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 민감했던 믿음의 선배들의 가르침을 기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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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민감했던 믿음의 선배들의 가르침을 기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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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8.26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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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인섭 교수 / 백석대학교

손양원 목사의 내면세계와 영적생활은 개혁주의생명신학과 유사한 점들이 매우 많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의 7대 실천운동들 모두가 손양원 목사의 신앙과 삶, 신학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특별히 강조할 것들은 두 가지, ‘영적생명운동’과 ‘기도성령운동’이다.

손양원 목사가 가진 내면세계와 영적생활은 ‘개혁주의생명신학의 아버지’ 김영철 목사의 그것과 유사한 점들이 많다. 우선 김영철 목사도 손양원 목사처럼 말씀과 기도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품게 되었고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였기 때문에 까닭 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을 가슴으로 품었다. 그리고 김영철 목사도 고난의 현실을 실제로 많이 통과하였기 때문에 고난의 가치에 대한 명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유사점들보다 김영철 목사와 손양원 목사 사이에 있는 두드러지는 공통점은 바로 죄에 대한 민감함이고, 바로 여기에서 나오는 영적인 생명에 대한 확신이다.  김영철 목사는 한평생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와 욕망으로 인하여 나약하게 서 있는 자신의 모습, 예수님을 설교하면서도 인간의 정욕으로 가득 차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찾으면서도 동시에 못난 자신의 모습으로 인하여 낮아지고 또 낮아졌다. 이러한 죄에 대한 예민함으로 인하여 그의 설교는 매우 비판적인 면모를 갖게 되었는데, 이는 김영철 목사의 설교가 바로 손양원 목사와 같이 자신을 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김영철 목사와 손양원 목사가 가진 이러한 죄에 대한 민감함이라는 깨끗한 통로를 통해서 성령의 능력을 마음껏 흘려보낼 수 있으셨던 것이다.

김영철 목사는 평생 전적으로 기도에 헌신한 목회자였다. 기도실에서 몇 시간씩 기도의 세계 속에 빠져 있었고, 어떤 때는 끼니도 거르면서 온종일 기도하기도 했고, 이러는 가운데 기도의 능력도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김영철 목사의 기도에 대한 전적인 헌신은 앞서 언급한 죄에 대한 민감함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자신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죄의 욕망을 제어하여 어찌하든지 하나님과 활짝 열려진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참된 생명의 삶이었다. 결국 손양원 목사와 김영철 목사의 삶과 사역 속에서 향기롭게 피어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꽃은 기도에 대한 전적인 헌신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많이 닮은 목회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손양원 목사, 그래서 평범한 인생들은 존경심과 거리감의 이중적 감정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가진 내면세계와 영적생활을 살펴보는 것은 목회자들에게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왜냐하면 목회자들은 연약하고 완악한 인생의 본질을 여전히 간직한 채, 거룩한 사명의 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인간의 실존적 고뇌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손양원 목사는 십자가신앙으로 말미암아 죄에 대하여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믿고 기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거창한 대의를 향한 근심과 그것과 관련된 강력한 메시지를 외치기 이전에,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자신 속에 있는 죄의 근성이었고, 그것 때문에 그는 기도했고, 기도에 목숨을 바쳤다. 어쩌면 손양원 목사는 순교를 위해서 목숨을 던진 것이 아니라, 죄의 정욕과 싸우기 위한 기도,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위한 기도에 생명을 던졌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혁주의생명신학의 아버지’인 김영철 목사의 일생도 손양원 목사의 내면세계와 영적생활의 연장선상에 있다. ‘질그릇’에 불과한 손양원 목사는 죄에 대한 민감하고, 죄의 정욕을 극복하기 위하여 기도에 전적으로 헌신함으로써 위대한 ‘영웅 손양원’으로서의 한평생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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