가 발행돼, 1937년 폐간될 때까지 교회 입장에서 민족을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최초의 교과서들 발행
전시회에서는 서회가 발간한 펜윅과 서경조의 사역성서(私譯) ‘요한복음젼’, 베어드의 ‘마태복음대지’, ‘신약주석’, ‘누가복음주셕’, ‘다니엘서 강해’ 등의 연구편찬 자료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개신교 초기부터 대한성서공회가 성경을 번역 발간하는 사역을 주도했다면, 서회는 출범 때부터 찬송가 출판에 주력했다.
1892년 한국 최초의 찬송가 ‘찬미가’, 1908년 장로교 감리교의 연합찬송가 ‘찬송가’, 1919년 연합공의회 자금 지원으로 발행한 ‘합동찬송가’ 등을 포함한 여러 판본의 성경 찬송가 합본까지 전시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예수교서회가 가진 역사적 의의는 교회 안에서의 문서출판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방면의 교육 서적들을 출판한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1985년 간행된 최초의 한영사전 ‘한영ᄌᆞ뎐’,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지리 교과서인 ‘사민필지’, 한국 최초의 생리학 교과서로 1899년 이화학당 교재로 발간된 ‘젼톄공용문답’, 평양 숭실에서 교재로 사용했던 ‘식물도설’, 수학교과서 ‘심산초학’과 ‘산학신편’ 등 근대 교육역사에 있어 기여한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
이번 기획특별전을 총괄한 한명근 학예사는 “조선예수교서회가 발행한 기독교문서들은 그 종류가 다양할 뿐 아니라 당대 종교적 시대사적 의미를 매우 포괄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단순히 선교에 국한되지 않고 전통사회의 변화를 초래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또 그는 “당시 간행된 한글 서적은 대부분 서회의 몫이었다”면서 “서회의 문서운동은 한글 발전과 문맹 퇴치에 기여하고, 근대학문지식 보급을 촉진하고 신문화 확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위대한 여정이었다고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대한예수교서회 박만규 상무는 “조선어로 기독교 서적과 전도지, 정기간행물을 발행해 전국에 보급하기 위해 서회는 창립됐고, 이렇게 시작된 문서운동은 많은 개종자들을 얻음과 동시에 새로운 문명을 소개하고 계몽을 도왔다”며 “서회는 지금까지 기독교정신과 문화을 전하고 시대정신을 실천하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조선예수교서회의 역사는 현재 대한기독교서회(사장:서진한 목사)가 계승하고 있다. 1942년엔는 기독교서회의 재산을 적산(敵産)으로 선언하고 한국인 직원들을 해고함으로써 판매사업이 중단되고 약탈의 아픔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해 종로감옥소 감방 서적실에 비치했다. 정치사범들을 대상으로 옥중전도문고가 운영되는 점을 활용한 것으로, 기록에 따르면 1903년 1월부터 1904년 8월까지 운용된 문고의 종류는 한문책 232종, 한글책 56종, 영문책 20종에 달한다. 대부분이 성경과 찬송가, ‘텬로력뎡(천로역정)’, 역사와 전기, 지리서 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