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전무후무한 지휘자는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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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전무후무한 지휘자는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5.05.14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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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김광현
▲ 언제나 김광현 지휘자 뒤에는 아버지의 기도가 있었다. 결혼해 분가할 때까지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안고 매일 기도해주었다. 그래서 김 지휘자는 항상 기도를 부탁한다. 그는 ‘기도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영혼을 울리는 교향악을 꿈꾼다

지난해 11월, 강원도 원주시립교향악단이 2015년 상임지휘자로 김광현 씨를 선정했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에 음악계에선 놀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원주시향은 우리나라에서 10대 교향악단에 들어갈 정도로 인정받는 악단. 단원들 역시 상당수가 유학파로 수준 높은 음악을 들려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해 상임지휘자로 선정된 김광현 씨는 당시 34세로 국공립교향악단 지휘자 중 최연소였다.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부지휘자 출신으로 경력도 남들에 비해 크게 화려한 것도 아니었다. 국제 콩쿨 수상경력도 없고 교수도 아니었다. 그런 그가 원주시향의 상임지휘자로 뽑히자 음악계가 소란해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맛에 공연장에 가지”

그가 상임지휘자 취임기념음악회로 처음 지휘봉을 잡은 지난 1월 제97회 정기연주회. 반응은 뜨거웠다. 댓글들이 난리가 났다. ‘김광현 지휘자가 와서 원주시향이 달라졌다’ ‘지휘자 한 사람이 이렇게 중요하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어떤 블로거는 ‘오랜만에 소름’이란 제목으로 이런 소감을 남겼다.

‘새로운 지휘자였다. 김광현. 원주시향의 제2대 상임지휘자란다. 또 마침 취임연주회라네? 이 젊은 지휘자를 보려고 연주회에 간 건 아니었지만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하기 앞서 무대에 나와 자기소개를 하는데 당차고 센스 있더라. 지휘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협연자와 눈빛으로 진하게 교감하고 리타르단도를 맞추는 모습이 소름 돋게 감동적이었다. 이야, 이런 맛에 공연장에 가지.’

연주회 후에 댓글들을 보던 그의 마음이 뜨거워졌다.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 저를 왜 여기 보내셨습니까?’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았다. 독일에서 귀국한 후 경기필에 부지휘자로 발탁됐다. 그것도 감사한 일이었다. 안정된 자리였다. 그러나 2년 반이 되자 매너리즘이 찾아왔다. 지루했다. 부지휘자로서는 연주에 한계가 있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하나님께 투정이 시작됐다.

“그러던 중에 원주시향 공고를 본 거예요. 제가 나이가 너무 어려서 사실 되리라곤 생각 못했고요. 한번 경험 삼아 낸 거죠. 그런데 제가 뽑힌 거예요. 이건 정말 하나님께서 저를 보내주신 것이죠. 첫 공연을 했는데, 그 반응도 또 너무 뜨겁고 좋은 겁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저를 왜 여기 보내셨습니까? 제가 뭐 길래 이렇게 저를 들어 쓰십니까?”

사실 그는 이런 체험이 많다. 대학 입시 때였다. 지금도 돌아보면 그때가 가장 두려웠던 때였다고 한다. 꿈은 있었지만 서울대 지휘과에 들어간다는 보장은 없었다. 음악 쪽은 좀 괜찮았는데, 공부는 보통이었다. 어머니는 고3 아들을 위해 새벽제단을 쌓으셨다. 새벽기도에서 돌아온 어머니는 항상 아들 방에 들러 자는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때마다 저는 자는 척 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저를 위해 기도하는데 아서 설리반의 잃어버린 음악이라는 곡이 들리는 겁니다. 어디서 CD를 틀은 적도 없는데요. 그러면서 제 마음속에서 메시지가 들렸어요.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입시가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던 때였다. 너무 불안했었다. 공부도 해야 하고 실기도 잘해야 하는데, 내 실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도 없었다. 그날 새벽에 처음 하나님의 음성을 그렇게 들었다. 장중한 음악과 함께 들리던 주님의 목소리. 일거에 모든 불안이 사라졌다. 자신감이 생겼다. 지망했던 두 군데 대학 모두 합격 소식을 전해주었다.

