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은 ‘신앙 양심’ 속이는 것…말씀 앞에 치열한 사투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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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은 ‘신앙 양심’ 속이는 것…말씀 앞에 치열한 사투 있어야”
  • 정하라 기자
  • 승인 2015.08.2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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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 비롯한 4개 단체, ‘표절과 한국교회’ 주제로 포럼 개최

‘표절’이 사회적 문제만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큰 논란거리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저명한 신학자들의 논문에 표절 의혹이 일면서, 한국교회 내 표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히 최고의 도덕성이 요구되는 설교자나 신학자가 ‘표절’ 시비에 휘말리고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받게 되는 타격은 더욱 크다.
비단 논문 표절만이 문제는 아니다. 목회자들의 설교 표절은 그동안 공공연한 비밀로 회자되어 왔다.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영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한 치열한 사투를 벌여야 하는 목회자들에게 있어 설교 표절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
이에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교회개혁실천연대 등 4개 단체는 지난 27일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 4층에서 ‘표절과 한국교회’를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표절문제를 ‘논문’, ‘출판’, ‘설교’의 세 분야로 나누어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교회개혁실천연대 등 4개 단체는 지난 27일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 4층에서 ‘표절과 한국교회’를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다.

#한국교회의 개혁과제 ‘표절’

그렇다면 한국교회 내 표절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며, 어떠한 양상으로 표출되고 있을까.

한국신약학회 편집위원장을 역임한 차정식 교수(한일장신대 신학부)는 “학자들은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한된 기간 내 많은 논문을 출판해 자신의 실적을 높여야 한다. 그러다 보니, 꼼수를 동원하게 되는데 이것이 요즘 논란이 분분한 논문 표절”이라고 밝혔다.

논문은 학문적 탐구라는 본래의 목적 외에도 신학 교수들의 임용 및 승진의 평가 기준이 된다. 또 논문의 심사과정에서 질적 성취나 창의성이 고려되지만, 일단 심사를 통과하면 평준화되므로 일단 많이 써 경쟁력을 확보하려 할 수밖에 없다. 학자들이 표절을 통해서라도 많은 논문을 작성해 연구 실적을 남기려는 이유다.

차 교수는 “논문 표절은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유사한 패턴으로 나타나지만 신학계가 더욱 심각한 것 같다”며, “교단과 신학 교육기관 자체의 영세성과 폐쇄성으로 인해 사안이 발각되어도 대강 눙치고 넘어가는 인습적 관행이 작용됐다”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표절 시비에 휘말린 총신대 교수 7명이 공동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한국교계 내에 표절에 대한 논란이 가속화되고 있다.

문제를 제기한 ‘신학서적표절반대’ 운영자 이성하 목사(원주가현침례교회)는 “대부분이 복잡한 표절 문제가 아니라 번역 수준의 표절이었다. 수십 페이지, 문단, 몇 줄 전체를 그대로 가져온 경우”라며, “표절에 수위가 논란에 이를 정도로 애매한 것이 아닌, 그야말로 초보적인 수준이 대부분이었다”라고 꼬집었다.

논란이 된 서적은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출간된 성서신학 서적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교수들은 자신의 논문지도 교수의 책을 상당부분 표절했으며, 자기가 표절한 원서와 자기 책을 동시에 교재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그는 주장했다.

세부적인 표절의 형태로는 △본문의 내용을 축약한 ‘본문 축약’ △있는 그대로 옮긴 ‘카피’ △여러 부분을 짜깁기한 ‘짜깁기’ △각주를 본문으로, 본문을 각주로 옮긴 ‘주객전도’ △글의 주어를 바꿔서 자기 글처럼 만든 ‘페이스오프’ 역 등을 제시했다.

