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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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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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5.2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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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돈 교수 /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죽음은 우리가 터부시하는 주제이다. 그것이 주는 부담도 있지만, 회피해 보고자 하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에 김열규는 한국인들이 죽음에 대해서 ‘백치’라는 표현을 썼다. 죽음에 대해서 알고 있으면서 짐짓 모르는 척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낳고 살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은 정해진 이치인데 이를 모른 척하면서 죽음의 두려움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다고 그 현실이 사라지지는 않는데 말이다.


현대사회가 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죽음에서 멀어지고 있다. 죽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가 죽음의 주체가 안 되고, 죽음을 우리 가운데서 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다. 사람이 언제 죽고, 어떻게 죽는지에 대해서는 인간의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뜻에 따라서 정해준다는 의미이다. 인간이 가장 겸허하게 되는 순간은 바로 죽음의 때이다. 그 앞에 설 때 인간은 한 없이 나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순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이러한 순리가 깨어지고 있다. 사람이 죽음의 때와 방법을 정하려 하는 것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려는 것이다. 임종 때가 되면 의사가 묻는다. 어떤 방법들이 이제 남았는데 어찌하시겠느냐고. 그러면 가족들은 재정과 양심과 관계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보통 자식의 도리라는 것과 재정, 그리고 남은 이들의 도리 사이에서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의술이 발달되면서 제왕절개수술을 통해 아이를 낳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출산이 어려운 이들을 의술이 돕는 것이었는데 약삭빠른 사람들이 쉽게 아이 낳는 방법으로, 심지어는 좋은 날과 시간에 아이가 태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이 방법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로서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죽음도 하나님의 순리 가운데 이루어져야 하는 것에서 인간의 선택 사항이 되고 말았다. 이로서 죽음은 우리 가운데 소외되었다.
죽는 것만 소외된 것은 아니다. 죽음 이후도 역시 우리에게서 소외되었다. 과거 ‘죽음 이후’인 장례는 가족과 마을, 그리고 교회의 일이었다. 장례의 모든 절차는 공동체의 일이었던 것이다. 과거 한 사람이 죽으면 가족뿐만 아니라 마을 공동체 전체가 함께 하는 장례 절차가 있었다. 몇 날, 며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대접하는 음식을 만드는 일은 보통이 아니었다. 특히 상여를 매고 나가는 것이나 꽃상여를 만드는 일까지 한 두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장례는 가족과 마을의 큰 일이 되었던 것이다.


그 후 그러한 일을 교회가 감당하게 되었다. 장례가 나면 교회가 나서서 그 모든 일정을 감당해 주었다. 특히 같은 구역의 사람들은 장례의 모든 절차 가운데 봉사로 섬기게 되었다. 음식을 만들어 내고 손님을 대접하는 일까지도 교회가 하는 일이었다. 특히 목사는 그러한 일에 중심이었다. 과거 신학교에서는 염하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목사가 하는 일 중에 장례 가운데 염을 하는 것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장례가 집을 떠났다. 병원에 딸린 장례식장에서 치러지는 것이다. 요즘은 이에 더해서 상조회가 나서서 모든 일을 감당해 준다. 돈을 내기만 하면 그들이 모든 봉사와 순서를 전문적으로 잘 해 준다. 이렇게 되니 장례는 가족과 마을, 심지어 교회마저 떠났다. 과거 장례 과정에 중심이었던 목사들마저도 장례의 절차에 출연자밖에 안 되는 처지가 되었다. 순서를 정해주는 이가 나서라고 할 때 나서서 장례예식과 위로예배를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로서 죽음 이후는 우리에게 소외되고 말았다.


죽음을 잃은 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상실이다. 죽음은 우리로 겸허하게 하고 삶을 좀 더 진지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한다. 죽음은 우리로 하나님 앞에 서도록 하며 인간의 연약함을 체험하도록 한다. 그런데 그 죽음을 잃어버리고 이 요란한 세상에서 널 뛰듯 우리의 영혼은 뿌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죽음을 돌려놓아야 한다. 죽음이 우리의 것이 되고, 나의 것이 될 때 이 세상은 좀 더 진지하고, 좀 더 바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로 하나님 앞에 서도록 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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