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적 성경 읽기
상태바
수평적 성경 읽기
  • 운영자
  • 승인 2015.06.10 12: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는 내가 좋아하는 그림 중의 하나이다. 이 그림은 누가복음 15장의 탕자 이야기(15:11-32)를 묘사하고 있지만, 동시에 렘브란트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전 삶을 되돌아 본 신앙고백적인 그림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1669) 렘브란트는 생애 말년에 사랑하는 아내 사스키아와 외아들 티투스를 잃고 절망에 빠져 있다가, 누가복음 15장의 돌아온 둘째 아들을 용서하고 맞이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자신을 용서하고 맞이하는 아버지 하나님을 체험하였고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였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렘브란트의 그림은 누구든지 하나님께 돌아가서 자신의 죄를 고백할 때, 하나님은 항상 그를 용서하고 아들로 맞이한다는 훌륭한 복음의 선포이기도 하다.


하지만 렘브란트의 그림을 볼 때마다 한 가지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것은 렘브란트의 그림이 당시 풍미하였던 계몽주의 사상의 수직적 성경 읽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 이야기를 자세하게 살펴보면, 돌아온 둘째 아들을 맞이하는 전반부(15:11-24)의 수직적인 장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둘째 아들과 첫째 아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을 하나로 화해시키려는 후반부(15:25-32)의 수평적 장면도 있다. 십계명이 하나님과 인간의 수직적 관계의 계명(1-4)과 인간과 인간 사이의 수평적 관계의 계명(5-10)으로 구성된 것처럼, 탕자 이야기는 분명히 수직적 장면과 수평적 장면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렘브란트의 그림은 전반부의 수직적 장면에 치우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야기를 보면 수직적 장면은 이미 해피엔딩으로 완성되어 있지만, 수평적인 장면은 첫째 아들의 응답을 기다리는 미완성으로 남겨 독자들에게 그 답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탕자 이야기를 하신 예수님의 의도와 강조점이 수직적 장면보다 오히려 수평적 장면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한국교회는 렘브란트처럼 그동안 지나치게 수직적 성경읽기에 치우쳐 개인 회심과 구원을 강조해 온 점을 되돌아보고, 이제는 이를 뛰어넘어 나와 너, 나와 이웃, 우리와 사회를 보는 수평적 성경읽기에 보다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한국교회의 하나 됨은 가까워지고, 우리 사회는 보다 따뜻한 사회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가까워질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