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세계관 교육핵심은 삶 전체의 성경적개혁 실현
상태바
기독교세계관 교육핵심은 삶 전체의 성경적개혁 실현
  • 승인 2003.06.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종교개혁은 단순히 신학적이고 교회적인 운동만은 아니었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나야 할 성경적인 개혁을 시도했다.

통합적이고도 근본적인 성경 중심 동인이 삶의 모든 영역에 주도적인 힘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문의 영역에서도 이 운동에 찬동하는 국가들의 대학 규정을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종교개혁, 그 반쪽의 성공
그러나 불행하게도 종교개혁은 이러한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하여 희랍 인류학과 윤리학 등이 수 백년 동안 신학생이나 목회자들을 훈련시키는 필수과목으로 남아 있었으며, 심지어 칼빈주의 정신을 가진 대학들에도 아리스토텔레스주의가 적용되었다.

학문에 대한 개혁의 불발은 “신앙을 위해서는 예루살렘으로, 지혜를 위해서는 아테네로 가야 한다”는 이원론적 금언을 다시금 채택하게 되는 비참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

17세기의 유명한 개혁주의 신학자 보에티우스는 데카르트의 새로운 도전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가장 앞장서서 옹호했다. 칼빈의 개혁주의적 정신은 ‘자연 및 은혜’라는 반성경적이고 스콜라적인 타협적 사고방식에 의해 묻히고 말았던 것이다.

로마 카톨릭주의의 유산인 이러한 변증법적 동인이 학문에 대한 개혁의 힘을 약화시켰고 학문의 세속화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가능성을 제거해 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 후유증이 이어서 나타나는데 로마 카톨릭의 자연신론에서 보는 바 보편 은총이 그리스도의 통치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이원론은 후에 신앙과 학문의 분리를 가져오게 되었다.

계몽주의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는 한편으로는 신앙적 정통을 가리기 위한 교리주의에 사로 잡혀 있었다. 이와 같은 진리의 시비 판정은 다분히 신앙주의(Biblicism)적이고 경직된 것이기도 했다. 이러한 때에 그에 대한 반동으로 인간의 이성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며 불어온 사상적 바람이 계몽주의이다.

계몽주의의 등장은 그 이전까지 교회 중심으로 진행되어오던 학문적 방법론에 있어 거의 획기적 영향을 끼쳤다.

계몽주의는 르네상스라는 기초 위에서 중세적 사고와는 궁극적으로 다른 근본적인 사상의 변화를 초래했다. 계몽주의 이전 시대에는 안셈(Anselm, 1033-1109)의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라는 명제는 지식 추구에 있어 지배적 사상이었다.

그러나 계몽주의 시대 이후 이 명제는 바뀌어 “나는 내가 이해 할 수 있는 것을 믿는다”라고 선언하게 되었다.

인간 이성의 자율을 부르짖는 계몽주의는 철학적 혁명의 산물이었다. 그 뿌리는 거슬러올라가면 희랍의 철학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철학분야에서 일어난 혁명 외에 계몽주의를 낳은 또 다른 원인은 과학 분야에서의 혁명이다. 이것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코페르니쿠스의 발견이 발단이 된 것이다.

이 같은 철학과 과학 분야에서의 혁명은 이성의 격상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사고 방식은 종교의 본질에 대한 이해 면에서도 변화를 초래하게 되었다.

기독교적 지식 산출에 있어 그 학문적 방법론이 위기에 몰린 기독교는 계몽주의적 객관주의를 피해 한 때 감정적 주관주의로 도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신학적 작업은 모두 바람직한 기독교 학문의 신학적 기초가 될 수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