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가는 길, 남북은 무조건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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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로 가는 길, 남북은 무조건 만나야 한다”
  • 이인창 기자
  • 승인 2015.07.01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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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서 UN 초대인권대사가 말하는 통일과 인권
▲ 박경서 UN 초대인권대사는 유엔이 결의한 북한인권결의안은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북한 인권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이산가족상봉, 북한 주민 식량지원 등을 위한 남한과 국제사회의 노력도 필요함을 언급했다.

북한 인권문제는 우리 사회 안에서 대립적 이슈임에 분명하다. 국내 인권 이슈에 관심이 컸던 진보진영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반면, 국내 인권문제에는 소홀했던 보수진영은 오히려 북한 인권문제를 중심축에 두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난해 12월 유엔총회 본회의에서는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됐다. 안전보장이사회가 인권유린 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도록 하는 강력한 내용이 담기긴 처음이다.

결의안을 배경으로 지난달 23일에는 북한인권사무소까지 서울에 개소됐다. 북한은 도발 의지까지 나타내며 강력 반발하고 있지만 결의안은 국제사회가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 초대 유엔인권대사로 7년 동안 활동했던 박경서 박사 역시 유엔 인권결의안은 존중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다만 인권결의안에 나타난 북한 인권문제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요한 권고안들까지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슨 이야기일까?

인터뷰는 지난 22일 서울 명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계간지 통일코리아가 주최한 가운데 기독교연합신문과, 인터넷신문 뉴스파워가 함께 취재했다. 

“남북문제 통일과 평화를 전제해 다뤄야”

박경서 박사는 1982년부터 1999년까지 세계교회협의회(WCC) 아시아국장으로 18년 동안 활동했고, 그동안 26차례나 북한을 다녀왔다. 세계교회를 대표해 김일성 주석을 두 차례나 면담했으며, 1990년대 북한에 대홍수가 났을 때는 유럽과 미국, 아시아 교회의 후원을 모아 4천3백만불, 당시 환율로 약 6백6십억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2000년 입국해서는 초대유엔인권대사로 임금도 사양한 채 활동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초대위원, 경찰청 인권위원장을 역임하고 일흔 다섯인 지금은 여러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돕고 있다.

이력에서 보여지듯, 박경서 박사만큼 북한문제와 인권문제에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국내에 많지 않을 것이다. 한반도 통일을 위해 북한 인권문제는 반드시 넘어야 할 과제다. 그는 북한은 물론이거니와 남한도 대북인권결의안을 따라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엔 인권결의안은 ICC 제소가 중점이지만, 이산가족상봉과 북한 주민 식량지원, 상호신뢰 프로그램 등의 내용도 있습니다. 193개국의 뜻이 담긴 것입니다. 지금 한반도는 최신 무기 경연장과 같아요. 평화공존을 위해 북한은 핵 위협을 중단하고 군사훈련도 상호 중단하는 상식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북한의 인권문제를 단순히 이념적 갈등양상에서 볼 것이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위한 중요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인권문제가 우리 사회 안에서 이념적,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데 대해 경계를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또 북한 인권결의안에는 “1953년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라는 내용이 담겨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며 자라나는 세대들이라도 한반도 평화공존 시대를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항상 화해의 사도가 되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교회가 증오의 원천으로 둔갑해 버리면 안 됩니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인권문제를 포괄적으로 접근해 봅시다. 평화공존이 안 된 채 제 맘대로 목소리를 낸다면 70년 분단의 질곡의 역사는 더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남북 관계에서 다뤄져야 하는 모든 이슈는 평화를 지향해야 하며, 그것은 화해가 전제돼야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핵심이었다.

▲ 1970년 폴란드 무명용사 기념비를 참배하던 중 갑자기 무릎 꿇고 사죄하는 빌리 브란트 총리

빌리 브란트에게서 통일을 배우다

박경서 박사는 2014년 아내와 함께 빌리 브란트 전 서독총리에 관한 책 ‘빌리 브란트를 기억한다’를 공동 번역했다. 빌리 브란트의 비서실장 에곤 바의 회고록으로 빌리 브란트가 독일 통일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빌리 브란트는 1969년 서독 수상이 된 이후 서방정책을 포기하고 과감하게 동방정책을 추진해 동서독 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동독과 외교관계를 맺은 국가와는 외교를 단절한다는 원칙 대신 동구권 국가와의 관계를 회복한 것이다. 동독과도 외교관계를 개선하며 1973년 유엔에 공동 가입하기에 이른다. 이후 동서독은 꾸준히 교류를 이뤄가면서 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다.

박경서 박사는 동서독 통일의 배경과 남북한이 처한 상황은 다르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우리가 배울 정신들이 상당하다고 언급했다.

“빌리 브란트는 ‘평화는 전부가 아니다. 그러나 평화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고 했습니다. 동서독은 당시 만날 때는 아젠다가 없이 만나기도 했습니다. 무조건 접촉을 통해서 상호변화를 일으켜보자는 것입니다. 남북한도 그래야 합니다. 전제를 두고는 대화는 어렵습니다.”

