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본질도, 신학의 본질도 선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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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본질도, 신학의 본질도 선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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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7.22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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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근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선교학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교회 전반에 걸쳐 드러나고 있는 교회와 연관된 문제들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문제의 원인들이 더 심화되며 확장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지난 2~3년 동안 국내 신학대학원 입시 지원율의 급격한 하락과 더불어 해외선교의 인적자원 고갈현상(선교사 동원, 훈련생 수의 감소 등)과 지역교회를 통한 해외 선교사 후원금의 감소현상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위기상황을 초래한 이유와 원인에 대한 다양한 분석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그 기저에는 “선교에 대한 축소되고 왜곡된 이해”가 자리 잡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선교는 복음과 교회와 세상에 대한 이해와 불가분의 연관성을 띠어왔다.


교회의 본질은 선교이며 신학의 본질과 목적도 선교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기에 교회를 위해 존재하는 신학의 본질 또한 선교를 벗어나서는 의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선교를 일종의 프로그램이나 프로젝트 혹은 해외 선교사들이 이루어 놓은 가시적인 결과물들로 간주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자신의 존재이유를 하나님 나라에서 찾기보다 교회성장 중심의 거대한 건물과 숫자를 늘리는 효율적인 방식을 통해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에서 찾았다. 요즈음 한국교회 내에 선교적 교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개념에 대한 이해와 적용은 매우 상이한 양상들로 나타나고 있다. 즉 선교적 교회는 교회의 본질과 궁극적 목적에 대한 고민에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또 다른 교회성장이나 복음전도의 프로그램들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만일 교회가 본래 부름 받고 보냄 받은 선교적 공동체로 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이 세상에 교회보다 혁명적인 것은 없다. 그러나 교회가 그 본질과 목적을 상실할 때, 이 세상에 교회가 갖고 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선교의 정의를 내리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선교의 목적은 항상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근거해야만 한다.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세주로 고백하지 않고서 우리는 기독교 선교에 관해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의 선교의 두가지 초점인 창조와 구석은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통합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크리스 라이트는 성경적인 선교가 “모든 차원을 통합할 만큼 총체적이라고 주장하려면, 그 모든 차원들이 십자가와 연결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따라서 구속과 화해는 분리된 개념이라기보다는 통전적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교회에게 화해의 직분을 주셨다는 바울의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지향하는 것으로서 모든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새 창조를 지향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처한 위기는 교회의 본질이자 궁극적인 목적인 선교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을뿐더러 교회의 삶의 근본적인 현실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선교와 교회에 대한 “목적전치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선교의 정의를 파악하고 교회의 본질적인 목적과 목표를 깨닫는다고 할지라도 교회가 자동적으로 선교적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개념에 대하 정확한 정의를 내리고 그 본질을 안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 헌신과 소명과 연관된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을 살아낼 수 있는 결단과 희생과 순종이다. 우리가 복음을 살아내고 복음의 메시지가 우리의 삶의 이야기를 통해 열방 가운데 드러나도록 만드는 능력은 십자가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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