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 아닌 일터로 출근하고 싶어"… 할아버지는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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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당 아닌 일터로 출근하고 싶어"… 할아버지는 일하고 싶다
  • 김목화 기자
  • 승인 2015.05.12 2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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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의 현장을 가다 ③독거노인생활관리사의 하루
▲ 신장이 좋지 않은 최영순(가명) 할머니는 독거노인생활관리사 모상순 권사를 딸처럼 예뻐한다.

서울에서 독거노인 가장 많은 은평구, 은평어르신돌봄통합지원센터가 책임진다

은평어르신돌봄통합지원센터(센터장:마정욱) 독거노인생활관리사 모상순(삼송감리교회) 권사는 매일 아침마다 하루 일정을 꼼꼼히 체크하느라 바쁘다. 모 권사의 가방에는 그날그날 담기는 물건이 조금씩 다르다. 담당하고 있는 서른여명의 독거노인에 대한 꼼꼼한 메모가 적힌 수첩을 비롯해 치약, 빵, 비누 등 생활필수품도 더러 보인다.

“오늘 박미녀(가명, 75세) 할머니 드리려고 치약 챙겨왔는데, 할머니가 잠시 밖에 나가셨나? 왜 전화를 안 받으실까? 이따가 가봐야겠네.”

홀로 사는 할머니가 치약을 다 써간다 해서 마련한 치약이었다. 홀로 사는 노인분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살피다보니 세세한 부분까지도 신경을 써야 한다. 관리하는 독거노인분들 대부분이 생활환경이나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편은 아니지만 대부분 기초연금(만 65세 이상 어르신 중 상대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70%의 어르신께 드리는 연금)으로 생활하거나 자녀에게 의지하지 않은 채 무직인 경우가 많다.

“어른을 찾아뵈러 가는데 그냥 빈손으로 가면 안되잖아요. 뭐라도 들고 가면 주는 내 마음도 기쁘고 받는 어르신들도 좋아하시고. 사비를 들여 사가는 경우도 있지만 여기 저기에서 지원을 받아 어르신들께 드리는 경우도 많아요. 비록 지원을 받기까지의 과정이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르신들이 좋아하시면 그보다 보람된 건 없죠.”

독거노인생활관리사는 조금 더 바쁠 수밖에 없다. 노인분들의 독고사, 우울증 등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생활관리를 하는 것이지만, 매일같이 얼굴을 보며, 전화를 하며 정을 쌓아가다보니 신경쓰이는 게 한두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을 대하는 마음이 남다르다보니 지원을 받는 일이 쉽지 않지만 사소한 간식거리도 챙기게 된다.

“나 손자 혼인 들어와서 파마 좀 해야겠어. 여기 머리 끄트머리 좀 말고 싶은데”, “내일 같이 파마하러 갈까요?”, “…내가 사람을 못 만나고 다니니까 아주 죽겠어. 주사도 못 맞겠어서 안 맞았어”, “얼굴이 안 좋으시네요”, “응, 책도 못 읽겠고 힘드네. 약도 안 넘어가고. 아, 수박있는데 수박 꺼내줄게!”, “왠 수박이에요?”, “지난 주말에 어버이날이라고 애들이 와서 기분 좋았어. 에고 수박도 입이 써서 그런지 맛이 없네. 기자 아가씨도 수박 좀 드세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오니까 아주 좋으네.”

갈현1동에 홀로 사는 최영순(가명·87세) 할머니는 공무원이었던 남편이 있었다. 서울 역삼동에서 ‘사모님’ 소리 들으며 살았다. 하지만 남편을 여위고 오늘날까지 19년째 ‘독거노인’으로 살고 있다. 자식들은 “강남에서 살기 바빠서” 못 온단다.

최 할머니는 3일에 한번씩 찾아와주고 자신을 챙겨주는 독거노인생활관리사가 딸 같단다. 모상순 권사도 최 할머니가 친정엄마 같단다. “최 할머니네 집에 오면 밥도 새로 해주시고, 누워 자다가라고 하시고, 차도 마시고 가고. 나도 친정엄마 집에 온 것 같다니깐.” 복지 차원으로 도와줄 수 있는 부분만 해줘도 되지만 이처럼 끈끈한 정을 나누게 된단다.

