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전제하지 않는 은사는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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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전제하지 않는 은사는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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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9.09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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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웅 박사 (전 총신대 총장, 한국대학기독교총장포럼 대표회장)

지상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교회를 통한 복음사역은 성령의 사역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교회의 사역은 성령의 은사와 관련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교회와 성령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의 은사는 성령의 열매로서 어떻게 사용되어야 하는가? 

첫째, 가장 인격적으로 은사를 사용해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성령의 열매로서 언제나 성령의 충만한 은혜로 나타나게 된다. 바울은 성령의 은사가 얼마나 인격적인, 성숙한 인간성의 모습과 관련된 것인지를 성령의 9가지 열매와 연결시켜 설명하였다. 즉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등의 인격적인 가치들과 관계하여 성령의 열매로 표현하였다. 물론 성령의 열매는 인간이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인격적인 소산물은 아니다. 그러나 인격의 완전한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하는 과제와 관련하면, 성령의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성숙해져 간 신앙의 인격적인 모습은 성령의 열매와 관련하여 성숙한 인간성(영성)으로 드러나게 된다. 왜냐하면 성령의 은사가 몸 된 교회의 지체들을 섬기는 일을 통해서 그 지체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도우기 때문이다.

둘째, 교회의 질서를 따라 겸손히 사용되어야 한다.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목적은 교회공동체와 관련하여 교회 내에서 서로를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전체를 세워 가는데 있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지체들이 그리스도의 성품을 형성하고 닮아가도록 돕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은사의 사용은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덕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덕을 세운다는 것은 모두에게 유익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유익이 되지 않을 때, 은사의 사용은 중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은사의 사용은 차례대로 하는 것이 좋고, 질서를 따라 행할 것은 권고한다.

그리고 성령의 은사를 사용할 때는 겸손하게 사용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특별한 일을 경험하면, 자랑하고 싶어 한다. 성령의 은사에 대한 경험도 동일하다. 그러한 예를 우리는 고린도교회의 경우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방언의 은사를 공동체에서 자랑한다는 소식을 접한 바울은 은사의 사용에 대한 충고한다. 방언의 사용은 반드시 통역되어야 할 것을 요구하면서, 공동체의 모임에서 사용하지 말고 개인적으로 사용할 것을 권고하였다. 베드로는 각각 은사를 사용할 때,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하라고 권한다.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고 하였으며, 그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고 일러준다.

셋째, 사랑과 정의 안에서 은사가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길 때, 반드시 성령의 특별한 은사를 사모하고, 성령이 지금도 주시는 은사를 받아서 주의 일에 충성스럽게 섬기는 자로 활동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은사의 사용에 있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사도바울이 고전13장 1-3에서 명시한 사랑을 전제하지 아니한 은사의 사용은 구리와 울리는 괭과리가 되고, 예언의 능력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 지라도 사랑을 전제하여 행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였고,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헌신적인 행동으로 은사를 사용한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하였다.

성령은사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지상에 세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섬기기 위하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받은 자들은 지극히 인격적인 모습으로, 겸손히 교회의 질서를 따라 사랑안에서 은사를 사용되도록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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