이 목사는 “저자들은 잘못을 인정하고 출판사들은 논란이 된 책들에 대해 회수 및 절판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학회나 대학별로 분명한 표절의 기준을 세우고, 논란이 된 저서와 논문에 대한 심사를 거쳐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리를 값 주고 사되, 팔지는 말아야

저작권법을 통해 표절의 법적 문제를 살핀 남형두 교수(연세대 로스쿨)는 “표절에는 타인의 저작글 또는 아이디어를 적절한 출처 표시 없이 ‘자기 것인 양’ 부당하게 사용하는 행위인 ‘전형적 표절’과 이를 제외한 비전형적 표절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모든 지적재산권의 인용을 ‘표절’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작권법 제2관 지적재산권의 제한 제28조(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에 따르면,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등 정당한 범위 안에서는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는 있다.

남 교수는 “직접 인용하지 않고 표현을 바꾸거나 ‘아이디어’만 가져다 쓰는 것은 저작권 침해가 아니다”라며, “윤리적인 문제는 되지만, 법률적 처벌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단, 표현을 바꿨다 할지라도 원문의 독창적 아이디어가 남아있다면, 출처를 표시해야 한다. 표절의 기준이 까다로워 오늘날의 기준을 적용해 수십 년 전의 저작물을 문제로 삼을 수 있느냐에 대한 논란도 있다. 현행법은 저작자가 생존하는 동안과 사망 후 ‘70년’을 기준으로 한다.

남 교수는 “사실상 현행법을 기준으로 과거의 학술의 표절을 찾을 경우, 엄격한 표절의 기준에서 벗어나기도 쉽지 않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시 시대의 ‘표절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최근 표절의 문제가 상업적 목적으로 집단화되고 타겟화 되는 움직임에 대한 우려도 개진됐다.

그는 “특정한 상업적 목적으로 표절을 파헤치는 ‘표절 사냥꾼(헌터)’들이 있다. 그러나 진리를 값을 주고 사되, 팔지는 말아야 한다. 또한 이들을 미워할 것이 아니라, 학문적 관심에서 학문이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집요한 ‘묵상’하는 자가 표절할 수 있겠나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표절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는, 집요한 말씀 묵상과 연구, 기도의 치열한 경건생활이 제시됐다. 또 표절 기준이 명확하더라도 모든 문서와 설교를 분석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당사자의 ‘양심’이 강조됐다.

▲ 서문강 목사는 기윤실 '표절과 한국교회' 포럼에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표절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는, 집요한 말씀 묵상과 연구, 기도를 통한 치열한 경건생활을 강조했다.

서문강 목사(중심교회)는 “표절 설교의 문제는 설교 자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 설교자의 신앙 양심까지 수반되는 문제”라며, “남이 발견해 증거 한 진리를 자기가 발견해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속여 자신을 높이는 기만적인 술수”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소명이 없으면 은사도 주어지지 않는다. 부적절한 표절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진리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목회자의 소명을 확고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성실한 설교 준비 과정의 중요성을 역설한 그는, “한편의 설교를 바르게 준비하기 위해 설교자는 진을 빼는 고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유명한 설교자 로이드 존스의 강해설교는 부단하고 집요한 본문연구와 기도와 묵상, 그리고 집요한 독서와 묵상, 사유(思惟)를 통해서만 가능했다”며, “이는 곧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성경에 비추어 인생과 사물을 묵상하고 사유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설교자는 성령의 감동하심(영감)을 통해 용케 그 메시지를 감지하게 된다는 것. 서 목사는 “그런 설교자의 경우 설교할 거리가 모자라거나, 자신의 설교를 위해 남의 설교에 기웃거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렇다고 해서 표절을 우려해 다른 이의 설교를 참조하거나, 듣지도 않는 것은 독선적 설교나 학문의 빈약함을 초래할 수 있다.

서 목사는 “신실하게 소명을 감당한 설교자들에게는 모두 그에게 영향을 미친 ‘앞선 설교자’가 반드시 있었다. 설교자들에게는 모방이 아닌, ‘다른 이들의 설교를 듣고 참조하는 습관’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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