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으로 화해, 교회는 갈등의 중재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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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으로 화해, 교회는 갈등의 중재자가 될 수 있다
  • 이인창 기자
  • 승인 2015.10.06 2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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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 70년, ‘화해가 먼저다’ 결산 좌담회 (상)

기독교연합신문은 올 한해 광복 70주년, 분단 70년을 맞아 ‘화해가 먼저다’를 주제로 기획특집 기사를 연재해 왔다. 우리 안의 화해가 없이는 통일로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는 전망 아래 기획된 것이다. 

본지는 지난 2월 시작돼 약 8개월 동안 남북한 분단의 역사, 남북갈등, 남남갈등, 동북아 역학관계, 교회의 통일을 위한 노력 등을 다방면에 걸쳐 다뤘다. 또 중요한 학술회의를 지상에 소개하면서, 이론적 기반을 찾고 남북관계 실태를 점검하기도 했다. 
연중기획을 마무리 하면서 통일사역 현장에서 뛰고 있는 전문가들과 좌담회를 갖고 지금까지 논의된 바를 다시 되돌아보고자 한다. 좌담회에는 탈북자 출신의 목회자 마요한 목사와 교회 통일사역 전문가 김영식 목사, 남북관계 연구자이자 인도적 지원 단체 대표를 맡고 있는 윤은주 박사와 함께했다. 좌담회 내용은 2주에 걸쳐 싣는다. 

진행:이인창 부장

패널:김영식 목사(북한사역목회자협의회 사무총장)
      마요한 목사(북한기독교총연합회 회장)
      윤은주 박사(사단법인 뉴코리아 대표)
일시:2015년 10월 2일 오후 2시
장소:기독교연합신문 편집국

통일의 여정 가운데 ‘화해의 의미’는 무엇이라 보는가

▲ 마요한 목사

마요한 : 하나님의 입장에서 화해는 피 흘림과 전쟁이 없고 서로가 용납하고 양보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생각과 가치관의 갈등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서로 인정하고 양보하며 화합해야 한다. 인정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포괄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라기보다 가치관, 성향, 분단의 과정에 대해 가진 생각과 관점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김영식 : 십자가 사건이 화해의 의미를 가장 정확히 가르쳐 주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심으로 가장 덕을 본 건 하나님과 우리다. 유일한 화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실천방향을 제시해주고 계신다. 구체적으로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화해로 이끄는 방법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시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진짜 중요하며, 화해를 이끌어낼 사람을 키워야 한다. 

북한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로 인식해야 하는지, 화해의 과정에서 어떤 쟁점을 갖는가
윤은주 : 화해의 의미는 관계성의 회복이다. 남북관계에서 북한을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관점이 필요하다. 우리는 북한과의 관계에서 이중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민족이자 적대적 관계가 그것이다. 북한이 누구인가를 명확히 한 뒤에 상대방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화해를 한다면 누구랑 해야 할 것인가. 북한이 어떠한 대상인지를 명확히 전제해야 할 것이다.

‘화해가 먼저다’라는 주제는 ‘갈등’을 전제로 삼았다. 아이러니하지만 갈등을 빼놓고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남남갈등이, 교회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남남갈등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요한 : 남한에 와보니 갈등이 너무 많이 존재하는 듯하다. 지금의 갈등을 해결하지 않고서 통일이 희망적일 수 없다. 그렇다면 남한 사회의 갈등을 치유할 수는 없는 것일까. 근본적 문제는 한국교회가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갈등이 치유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교회가 앞장서서 교회 안의 갈등을 치유하면서 사회에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교회 안에서도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심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진 교회는 궁극적으로 하나 됨을 목표로 한다. 이데올로기 때문에 화합하지 못한다면 복음에 능력이 없는 것 아닌가. 그러나 복음은 이 모든 것을 행할 능력이 있다. 
김영식 : 교회 안에서 갈등 해결을 위한 훈련이 안 되고 있다. 지역 갈등이 1990년대만 해도 많았다면, 2000년대 들어서면서는 진영갈등으로 두드러졌다. 갈등이 더 다양해진 것 같다. 하지만 다양한 생각은 하나님의 창조성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 부합되는 것이다. 이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자유성을 인정하고 대화를 하다보면 우리의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교회 안에서도 다른 성향이 있더라도 공통점을 찾아 대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 윤은주 박사