하지만 최영순 할머니는 내내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나 갈 데로 빨리 가야지, 아주 힘들어 죽겠어.” 몸과 마음이 아픈 할머니 혼자 사는 어둑한 집이라 그랬을까. 할머니가 한입 베어물고 만 새빨간 수박 한조각이 쟁반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게 처량하게 느껴졌다.

▲ 가족 없이 홀로 살아가는 노인을 ‘독거노인’이라 부른다. 노인 혼자 살아도 있을 건 다 있다. 정돈하게 정리되어 있는 95세 김소담 할머니네 세간살림 사이로 여호수아 24장 15절 말씀이 보인다.

해가 잘 들지 않는 반지하집은 천장과 벽에 곰팡이가 숱하게 슬기 일쑤다. 하지만 김소담(95세, 은현감리교회 전 전도사) 할머니네 갈현1동 반지하집은 신기할 정도로 ‘뽀송뽀송’하다. “하나님 앞에 늘 감사해야 해. 이 집에 처음에 들어왔을 때 (습해서) 벽에서 천장에서 물이 얼마나 절절 흘렀는지 몰라.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보송보송하잖아. 참 살기 좋아.”

74세부터 홀로 산 김소담 할머니는 몇 남지 않은 이를 드러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오래도록 전도사 생활을 해온 김소담 할머니는 나이와 다르게 에너지가 넘쳤다. 유쾌한 할머니였다. 마침 늦은 아침 식사를 마쳤던 터라 이를 쑤시고 있던 참이란다. “내가 이는 몇 개 없어도 이나이 들어서 콩자반도 씹어 먹어. 그리고 이쑤실 게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하하하하.”

여전히 가방에 이쑤시게를 넣고 다닌다는 김 할머니는 한국전쟁 때 북에서 월남했다. 전쟁이 나기 전 남편이 지인에게 큰 돈을 꾸었단다. 그와중에 전쟁이 났다. 전쟁이 난 마당에도 남편은 꾼 돈을 갚아야 하는데 연락이 끊겨 어떡하나 걱정했단다. 그때 김소담 할머니는 ‘난리통에 그럴 수도 있지 뭐’라고 생각했단다. 하지만 남편은 죽기 전까지 꾼 돈을 갚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묵은 빚을 갚아냈다.

“젊은 날 그 사소한 생각도 다 죄였어. 하나님 앞에서 ‘그럴 수도 있지 뭐’라는 건 없어. 하나님은 절대 안 잊어먹으셔. 남편이 묵은 빚을 갚았을 때 내가 얼마나 회개했는지 몰라. 다 하나님 은혜로 사는 건데, 내가 교만했지. 내가 하나님께 받은 모든 물질 중에 쥐고 있는 건 없어. 다 하나님께 다시 드렸어. 이제 마음이 편해. 천국가기 전 하나님 심판 앞에 섰을 때, 나 떳떳할 수 있으니까. 하루하루가 감사하다니까.”

김소담 할머니는 올해들어 벌써 신약도 몇 번이나 읽었단다. 늙은 몸이라 사역은 더 이상 못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강해 열정이 끓는단다. 몸도 아픈 구석이 없단다.

▲ 김소담 할머니가 자식들이 사다 준 주방기기를 내보이며 자랑하고 있다. 김 할머니는 "물 끓여마시지, 빵 구어먹지, 밥 해먹지. 내 마음대로 먹을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며 웃음지었다.

모상순 권사가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다음에 만날 관리  독거노인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다. 일어날 채비를 하니 김소담 할머니가 “어버이날이라고 딸이 사위랑 와서 맛있는 거 사준데. 그리고 나 딸네서 자고 주일날 올 거야. 나 보고싶어도 참아야해”라며 인사를 전한다. 할머니 뒤로 정갈한 싱크대가 눈에 들어왔다. 세간살림 한켠으로 성경 구절이 걸려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여호수아 24:15).

