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살이' 기독교인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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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살이' 기독교인이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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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24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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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원장 / 한국고등신학연구원

중세 천년이 만들어낸 제도와 전통의 부작용은 중세 말 많은 사람이 교회를 떠나게 만들고 급기야 가톨릭과 개신교종교개혁을 야기했다. 중세 천년의 프레임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을 때 중세말 사람들은 신과 인간을 새롭게 잇는 휴머니즘과 새로운 문명의 발전과 발견을 세련되게 집대성한 문화의 종합인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인식과 정신의 틀을 만들어 냈다. 당시 근본을 바꾼 작업이 근대와 근대의 산물인 개신교를 만들어 냈다.


그런 혁명적 신앙과 사고의 근저에는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가꾸어온 신앙적 자산이 지닌 가치와 힘에 대한 확신이 자리해야 한다. 아직도 우리에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복음이 지닌 원초적인 힘이 있다. 우리 앞에는 그 어떤 학자나 스승보다 더 위대한 예수님의 3년간의 공생애라는 살아있는 교과서와 가르침이 있다.


들판과 현장에서 이루어진 예수님의 교육은 원초적인데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복음의 원초적 능력을 믿고, 머리나 입으로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복음을 사는 것”, 즉 “복음살이”가 중요한 것이다.


한국교회의 부흥과 회복을 위해서는 아이비리그를 나온 신학자나 초대형교회 목사가 더 많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말씀 한 구절을 손으로 마음으로 만져가면서 복음을 온몸으로 살아내려고 하는 무명의 기독교인, “복음살이 기독교인”이 더 필요할지 모른다.


100여년 전 민족의 독립을 꿈꾸었던 기독교 민족지도자 안창호는 성경책을 품에 꼭 껴안고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조국의 미래를 꿈꾸었다. 같은 시기 자기 가족과 마을사람들을 이끌고 함흥을 떠나 중국에 규암재와 명동학교를 세웠던 김약연 목사는 호연지기를 가진 지도자가 배출되기를 신앙으로 절규했다.


나라 잃은 백성이 돌아갈 곳이 없듯이 국민과 역사를 외면한 기독교는 생명 담지자 이전에 종교로서 설 자리가 없다. 더군다나 다종교 사회에 익숙한 한국국민들은 특정종교가 지도력을 다했을 때 언제든지 말을 갈아타 버린 전력이 있는 민족이다. 이는 기독교의 유일성이나 생명의 힘을 간과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공동체와 현실이라는 것이 신앙 못지않게 중요하나는 것이다. 한국종교와 역사의 특수성 상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민족의 현실과 민족이 나아갈 바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서는 이 시대 민족을 품는 생명의 종교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교회가 진정한 예수혁명을 꿈꾸려거든 예수님이 3년간 살아가신 갈릴리 생애를 우리도 “나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나서야 한다. 예수님이 왜, 신학적 중심담론이 있고 권력이 집중된 예루살렘을 그렇게 피하셨는지, 왜 창녀와 거지들과 공인된 죄인들의 친구라고 비판을 받았는지를 되새김질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현장으로 내려가야 한다. 우리 자신이 낮은 곳으로 성육신해야 한다. 복음을 전하고 구원을 얻게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현장의 절규에 민초들의 귀와 마음을 기울이는 것 역시 중요하다. 기독교역사는 지난 2천년간 일어난 모든 종류의 종교개혁의 1차적 동인이 ‘시대와 민초들의 현장의 삶과 절규에 대한 반응’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한반도에도 신앙의 절규와 한탄, 기쁨과 환희를 절절히 느낄 수 있는 현장이 많다. 그 현장으로 내려가야 한다. 당장 우리의 모든 삶의 형태를 바꿀 수 없지만 우리의 마음과 각오만큼이라도 그렇게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제 우리가 안락의자에 앉아있는 학자와 목회자의 신분에서 한 시대의 정신과 화두를 던지며 온몸으로 복음살이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나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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