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명 교회 목사가 700명 목양하는 ‘은혜’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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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명 교회 목사가 700명 목양하는 ‘은혜’ 누린다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5.07.08 15:5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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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통장으로 지역을 섬기는 목회
▲ 서울 석관동 동월교회 강건수 목사는 성도 수 20여명 모이는 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목양하는 교인들은 700명이 넘는다. 그가 통장으로 있는 석관동 17통 사는 주민들이 그에겐 또 다른 ‘교인’들이다.

석관동 17통 통장 동월교회 강건수 목사

우리나라에 모두 7만 8천개의 교회가 있다고 한다. 이 숫자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전국 편의점 숫자 2만 5천개의 세배가 된다. 그만큼 적지 않다는 말이다. 문제는 그 교회들 중에서 통계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작게는 50%, 많게는 70%가 미자립교회라는 점이다. 교회들 중 상당수가 성도 수 20여명이 안되는 곳이 많다.

교회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어 미자립교회나 개척교회들이 점점 더 성장하기 어려워지는 시대에,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목회의 틀을 짜나가는 목사가 있다. 서울 석관동 동월교회(기장) 강건수 목사는 성도 수 20여명 모이는 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목양하는 교인들은 700명이 넘는다. 그가 통장으로 있는 석관동 17통 주민들이 그에겐 또 다른 ‘교인’들이다.

 

‘목사가 저래도 되나?’

“2013년 2월에 통장이 됐지요. 그전까지 사실 통장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몰랐지만 이곳에 교회를 옮긴지 6-7년이 되었는데 교회와 주민이 아무런 관계가 없더라고요. 꼭 지역 주민을 전도하겠다는 것보다도, 교회가 이곳에 있으며 교회가 뭔가 유익한 곳이구나 알려주고 싶었어요.”

큰 교회들이 많은 교인들과 넉넉한 물량으로 전도하는 모습을 거리에서 마주칠 때, 작은 교회들은 사실 힘 빠질 때가 적지 않다. 작은 교회가, 그 목회자가 지역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그때 마침 강 목사의 눈에 통장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보였다. 통장이 돼서 일을 하면 지역사회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가 몇 명 안되는 교인들과 교회 안에서만 복작복작하는 것도, 하루 종일 아무도 찾지 않는 교회당에 달랑 혼자 앉아있는 것도, 마뜩찮았다. 예수님께서도 온 동네를 두루 다니시지 않았는가. 그분께서 교인들만 심방하신 건 아니지 않는가. 

통장은 신문을 나눠주는 일, 민방위 일, 적십자회비 일 등을 하고 요즘엔 쓰레기 문제가 심각해서 그것을 홍보하는 일, 또 주민참여제를 늘려가는 추세라, 구청 예산도 형식적으로라도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는데 그 일들을 맡고 있다. 때로는 동네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갈등 상황을 중재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때로 힘들고 귀찮을 수 있는 일들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이런 일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주민들과 접촉하며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하는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염두에 둔다면, 통장이야말로 지역사회에서 그 일을 감당하기에 가장 적절한 자리이기도 하다. 교세가 큰 교회 목사라면 지역 주민들까지 돌볼 여력이 없겠지만 작은 교회 목사로선 해볼만한 사역이다.

“목사가 통장을 하니까 한쪽에서는 참 신선하다는 반응도 있었고요. 한쪽에서는 ‘목사가 저래도 되나?’ 이런 시각도 있었고요. 동네아저씨처럼 신문 들고 다니면서 민방위 일하고 하는 모습이 기존의 목사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보면 이상할 수 있겠죠. 그럼 못하는 거죠. 그러나 통장을 하기 때문에 합법적으로 주민들을 찾아가 볼 수 있는 거죠. 처음 만날 땐 꼭 통장 아무개 목사라고 저를 소개합니다.”

 

▲ 교회로 찾아온 주민들에게 미용 봉사를 하고 있는 교인들.

어려운 주민 찾아 돕는 기쁨

그는 역설적으로 생각했다. 교회가 지역사회를 위해 무엇을 만들고 새로 조직할 수도 있지만 거꾸로 이미 세상에는 많은 조직이 있다. 목사가, 교인이 그 속에 들어가서 그 일원이 되어 활동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잃은 자들을 찾아가셨듯이, 목사도 그들을 찾아간다.