실제 지금의 남북한 사이에는 전제가 너무 많다. 특히 최근 7~8년 사이는 그러한 전제 때문에 답답할 정도로 남북관계는 답보 상태를 거듭하고 있다.

박경서 박사는 그저 만나보자고 했다. 만나고 만나다 보면 신뢰가 쌓이게 되고 선입견을 배제해 갈 수 있지 않겠냐는 주장이다.

그는 유엔 인권대사 시절 국내 한센병 환우들이 주최하는 전국대회에 초청된 적이 있다. 당시 협회 간부들이 공동목욕을 제안했고, 탕에 함께 들어가면서 ‘이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런 식으로 한센병은 전염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남북한이 서로 선입견을 넘어서 궁극적으로 평화로 나가는 노력이 기울여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박경서 박사는 다시 한 번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1973년 헬싱키 프로세스를 바탕으로 미국, 소련 등 35개국이 환영한 가운데 동서독이 1975년 불가침조약을 체결했던 것처럼 우리도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진보, 보수할 것 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DMZ 평화공원이 동북아 국가들의 환영 속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려면 만나야 하고 대화해야 한다.

▲ 박경서 박사는 한국교회의 노력뿐 아니라 세계교회가 함께 힘들 모아 통일을 위한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의 물꼬, 세계교회와 함께 열어야

넬슨 만델라는 평화가 가장 무섭고 위대한 무기라고 했다고 한다. 만델라는 백인들의 인종차별정책에 저항하다 26년간이나 옥살이를 했지만, 집권한 후 백인들을 용서하고 껴안아버렸다. 교회는 바로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박경서 박사는 18년간 세계교회협의회(WCC)에서 사역하면서, 일본 도잔소회의, 스위스 글로온 1,2,3차 회의 등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노력의 현장을 경험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토대가 됐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선언’ 이른 바 88선언을 그는 역사적 관점에서 중요하게 평가했다.

특히 지난 2013년 전 세계 345개 교파가 모여 부산에서 함께했던 WCC 제10차 총회의 성과를 높이 평가했다. 당시 부산총회에서는 ‘한반도 평화선언문’이 채택돼 세계교회가 8월 15일 직전주일을 한반도 평화를 위한 기도주일로 지키기로 결의했다. 남북한 통일을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선언했고, 그들의 영향력은 각국 정부에 미칠 수 있게 됐다.

지난해에는 스위스 보세이에서 한반도 평화선언문 구체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회의를 남북한 교회도 동참한 가운데 열렸고, 오는 9월에는 평양에서 평화기도회를 개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는 통일을 위해 한국교회 노력만이 아니라 세계교회가 연대해야 한다는 주장한다.

그는 대북 인도적 지원 논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국제사회 현황을 근거로 퍼주기 논란에 대해 반박했다.

“대북지원 중 남한에서 지원된 것은 최대 18%입니다. 나머지 81%가 해외에서 들어간 것이고, 파키스탄이나 중국 등지에서 들어간 원조는 통계에서도 빠진 것입니다. 이걸 보면 우리의 지원은 많지 않은 수준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에 따르면 10세 이하 어린이가 장기영양실조에 걸릴 경우 키가 20Cm, 키가 20Kg이상 적게 나온다고 합니다. 통일을 위해서는 같이 살아야 하는데 이 어린이들은 어떻게 할 겁니까?”

“통일은 하나님이 준 선물입니다”

박경서 박사는 통일을 위한 교회의 역할을 이야기하며 빌리 브란트를 다시 이야기했다. 빌리 브란트는 1970년 폴란드 무명용사의 묘를 참배하던 중 갑자기 무릎을 꿇고 사죄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폴란드와 체코에 강탈했던 유산들을 돌려주었다.

그가 독일로 다시 돌아왔을 때 독일 국민의 48%는 그를 탄핵하는 데 지지했고, 42%는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적 경쟁관계에 있던 기독민주당 12명의 의원들이 반대했고 결국 탄핵은 무산됐다. 박경서 박사는 그들 뒤에 기독교 신앙고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신앙적 관점에서 옳지 않았던 것이라며 한국교회 안에 이런 모습을 강조했다.

지난 1월 독일 통일 당시 대통령을 지낸 바이체커 박사가 별세했다. WCC 중앙위원을 지내기도 했던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메르켈 총리’는 애도사에서 “독일 통일 당시 바이체커 박사의 연설이 지금 자신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이야기했다. 아래는 박경서 박사가 전한 바이체커 박사의 연설문 일부이다.

“우리가 이런 날이 올 줄 꿈엔들 꿈꿀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이 준 선물입니다. 역사가 이번만은 (지난 역사의 죄를 사죄했기 때문에) 독일 국민에게 선물로 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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