그렇게 서울대 지휘과 대학생활이 시작됐다. 대학 재학시절엔 세계적인 거장 샤를 뒤트와에게 한국대표 신예지휘자로 발탁되어 일본 미야자키 페스티벌에서 규슈 심포니를 지휘했고, 재학생 최초로 서울대학교 60주년 기념 정기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지휘했다.

 

재능과 신앙을 주신 부모님

“졸업 후에 독일로 유학을 가서도 늘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경험했죠.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첫날 수요예배를 참석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왜 여기 보내셨습니까?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는 사람도 없고, 학교도 아직 안 붙은 상황이고, 돈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필요할 때마다 적절한 사람을 보내주셨다.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지휘과 공부를 할 때였다. 루마니아로 초대를 받아 가서 지휘를 해야할 일이 생겼다. 그러나 그 전 주에 세 시간짜리 오페라를 지휘하느라고 루마니아에서 지휘할 곡을 전혀 공부하지 못했다. 그런데 다 외워서 지휘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곡 분석할 시간도 없었는데 말이다.

“답답한 마음으로 루마니아에 갔는데 뜬금없이 우리 지휘과를 초청한 선생님이 절 부르시더니 지휘할 곡을 분석한 자료를 제게 주시는 겁니다. 쿠바 사람으로 독일어도 못하시는 분인데 저를 몇 시간동안 무료로 레슨을 해주셨어요. 거짓말처럼 다음날 외워서 지휘를 했습니다. 지휘가 끝나자 담당 교수님이 박수를 치면서 ‘얘처럼 지휘해야 한다’고 칭찬해주시는 거예요.”

그때도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 도대체 제게 왜 이러시는 거예요.’ 사실 그는 그 답을 안다. 기도 덕분이었다. 그의 뒤에는 부모님의 기도와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기도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기도를 부탁한다. 기도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 김명엽 지휘자는 음악적 재능과 신앙을 물려주었다. 연대 음악대학 교회음악과 교수를 역임하고 서울시합창단 단장으로 지금도 왕성하게 일하는 아버지는 ‘김명엽의 찬송 교실’을 발간하며 교회음악을 선도해 왔다.

“아버지께서 제가 결혼해서 분가할 때까지 출근 전에 매일 저와 동생을 안고 기도해주셨어요. 새벽에 아버지가 기도해주시면 저희는 잠결에도 ‘아멘’하고 또 자곤 했죠. 그게 지금까지도 저희에게 힘이 되는 것 같아요.”

▲ 김광현 지휘자가 원주시립교향악단과 함께 연주 후 두 팔을 벌려 관객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있다.

기독교 정신이 지휘자의 덕목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음대 지휘과 석사과정을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지휘자 협회’에서 우수 지휘자로 선발되기도 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오페라 ‘에프게니 오네긴’을 지휘했을 때에는 세계적인 테너 프란치스코 아라이자가 ‘이것이 진정한 차이코프스키 오페라다’라고 그의 지휘를 극찬했다.

“좋은 지휘자란 당연히 악보를 정확히 파악하고 기술적인 부분에서 완벽한 성취를 이뤄야 하죠. 그러나 정서적으로 단원들의 마음을 얻고 소통하는 능력이 없으면 결코 좋은 음악을 관객들에게 들려드릴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휘자는 군림하기보다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기독교 정신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지휘자의 소양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스스로 그런 삶의 모범을 보이셨다. 그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늘 낮은 자세로 단원들과 소통하기 원한다. 청중들의 눈높이에 맞는 음악을 추구한다.

“50대 50의 원칙으로 음악을 준비합니다. 우리 단원들을 포함해서 수준 높은 예술적 작품들을 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긴 시립교향악단이라는 거죠. 원주 시민 35만 명이 다 클래식 팬은 아니거든요. 그렇다면 대중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세상과 불협화음이었던 인생들을 거두어 가장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냈던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다양한 악기들을 조화시키며 동시에 각각의 개성이 오롯이 발현되도록 이끈 위대한 지휘자였다. 그 십자가의 사랑이 죄 많은 땅과 거룩한 하늘을 잇는, 그래서 우주를 울리는 가장 위대한 심포니였다. 지휘자 김광현은 오늘도 그분을 마음에 담고 지휘봉을 든다. 마음을 두드리고 영혼까지 울리는 웅장한 교향악을 꿈꾸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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