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말리는 ‘스티븐 집사’의 한국사랑, 세계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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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말리는 ‘스티븐 집사’의 한국사랑, 세계로 간다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5.09.08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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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도 인생도 도전의 연속인 부부 이야기
▲ 언젠가 미국 피츠버그 고향으로 돌아가 ‘한옥 스테이’를 할 꿈으로 오늘도 한국 문화를 공부하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는 스티븐 집사 부부는, 사실 국적과 나이 차이를 극복한 결혼부터가 도전의 시작이었다. 아직도 도전 중이라서 어려운 점도 많지만 “남편과 손잡고 교회가는 것이 꿈인데 이걸 이뤘다”는 것만으로도 아내 최형경 집사는 행복하다.

다문화 가정 스티븐 말인어스키, 최형경 부부

“저, 스티븐 집사에요!” 한국인보다 한국문화를 더 사랑하고, 알고, 배우는 스티븐 말인어스키 집사(양평 우리성결교회)는 최근에 더 한국이 좋아졌다. 미국 프로야구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강정호 선수 때문이다. 스티븐 집사는 피츠버그가 고향. 강정호 덕분에 피츠버그 야구중계를 머나먼 이곳에서 편히 볼 수 있다.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건 덤이다.

오히려 피츠버그에 살고 있는 그의 아버지에게 전화로 그날의 경기를 중계할 정도다. 피츠버그에선 야구중계를 시청하려면 한국보다 훨씬 비싼 시청료를 내야 한다. 고향 동네에서도 못보는 야구를 머나먼 한국 땅에서 보고 ‘대디’에게 설명해주다니, 한국 정말 좋다!

 

한인교회서 믿음 성장한 미국인

스티븐 말인어스키, 최형경 집사 부부의 삶을 한 낱말로 요약한다면 ‘도전’이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그래서 행복’이다. 이 부부의 만남 자체가 도전이었다. 미국인과 한국인의 만남부터,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는 도전이 시작됐다. 만나고 보니 아내인 최형경 집사가 무려 열다섯 살이나 더 많은 것도 도전이었다. 결혼 후 한국에서 살면서도, 서예, 가야금, 한자, 최근엔 태껸까지, 새로운 문화를 배우는 도전이 또 계속된다.

“남편은 미국에 제가 공부하러 갔다가 만났어요. 그때 시청에서 근무하다가 휴직하고 저 나름대로는 도전하는 마음으로 미국에 유학을 갔거든요. 거기서 알게 됐는데, 한인교회까지 찾아와 다니면서 저를 계속 좋다고 쫓아다니더라고요.”

스티븐에게 물었다. 그때 뭐가 그렇게 좋았냐고. “뭐가 좋았냐고요? 몰라요, 다 좋았어요. 눈이 예뻐서 끌렸고요. 에브리싱! 모든 게 프리티했어요. 영혼이 참 그레이스풀하고 착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어요.”

그때부터 교제가 시작됐다. 처음엔 서로 상대방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큰 언니를 통해 한글로 성경공부를 하면서 스티븐은 더욱 믿음도 깊어졌다. 한인교회를 다니면서 오히려 기독교의 기본 진리를 더욱 깊이 알게 됐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할아버지 따라서 교회를 다녔어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교회를 다니면서 실망했어요. 복음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어요. 그래서 혼자 성경을 읽곤 했지요. 그러다가 한인교회에 왔는데, 한인교회가 더 젊고 신선하고, 무엇보다 베이직한 기독교 교리를 잘 설명해줬어요. 쉽게 이해가 됐고 너무 좋았어요.”

신앙이 깊어지면서 둘 사이의 사랑도 깊어졌다. 그러나 국적의 차이, 나이의 차이는 여전히 걸림돌로 남아있었다. 잠시 한국에 들어오면서 떨어지게 된 두 사람, 각자 이 만남이 하나님이 맺어주신 만남이란 증거를 말씀에서 찾는 가운데 마침내 말씀이 주어졌다. 아내에게는 창세기 2장 18절 말씀, ‘돕는 배필’이라는 말씀을 주셨다. 스티븐에게는 예레미야 29장 11절 말씀이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건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고, 희망이라는 말씀이에요. 우리 둘이 국적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나이 차이도 컸지만 이 모든 것이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고 희망이라는 말씀입니다.”

▲ 한국의 전통적 결혼 모습이 잘 어울리는 스티븐 집사 부부

국적 달라도 “노 프로블럼”

결혼 전에는 둘 사이에 장벽도 만만치 않았고 수십 번 헤어지자는 다툼도 있었지만 결혼 후에는 한번도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다. 스티븐 집사는 활짝 웃으며 “노 프로블럼”이라고 요약한다. 대개 데이트할 때에는 마냥 좋다가 결혼 후에 티격태격 싸우는 것과는 정반대라고 자랑이다. 남보다 일찍 다문화 가정을 꾸민 이들은 그래서 종종 ‘후배’ 커플들에게 조언하곤 한다.

