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으로 만나는] 외국의 선교사들을 반성하게 한 초기 한국교회의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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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만나는] 외국의 선교사들을 반성하게 한 초기 한국교회의 부흥
  • 김목화 기자
  • 승인 2015.06.03 0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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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초기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성격과 의미

한국 기독교 수용의 성격은 영혼에 대한 깊은 고뇌와 종교적인 사색에서 비롯된 것일 뿐 아니라 대체로 사회·정치적 불안과 동요에서도 기인되었다. 이 점을 감안할 때 평양대부흥운동은 중요한 의미가 깃든 사건이라 볼 수 있다. 또한 한국교회에 끼친 영향이 엄청났다.

먼저 부흥운동을 통해 기독교 순수 신앙과 정신이 한국 기독교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또한 한국인 신자와 선교사간의 이해 증진에 크게 기여했다. 과거 선교사들은 한국인을 자신들과는 구별되는 열등한 인간으로 보는 등 백인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부흥운동을 계기로 선교사와 한국인 신자 모두가 허물에 찬 죄인임을 자복하고, 그간 쌓여있던 위화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뢰와 이해가 깊어져갔다.

또 부흥운동이 끼친 영향은 한국교회와 교인의 도덕성 향상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이다. 한국초기 교회와 교인의 사회·도덕적인 취약점은 부흥운동을 통해 크게 불식되었고, 한국교회의 경건성을 구현하는 기틀이 되었다.

성경공부와 기도의 열심 또한 고양됐다. 이 점은 세계 기독교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한국교회의 특징이다. 선교사의 입국 이전 이미 한글성경이 만주와 일본에서 한국인에 의해 번역되었고, 국내에 전해져 성경만을 접한 후 기독교에 입교한 독특한 역사도 있다. 이러한 역사성으로 한국교회는 성경공부를 중심으로 사경회가 일찍부터 성행하고, 그 열심 또한 괄목할만 했다.

기도에 대한 열심 또한 마찬가지였다. 한국 교인은 모이기만 하면 합심해 기도하기에 힘썼고, 기도회는 새벽부터 밤이 되도록 진행되는 일이 허다했다.

선교사 데이비스는 이러한 한국 교인의 모습이 너무도 진지하고 열심이어서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였다고 이렇게 전했다.

 

“한국 교인들은 영혼을 위하여 매우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 그들의 독실하고 진지한 신앙은 기독교국인 우리들을 부끄럽게 한다. 지난 겨울 송도에서 부흥회가 몇 차례 있었는데 교인들은 으레 밤집회 후에는 산에 올라가서 얼어붙언 맨 땅에 엎디어 성령강림을 위하여 하나님께 울며 기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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