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적 가정- 청소년 문제가 복잡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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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적 가정- 청소년 문제가 복잡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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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9.09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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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태 선교사/인터서브 코리아

청소년의 다중적 어려움
모든 인간의 문제가 그렇듯 청소년 문제도 결코 간단하지 않다. 청소년 문제가 어려운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청소년 자신이 당면한 현실 때문에 어렵다. 청소년기는 개인적인 발달 과정에서 매우 독특한 시기이다. 바로 그 시기에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독립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변화가 너무 급격해서 자신도 자신을 받아들이기 조차도 매우 힘든 시기이다. 두 번째는 가족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이다. 가족들은 청소년들에게 매우 관심이 많다. 아니, 너무 많다. 사실은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의 진학을 준비해야 하는 결정적인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녀들은 가족의 미래에 대한 투자인데 그 짐을 한 몸에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로서는 여간 부담이 아니다. 셋째는 부모, 교사 등의 기성세대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어려움을 경험한다. 사회는 이미 기성세대들이 구축한 문화와 질서 시스템에 순응하기를 요구한다. 대화는 쌍방적이어야 하는데 기성세대들 중심이기 일쑤이다. 이런 다중적인 어려움들을 청소년들이 직면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학교의 실체
기성세대들은 청소년들이 있어야 할 곳(the place)은 오로지 학교라고 규정한다. 그 곳은 배움이라는 긍정성도 있지만 결국은 자신과 집안의 행복과 명예를 위해서는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필수이고 그래야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학교는 이러한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힌 청소년들과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야 하는 교사들의 미션으로 구성된 실로 복잡한 기관이자 공동체이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좋은 일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학교 문제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학교는 일차적으로 사람들의 정욕이 집결하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자녀의 성공은 곧 부모와 가족의 명예와 관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녀에 대한 투자가 가장 우선순위가 되고 자녀에 대한 자랑은 부모들의 비타민이다. 우리는 학교를 절대화하라고 강요하는 현대 사회의 요구에 냉정하게 생각하고 믿음으로 대처해야 한다. 자녀들의 학교 생활에 효과, 혹은 효율을 생각하기 전에 부모 자신의 정욕을 부인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들의 정욕에 자녀들이 희생하는 장소가 되고 말 것이다.

교회와 청소년 문제
현대 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이원론적인 관점이듯이 교회의 청소년 이슈에 대한 관점도 이원론적인 관점과 접근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회에서는 학교 문제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성인 신자들에게 믿음을 강조하지만 그것이 직장에서 어떻게 적용되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은 것과 유사하다. 청소년들이 가장 관심이 있어 하는 것 중에 하나가 학교에서 배우는 지식이 자신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 배우는 성경지식이 자신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아이들이 배우지 못하면 그것도 헛된 수고가 될 가능성이 많다.
결국 교회 공동체가 청소년 이슈를 다루기 위해서는 학교라는 현장을 필수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요즘의 캠퍼스 선교 단체가 집중하는 것이 “학교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라고 한다. 그것처럼 지역 교회들에서도 청소년들이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보내고 있는 삶의 현장인 학교에서 어떻게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을까 하는 주제를 늘 다루어야 한다. 청소년들의 학교 생활이 그들이 갖는 믿음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몰렉이냐? 하나님이냐?
이스라엘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결말은 자신들의 자녀들을 몰렉신에게 바칠 정도로 타락했었다 (겔 20:31). 자녀들을 자신들의 행복과 안전을 확보하는 도구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믿는 가정들이 믿지 않는 가정들과 동일한 목표를 자녀들에게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자녀들의 신앙은 부모들의 신앙의 축소판이자 반사판이다. 현재 청소년 자녀들이 학교에서 경험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우리는 심각하게 회개해야 한다. 누가 그 현상을 만들었는가? 나쁜 친구들인가? 우리의 욕심이 지금의 학교 현장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자녀들이 학교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두는 것을 목표로 삼기 전에 과연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학교에서 어떤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방법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희생시키신 하나님의 사랑을 자녀 양육에도 적용해야 한다. 아브라함에게 온전한 믿음으로 성장키시기 위해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하신 본에 순종해야 한다. 이 시대에 자녀를 하나님께 바친다고 하는 것의 일차적인 도전은 부모가 학교에 대해 죽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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