윤은주 : 김 목사님의 지적처럼 극복의 방법에는 훈련이 필요하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2000년대 들어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언론에 의해 남남갈등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런데 저는 이러한 갈등의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점이 컸다고 본다. 이런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남남갈등을 해결하는 큰 방법이 될 것이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개인 차원의 훈련도 중요하지만 남남갈등이 어디서부터 시작됐고 누가 이를 조장하는 것인지, 한국교회가 이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근거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실제 교회 안에서 사회 이념적 갈등이 극복되는 경험을 해본 적 있는가
마요한 : 실제 목회 현장에서 성도들 간에 생각이 달라 갈등이 생기는 것을 본다. 그러나 성경적 말씀 안에서 치유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한국교회가 바른 믿음과 신앙을 회복할 때 갈등도 회복된다. 탈북자의 경우 보수적 인사가 많다. 그러나 세상적인 방법을 배제하고, 온전히 말씀과 하나님의 관점으로 나갈 때 교회 공동체 안에서 갈등과 충돌이 해결됐었다. 보통 자기 목소리만 말하려고 할 때 갈등이 유발된다.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관점에 집중하면 그러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본다.

최근 몇 년간 남북관계가 매우 어려워진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한국교회의 대북 인도적 지원은 크게 위축됐다. 한국교회와 교인들은 이를 어떻게 봐야 하겠는가
윤은주 : 한국교회는 대체로 80%가 보수적이고 20%만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80%에 속하는 교회들이 대북지원에 굉장히 적극적이다. 대북지원에 대해 ‘퍼주기’ 논란이 제기되고는 하는데, 이런 이슈들을 보면 선입견을 발견할 수 있다. 남한에서 식량이 지원되면 북한 장마당에서 쌀값이 떨어지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도 이를 잘 안다. 또한 남한에서 가는 쌀이 그렇게 좋은 쌀도 아니다. 우리의 지원으로 북한 정권이 유지되는데 쓰였다는 것은 선입견이다. 이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국교회는 민간 차원에서 국가의 정책과는 다르게 나가야 할 것이다. 국가 차원에선 얼마든지 비료나 쌀을 정책적 차원에서 활용 가능하다. 그러나 교회는 철저하게 인도적 입장에서 모니터링을 하고 긴급한 필요를 따져 지원하고자 해야 한다. 

마요한 : 북한을 그냥 지원하는 것에 대해 절대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편협한 생각이다. 교회와 기독교인들이라면 첫째로 북한주민을 생각해야 한다. 굶주림 당하는 동족을 모르쇠하면 안 될 것이다. 잘 분별한다면 100%는 아니더라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북한 주민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쌀이나 물품이 고위 계층에게 공급된다고 해도, 잉여 부분은 북한 시장에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위층에게 필요한 품목을 지원하는 것은 안 된다. 북한 정권에서 요구하는 것은 일반 주민과 상관이 없는 굉장히 비싼 것들이라고 한다. 오히려 밀가루, 옥수수를 공급하는 것이 북한 주민에게 더 큰 이익이 될 것이다.

여전히 많은 교회들이 통일교육을 하지 않고 있다. 교회 입장에서 보면 통일교육을 하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조언을 해준다면?

▲ 김영식 목사

김영식 : 일반 교육현장에서 통일 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에 교회에서의 통일 교육 필요성을 느낀다고 본다. 통일선교 교육적 관점에서 보면 타문화권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는 어느 민간단체들보다 적절하게 통일교육에 있어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본다. 개신교가 통일교육에 있어 활발하게 전개해야 하는 것은 탈북민들에 대한 이해이다. 현재 80%의 탈북민들이 종교를 가지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탈북민을 만나는 것은 북한 현지인을 만나는 것이고 통일을 시작하는 과정이다. 탈북민들과 이야기하고 나누려는 교회의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윤은주 : 통일선교 교육을 통해 통일담론을 확산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우선은 한국교회가 통일 방안에 대해서 합의한 바가 있었는가를 짚어봐야 할 것이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한국교회의 통일론은 무엇인가. 이것이 먼저 해결 되어야 할 문제다. 탈북민이 통일의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정부 차원에서는 탈북민들에게 큰 지원을 하고 있다고는 본다. 그러나 탈북민 정착 정책의 한계는 탈북민들이 우리 시스템에 와서 무조건 맞출 것만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변화될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정리 = 정하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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