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신학 자리잡기 위해선 목회자의 공적 직분의식 확립 우선돼야
상태바
공적 신학 자리잡기 위해선 목회자의 공적 직분의식 확립 우선돼야
  • 운영자
  • 승인 2015.04.22 17: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성규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종교개혁가들에게 있어서 기독교 신앙은 철저히 개인적인 신앙으로 이해되었다. 이는 중세 스콜라 신학이 신앙을 철저히 교회 기관에 의존하여 믿는 인식의 신앙을 강조하였던 것에 대한 불가피한 개혁이었다. 교회기관의 권위에 의해 인식적인 신앙만을 강조하였던 중세기의 신앙은 더 이상 개인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지 못한다는 신학적 반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종교개혁가들은 철저히 ‘실존적인 신뢰’(fiducia)로서의 신앙을 진정한 신앙으로 강조하였다. 이러한 종교개혁가들의 공헌은 충분히 인정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종교개혁가들이 철저한 신뢰로서의 신앙을 강조하였던 것은 오늘날에 와서도 그 가치가 희석되지 않고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이러한 종교개혁적인 신앙관을 제거하는 것은 결국 중세 스콜라신학이 범했던 오류를 답습하는 결과를 낳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종교개혁가들의 신앙관으로 말미암아 “교회의 공동체성이 뒷전으로 밀려났고, 이 세계의 구원이 소홀히 여겨졌으며, 그래서 구원의 개인주의화가 촉진되었다”는 비판 또한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기간의 오랜 시간 동안 구원이해는 개인적인 구원이해가 주류를 이루었고 또 오늘날까지 교회 안에서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종교개혁 시기에 가장 주된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은혜로운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수 있겠는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개인의 실존적 신앙이해와 개인적 구원관만으로는 오늘날 다원주의화 됨으로써 더욱 더 다원화된 사회적 접근을 요구하는 세계 안에서 점차 부각되고 있는 공동체와 사회의 인류, 심지어 우주적 구원을 담아내기 어렵다는 비판이 계속 제기되어 왔다. 이러한 신학적 반성으로부터 “공적신학”의 담론이 시작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한 사회가 대형재난을 당하여 한계상황에 부딪히게 되었을 때 목회적 차원의 공적신학의 목소리는 할 말을 잃은 사회 속에 다시금 할 말을 되찾아 주고, 슬픔을 극복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하게 된다. 교회가 공동체의 이름으로 한 공동체 사회 안에서 이러한 위로와 희망과 용기의 언어를 발견하고 전달하는 것은 개교회의 사적인 과제나 업무가 아니다. 그러한 일들은 공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나 교회의 대표자들의 그러한 사업은 사적인 영역을 넘어서 한 사회의 대중에게까지 전달되어 공적인 영역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혁교회의 전통과 유산을 이어받고 있는 한국의 장로교회에서 공적신학의 목소리를 내기 어렵게 만드는 장애요소로 작용하는 것이 다름 아닌 목회자의 ‘공적 자아의식’의 결여이다. 교회를 ‘공적인 기관’으로 인식하는 목회자들의 의식이 부족함을 넘어서서 결핍되어 있는 현실이다. 목사의 이러한 자의식은 결국 교회 안에서의 목사의 직분 자체를 사유화하게 만든다. 목사의 직분이 공직임을 망각하게 만든다.


목사는 사적인 종교적 직분이 아니라, 목사의 직분은 공적인 직분보다 더 공적인 직분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 목사직은 너무도 사유화되어 있다. 목사직에 대한 공적의식이 결핍되어 있다가 보니 그에 따른 병폐들은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에서 나타난 증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한국 사회와 교회에서 공적신학이 가능하기 위하여 가장 급선무로 해결되어야 할 과제는 교회의 개교회주의 극복, 교회와 국가의 건강한 관계 회복, 목회자들의 공적 직분의식 확립, 교회의 예언자직 전통 회복, 교회와 신학의 책임적인 사회적 담론을 위한 두 가지 언어 즉, 성서의 언어와 이성의 언어 또는 신앙의 언어와 사회적 언어라는 두 가지 언어의 섭렵 등을 들 수 있다.


그러한 문제들이 극복된 후에 비로소 교회는 한국사회 안에서 공적신학이 요청하는 제반 문제들에 관한 사회적 담론을 주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 13:34) 본론에서 살펴보았듯이 ‘정의’와 ‘평화’는 성서의 핵심주제이며,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에도 있음을 깊이 인식한다면, 한국교회와 사회 속에서 공적신학의 가능성은 정당화 될 것으로 본다. 한국사회와 교회 속에서 복음의 실존적인 차원이 건강하게 자리잡으면서도 동시에 한국사회의 정의와 평화 회복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신학운동이 정립되기를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