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펜젤러, 최우선 사명으로 복음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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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펜젤러, 최우선 사명으로 복음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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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10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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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정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

아펜젤러는 기독교적 원리와 가치에 의해 당시 조선의 문화를 변혁시키려고 했다. 강렬한 소명의 확신, 선교사업의 과제에 대한 종말론적인 긴박감, 도덕적인 진지성을 가지고, 그는 자신의 선교개척자 역할에 자신을 온전히 불태웠던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인 복음의 전파를 자신의 지고의 사명으로 삼았던 아펜젤러에게 조선 백성이 죄를 깨닫고 죄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하는 것이 가장 간절한 소원이며 열망이었다. 그 복음의 핵심은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었으며, 어떤 인간적인 관점에서도 도덕적인 절망 속에 있던 조선백성들이 그 은혜의 복음을 누릴 수 없다고 그는 확신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관점에서만 오직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영광스러운 복음의 능력을 언급하면서, 아펜젤러는 그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 그 이름으로 일하는 것만이 자신의 선교사로서의 유일한, 즉 최우선적인 사역이라고 증언하였다. 조선인들을 멸망시키려고 온갖 궤계를 통해 결박하고 있는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하고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이 복음을 전할 때,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승리는 입증될 것이었다.


물론 아펜젤러는 선교의 목적 가운데 두 번째로 조선을 문화적으로 개화하려는 목표를 품고 있었다. 현대적 문화의 건설 및 사회제도의 소개, 즉 서구의 문화 전달을 통해 조선 땅에 기독교적인 문명을 형성하는 문명화의 과제가 그에게 중요하였던 것이다. 기독교 신앙이 개인적, 사회적, 문화적, 문명적 영역에까지 모든 생활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그는 믿고 있었고 그렇게 실천하였다.


배재학당을 세워 포괄적인 인문교육을 통해 그가 그 이상과 이념을 추구했던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을 심는 교육에 관심하면서 아펜젤러는 때로 복음의 궁극적인 가치와 함께 서구 문명의 우월성을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대의 선교사들의 일반적인 태도에 따라, 오늘날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재평가들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입장은 이해할 만한 것이었다고 하겠다.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될 중요한 점은 아펜젤러에게 복음이 최우선의 사명으로 압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무한한 가치를 지닌 보배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소유하는 것, 그것만이 조선이 살 길이요,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품으셨던 섭리적인 계획이었던 것이다.


한국 교회역사가 흘러오면서 부정적 요소로서 이원론적 금욕주의, 지나친 저 세상적인 관심을 지향한 것을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행함 없는 신앙지상주의 내지는 신앙유일론(solafideism), 세속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의 약화, 기복주의, 비정치화, 몰역사화, 비사회화, 비문화화 등의 길을 걸어왔다는 평가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아펜젤러가 보여주는 복음주의는 건전하고 균형 잡힌 웨슬리적인 복음주의임에 틀림없다. 십자가의 복음에 분명하고 확고하게 기초를 두고 성화의 양면을 통전적으로 실현했기 때문이다.


즉 그는 인격적 성화를 추구하면서도 사회적, 문화적 성화 - 수평적 외면적 요소를 포함하는 - 역시 강조했던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20세기 미국 감리교회를 대표하는 저명한 웨슬리 신학자였던 알버트 아웃틀러(Albert C. Outler)의 탁월한 논의에서 지적된바 건전한 복음주의 혹은 복음전파(evangelism)에 해당하는 영성과 신학이 웨슬리에게서 시작되어 아펜젤러에게서 열매 맺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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