“제가 처음 통장에 응모해 인터뷰를 하게 됐어요. 동장을 중심으로 한 10여명 있었습니다. 각 동네에는 20여개 단체들이 있어요. 그 단체장들을 만났죠. 통장이 돼서 통친회에 갔더니 43명의 동료 통장들이 있어요. 동사무소 직원이 19명이예요. 벌써 70여명을 알게 된 것이죠. 지역사회에 주축이 되는 분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 것 아닙니까? 백날 교회 안에만 앉아있으면 이럴 수 없죠.”

동월교회는 작은 교회지만 미용봉사와 바자회를 열어 지역사회를 섬기고 있다. 미용봉사는 이웃 교회의 자원봉사자들과 협력해서 동네의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혜택을 드리고 있다. 지난 설에는 따뜻한 가래떡을 선물로 드렸더니 “교회가 이렇게 관심을 써주니 고맙다”며 행복해했다.

바자회는 2년에 한 번씩 여는데 지난 바자회 때는 인근 통장들과 주민들이 많이 방문했다. 교회와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있는 모습을 보는 강 목사의 마음은 뿌듯하다.

“통장이 하는 일 중에 힘든 일이 2년마다 있는 세대 호구조사인데 힘들어도 열심히 합니다. 가서 보면 그분의 형편을 알게 되고 도울 길도 열립니다. 한번은 월세가 8개월 밀리고 도시가스가 6개월 전부터 끊긴 미혼모를 알게 됐어요. 가보니까 엄동설한인데 작은 전기스토브에 의지해서 살더라고요.”

당장 필요한 생필품을 챙겨줬다. 기초수급자 신고를 해주었다. 월드비전 같은 구호단체에 협조를 구해서 마침내 밀린 월세, 가스요금 등도 해결했다. 마침 그날이 크리스마스 전날이었다. 예수님이 오신 날 밤에 난방이 들어왔다. 깨끗이 청소된 방에 온기가 돌자 천국이 따로 없었다.

목사가 통장을 하면서 이런 미담들을 만들어가는 기쁨이 있다. 아무래도 목회자는 일반 사람보다 이런 사례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리더십이 있다. 물론 고충도 없진 않다. 어려운 처지의 주민들은 한두 번 돕는다고 형편이 크게 나아지지 않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도할 수밖에 없을 때도 있다.

 

작은 교회의 한계를 넘어서다

“통장을 하면서 교회에 나오지는 않지만 ‘저 목사님은 좋은 일을 한다’는 인식이 동네 사람들에게 생긴 것 같아요. 교회는 안나오지만 우리 교회를 자기 교회처럼 생각하거든요. 때로는 신앙상담도 하고 교회에 대해서 묻기도 하죠. 교회 목사로만 있었으면 전혀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을 만나고 교회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을 보게 되니까 좋습니다.”

교회는 눈에 보이는 유형 교회가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 교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유형 교회를 보며 감탄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유형 교회로 보자면 동월교회는 작은 교회에 불과하다. 그러나 무형 교회로 보자면 그 동네 많은 사람들이 동참해주는 ‘큰 교회’로 성장했다.

원래 동월교회는 고 허병섭 목사로 잘 알려진 민중교회였다. 그러나 지금 그 시대의 ‘민중교회’와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민중교회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요즘 ‘생활정치’라는 말처럼, 실생활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마음을 전달하려고 한다.

“당장 전도를 위해 통장을 해선 안되고 또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요즘 교회에 대한 세상의 시각이 너무 안좋잖아요. 목사들을 얼마나 이상하게 봅니까. 그러나 통장 일로 자연스럽게 주민들과 접촉하며 그들과 소통하고 도울 일이 있다는 게 감사하죠. 아마 제가 이 일을 그만 두면 오히려 그때는 전도에도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늘 변화가 보이지 않는 작은 교회에 갇혀서, 열등감에 허우적대거나 외곬으로 치우칠 수 있는 함정에서 빠져나와, 지역 동네에서 더 많은 ‘교인’들을 대상으로 목회하고 있는 강건수 목사. 오늘도 그는 동사무소의 심부름을 하는 게 전혀 부끄럽지 않다.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는 그 발걸음을 통해 누군가에게 ‘복음’이 전달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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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갑 2015-07-17 16:47:01
아~~~~!!! 이런 목사님도 계시는군요??? 감동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목회를 하셨으면 이런 모습으로 하시지 않았을까요? 목사님! 힘내시기 바랍니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