몇 걸음 걷다보니 놀이터가 보였다. 벤치에 앉으니 놀이터 옆에 경로당이 보인다. 경로당에서 커피 한 잔 들은 훤칠한 할아버지가 멋있게 걸어오더니, 모상순 권사에게 내밀었다. 멋쟁이 신길수(가명, 70세) 할아버지였다.

17년 전 아내와 사별했다. 아내는 암이었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다니던 직장을 잃었다. “내가 전두환 정권 시절 빽이 좀 있었거든.” 홀로 되고서는 갈현동에 사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한 해 같이 사시더니 돌아가셨다. 아들은 국비로 미국 유학을 떠났고, 딸은 부산에서 부동산을 운영한단다. 언뜻 듣기에는 자식농사 하나는 잘 지은 것 같긴 하지만, 자식들 중 할아버지에게 매달 용돈을 드리는 이는 없다.

▲ 그네를 타는 아이들 뒤로 경로당 건물이 보인다. 놀이터 정자는 늘 노인분들 몫이다.

퇴직금을 가지고 주식 투자를 했다. 하지만 통장 잔고는 점점 말라갔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단다. “내가 주식에 대해서 잘 알지. 지금도 누가 물어보면 내가 다 알려준다니까.” 모상순 권사가 할아버지에게 요즘에는 친구 사무실에서 연락이 없냐고 물었다. 할아버지는 친구가 영업하는 사무실에 가끔씩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언제 아르바이트를 했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할아버지였다.

“일 하고 싶어.”

할아버지는 어디서든 불러만 준다면 일 할 수 있단다. “하지만 나이가 있어서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아. 힘든 일은 못해도 일 할 수 있는데 말이야.” 할아버지가 심심해보여, 남은 하루 계획을 물었다. “갈 데도 없어. 사우나나 갈까….” 모 권사가 “또 사우나 가냐”고 핀잔을 던지니 할아버지는 시간 때우기 가장 좋은 곳이 사우나란다. 체력이 있어보이는 탓에 기자가 ‘등산’을 권유했더니 할아버지가 “시간 없어 못 가”란다. 그리고 등산복, 등산화도 없어서 못 간단다. “등산 좋아하는데, 등산복 다 갖추고 가려니 50만원 들더라고. 비싸서 등산도 못 가.” 그저 할아버지는 ‘일’ 하고 싶다.

모 권사가 아침에 길을 나서며 챙겼던 치약을 전하려고 박미녀 할머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박미녀 할머니가 오지 말란다. 이전에는 방문을 반겼던 박 할머니였다.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윗집에 이사온 은퇴목사가 성경공부를 하자며 찾아왔다고 하더니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이단’에 빠진 게 아닐까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결국 박미녀 할머니는 만나지 못했다. 이처럼 독거노인은 취약한 환경, 절대적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홀로 사는 노인층 교인들을 돌보는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교회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 근 10년간 총무로 봉사해온 최사홍 총무는 올해로 83세지만 경로당을 찾는 노인들을 위해 사방으로 일하고 있었다. 이날도 경로당 운영과 관련해 사회복지 책을 피고 열독하고 있던 최 총무였다. 그도 아내와 사별한지 3년된 독거노인이다.

경노당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도 모상순 권사가 관리하는 독거노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경로당에 모인 대부분의 노인들은 홀로 사는 분들이었다. 경로당도 우여곡절 사연이 많았다. 근 10년간 총무로 봉사해온 최사홍 총무는 올해로 83세지만 경로당을 찾는 노인들을 위해 사방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도 아내와 사별한지 3년된 독거노인이었다.

경로당은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경로당을 찾는 노인 회원에게 월 2천원씩 받는다. 정부에서 월 48만원씩 보조금을 받지만 경로당 임대료 월 20만원에 식당일을 하는 노인직원에게 보수를 주고 노인지회에도 매달 3만원씩 내면 운영하기에 빠듯하다. 이와중에 회장직을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몇 년 간 꼬박꼬박 통장에 모아온 회비와 지원금을 1천만원을 홀라당 가지고 도망가기도 했단다. 정부에서 경로당을 관리하거나 전문가를 배치하지 않기 때문에 노인들이 자립해 운영해야 하는만큼 취약한 부분도 많았다.