“남편이 서예나 한자, 가야금, 태껸 같은 것을 배울 때마다 저와 같이 배우자고 해요. 사실 전 취미가 그쪽에 없거든요. 그래도 그렇게 같이 하자고 졸라서 어쩔 수 없이 같이 다녔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잘한 일 같아요. 나이 먹어도 부부가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게 있어야 하잖아요. 스티븐은 이걸 팀워크이라고 해요. 맞는 것 같아요.”

이들 부부의 결합은 양가 식구들에게도 인생의 지평을 더 넓게 열어주었다. 한국인이지만 한국문화를 잘 몰랐던 가족들이 오히려 스티븐을 통해 가야금을 처음 만져보고 한국 반만년 역사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됐다. 한국에서 보는 달에는 토끼가 살고 있지만 미국에서 보는 달에는 ‘스마일 페이스’ 웃는 얼굴이 보인다는 걸 알면서 삶은 더욱 흥미로워졌다.

두 사람의 만남이 ‘재앙이 아니라 희망’이라고 주신 말씀처럼 결혼 후에 실제로 이들 부부에겐 꿈이 생겼다. 스티븐의 고향인 피츠버그에 한옥을 짓고 ‘한옥 스테이’를 하면서 한국 문화를 미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인 모두에게 소개하고 싶은 꿈이다. 이를 위해 스티븐 씨는 최근에는 한옥 짓는 법을 배우려고 애쓰고 있다.

처음 서예에서 시작된 그의 한국문화 사랑은 남다르다. 한글과 함께 한국문화를 알기 위해 꼭 필요한 한자 역시 이미 터득했다. 그래서 그의 영어수업 방식은 지루할 틈이 없다. 양평 영어마을에서 근무할 적엔 아이들에게 한글과 한자, 영어를 넘나들며 가르쳐 더욱 흥미로운 수업이 됐다.

가야금 배우기는 학생들과 대화중에 시작됐다. 서양악기 바이올린을 배운다는 학생과 대화 끝에 스티븐, 이렇게 스스로 약속해버렸다. “얘들아, 왜 바이올린을 배우냐. 너희 악기인 가야금을 배워야지. 너희가 바이올린 배우면 난 가야금을 배우겠다.” 그렇게 시작된 가야금 실력, 이젠 제법 멋진 소리를 튕긴다. 언젠가 그가 좋아하는 ‘핑크 플로이드’의 팝송을 가야금으로 연주할 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서

‘사람은 그냥 사람이다’

그러나 꿈에는 대가가 따른다. 더 많은 한국 문화를 배우기 위해 최근 영어마을 교사직을 사임한 스티븐은 아내와 처가댁에 들어와 살고 있다. 이런 사위를 바라보는 장인장모의 눈엔 걱정스러운 빛도 있지만 그러나 믿어준다. “장모님 음식이 최고”라면서 매운 청양고추까지 즐겨먹는 사위와 함께 사는 재미도 쏠쏠하다. 서로 다른 문화라는 것이 때로는 큰 웃음을 주기도 한다.

“언젠가 아내와 어디를 갔는데, 아내가 어느 가게 앞에 차를 주차하라고 하고 먼저 갔어요. 그런데 가게 할아버지가 나와서 ‘여기다 주차하면 안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할아버지에게 그랬어요. ‘내 부인이 가라사대, 여기 괜찮아요!’” 한글 성경에서 배운 말로 할아버지를 난감하게 만들기도 했다.

‘사람은 그냥 사람이다.’ 스티븐이 잘 쓰는 말이다. 국적과 언어와 문화와 지역이 달라도, 사람은 다 통하는 데가 있다. 이들은 미국인 커플이라서 오히려 부러움을 받을 때가 있지만 동남아 사람과 결혼한 커플들이 종종 따가운 시선을 받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점점 세상은 좁아지는 시대에, 한국도 ‘단일민족’ 자랑에 매이기보다는 세계로 더 뻗어나가는 ‘지구촌 가족’이 되길 바란다.

언젠가 고향 피츠버그로 돌아가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한옥 짓고,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한옥 스테이’를 하며, 한 백년 살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행복한 스티븐. 그의 집을 찾는 이들에게 먹을 찍어 붓글씨로 이름을 써주고, 가야금으로 팝송을 연주해주며, 멋지게 태껸 발차기 시범을 보여준다. 이것이 한국이다! 그 생각만 해도, 스티븐의 처가살이 아닌 처가살이는 오늘도 마냥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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