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 가장 중요한 요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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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 가장 중요한 요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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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5.2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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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교부들의 예수 그리스도 이해의 출발점
▲ 조병하 교수

19세기에 신약신학자들 사이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연구는 역사적 예수에 대한 문제 즉, “신앙의 그리스도”에 집중됐다. 1906년 알베르트 슈바이쪄의 ‘라이마루스에서 브레데까지’(예수 생애연구에 대한 역사)가 발행되면서 논쟁의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슈바이쪄의 주장들은 “일방적이고 편파적인 진술이 이루어졌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논쟁은 켈러에게서 “역사의 순수한 예수”, “신앙의 순수한 그리스도”의 표제어와 불트만에게서 “탈신화화”의 신학을 이뤘다. 그리고 논쟁은 그의 제자들 콘ㅤㅉㅔㄹ만과 케제만에게 이어져 갔다.
에프 한은 이러한 논쟁을 살펴 상세히 전문용어들을 소개한다. 전통적인 역사문제를 위해 “부활이전의 예수”와 “부활의 주”를 제시한다. 또한 원시 그리스도교의 선포의 그리스도론적인 흥미가 “지상의 예수”와 “예수, 높이어진 주”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어 현대비평의 의미에서 볼 때 원시공동체에서의 흥미는 “역사적 예수”가 아니라 “지상의 예수”에 두었다고 주장한다.


유명한 교부학자인 아로이스 그릴마이어는 무엇보다도 교부들의 그리스도이해에 대해 방대한 글, 5권으로 쓴 책 ‘교회의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이신 예수’ 1권에서 교부들의 그리스도론의 성서적인 출발점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는 성서의 말씀 중에서 2세기 중엽까지 교부들이 중요한 관점으로 받아들이게 됐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존귀함의 칭호”를 다섯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그 중, 여기에서는, “예언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를 제외하고 세 가지 칭호만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우선 그릴마이어는 예수가 “다윗의 아들”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해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정리한다. 그에 따르면, 나단의 예언은 삼하 7:16에서 “다윗의 아들”로서의 메시야를 기대했다. 신약 성서에서 이 세상 혈통에 따라서 예수가 다윗의 아들로서 묘사될 때 다윗에 대하여 예수의 초월성을 묘사한다. 마가복음은 그것을 헬라 유대 그리스도교공동체로부터 물려받았다.(막 10:46-52; 11:1-11; 12:35-37) 마태복음에서는 다윗의 아들이 항상 “자비로운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었다. 예수가 다윗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누가복음서에도 확실하다. 그리고 비록 요한복음에는 없지만 요한계시록에는 잘 나타나 있다.(계 3:7; 5:5; 22:16)


또한 “다윗의 아들”과 더불어 가장 오랜 명칭은 “하나님의 종”이다.(마 12:18) 여러 해석자들은 이것이 이사야의 “하나님의 종”으로부터 나왔다고 한다. 유대교 내에서 “하나님의 종”을 메시야로 묘사되는 일은 없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루기 위한 직무상의 이름이었다. “하나님의 종”이 메시야로 이해된 것은 “사랑하는”이라는 말을 첨가하여 언급한 클레멘스 1서에서 이다.


성경에서 매우 중요한 칭호 가운데 하나인 “인자”라는 칭호는 신약성서에서처럼 교부들에게서도 가장 불투명한 그리스도 이해에 따른 묘사이다. 행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에서 인자에 대한 칭호가 스데반에 의하여 제시된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의미 보다 인자의 의미에 비중이 더 주어진다. 또한 교부들은 시 8: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를 그리스도-인간론적으로 받아 들였다. 그리고 아들과의 관계에서 요한복음에 13회 사용됐고 “하늘로부터 내려왔고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갈 인자”(3:13; 6:62), “들리어 십자가에 달리는 인자”(3:13; 8:28; 12:34)가 묘사된다. 그리고 13:31-에서는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참여자들 중 하나가 예수를 팔 것에 대하여 말씀 하시고 가롯 유다에게 떡을 주시자 그가 만찬 자리를 떠났을 때 예수께서 “인자의 영광”에 대해 말씀하셨다.


영지주의 이단들에 직면했던 사도교부들 중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는 ‘에베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20:2 “... 육체를 따라 다윗의 자손이고 인자와 하나님의 아들 ...”에서 인자의 개념을 요한복음 1:14의 성육신 도식과 연관하여 사용한다. 그에 의하여 주어진 “인자”와 “하나님의 아들”의 대조는 이미 양성론의 도식을 예감하게 한다. 계속해서 순교자 유스티누스나 리용의 이레나이우스 역시 같은 맥락에서 빈번히 사용했다. 최종적으로 오리게네스에게서 더욱 확장됐다.(4세기 그리스도론의 발전과정에서 이 같은 원리는 상당한 변화를 보인다. 타르수스의 디오도르는 “하나님의 아들”-“다윗의 아들”과 “하나님의 아들”-“인간의 아들”의 양자관계를 분명히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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