최사홍 총무는 “오래 이곳에서 총무로 있으면서 돈 문제로 마음 고생을 번번히 했다”며 “그래도 갈현1동 경로당은 모범경로당으로 꼽히고 있어 보람된다”고 말했다. 또 “회원들이 남은 여생 경로당에서 더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웃음을 지었다.

▲ 갈현1동 경로당 식사준비가 한창이다. 식당일을 돕는 할머니들 또한 독거노인이다. 두 할머니는 월 보수 10만원을 받고 일하지만, 주방일이 너무 힘이 들어 곧 그만둔다고 한다.

젊은이들이 보기에는 다 같은 ‘노인’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노인층 사이에서도 ‘끼리끼리’가 존재한다. 60대, 70대, 80대 간 세대차이도 유별나다. 최사홍 총무는 경로당을 찾는 노인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지낼 수 있을지 늘 고민이다.

이날 경로당에서는 고기 파티가 열렸다. 자식들이 주는 용돈으로 늘 경로당 친구들에게 푸짐하게 쏘는 윤정희(가명, 83세) 할머니가 사가지고 온 고기였다. 유감스럽게 어버이날을 앞두고 있었지만 노인 회원 자녀들 중 아무도 경노당을 찾지 않았다.

모상순 권사는 은평어르신돌봄통합지원센터로 발걸음을 향했다. 하루 동안 만난 독거노인들에 대해 보고서도 써야 했고, 실무자들과 회의도 예정되어 있었다. 근무시간은 오후 1시부터 6시지만 독거노인생활관리를 하기에는 오전, 오후 구분이 없다. 최저임금제로 일하면서 근무시간도 초과했지만, 홀로사는 어르신들을 제대로 돌보려면 더 많은 헌신이 필요했다. 노인복지를 위해 틈틈이 공부까지 해야 한다.

독거노인들은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고 있었다. 누구도 고집부리지 않았다. 서로 도와주기 바빴다. 다리가 아프지만, 힘이 부치지만,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욕심없이 아낌없이 모두에게 내어주며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 경로당에서 고기 파티가 열렸다. 자식들이 주는 용돈으로 늘 경로당 친구들에게 푸짐하게 쏘는 윤정희(가명, 83세) 할머니가 사가지고 온 고기다. 유감스럽게 어버이날을 앞두고 있었지만 노인 회원 자녀들 중 아무도 경노당을 찾지 않았다.

 

은평어르신돌봄통합지원센터는 어떤 곳?

서울시에서 독거노인 인구수 1위(1만5천여명)인 은평구는 어르신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노후생활을 실현할 수 있도록 지난해 1월 1일 은평어르신돌봄통합지원센터가 설립했다. 독거노인을 먼저 발굴해 발생할 수 있는 독거노인 문제를 예방하고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재가노인지원과 노인돌봄기본서비스, 독거노인맞춤복지 등 센터에서 모두 흡수해 통합적인 노인복지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저비용으로 고효율의 노인복지를 창출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 최초로 스마트 복지를 실현했다. CJ헬로비전TV 셋톱박스를 통해 독거노인이 TV를 장기간 시청하고 있거나, 채널이 고정되어 있거나, 미시청하고 있는지 확인해 독거노인생활관리사에게 알리는 시스템이다.

현재 서울시에는 6개의 노인복지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이중 5개(노원, 마포, 서초, 구로, 은평)는 시.구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1개(강남구) 센터는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마정욱 센터장(아래사진 맨 오른쪽)은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불시에 사고를 당하지 않게 돌봄센터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돌봄센터의 관리 속에 어르신들이 잘 어울리며 행복하게 사시길 기도한다”고 전했다.

▲ 은평어르신돌봄통합지원센터에서 근무하는 실무자들이 손가락으로 작은 하트를 그리고 있다. 마정욱 센터장(맨 오른쪽)은 "돌봄센터의 관리 속에 어르신들이 잘 어울리며 행복하게 사시길 기도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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