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396개의 무료 안경, 침침한 세상을 환하게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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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96개의 무료 안경, 침침한 세상을 환하게 밝히다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5.04.21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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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봉사로 퍼뜨리는 해피 바이러스
▲ 안경업 40년 경력을 통해 가장 좋은 제품을 좋은 가격으로 제공하며 그 이윤을 봉사활동에도 쓰고 있는 샤론안경원 최병갑 원장.

수원 샤론안경원 최병갑 원장

그가 무료로 나눠준 안경은 지난달까지 4만 2천개가 넘는다. 수원 샤론안경원 최병갑 원장은 IMF 이후부터 노숙자들을 돕기 시작했다. 안경 봉사를 나갈 때마다 기록한 내역을 보면 지난달까지 정확히 42,396개의 돋보기, 선글라스, 안경테를 무료로 나눠줬다. 그냥 뿌린 것이 아니다. 대개의 경우, 그가 직접 찾아가서 시력검사를 해주고 적절한 안경을 선물했다. 물론 ‘복음’과 함께.

빽빽한 안경봉사 노트를 훑어가다 보면 전국지도 뿐만 아니라 세계지도까지 그려진다. 안경의 혜택을 보기 힘든 곳을 찾다 보니, 20여년 세월 동안 전국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선교사들의 사역에 큰 보탬이 되도록 해외에까지 그의 안경을 보냈다. 이런 봉사의 삶은 모태신앙의 뿌리에서 열린 열매들이다.

안경 외길 40년. 3천명 회원을 관할하는 경기도안경사협회 사업부 회장을 맡고 있어 무척 바쁠 것 같은데, 그가 지키는 원칙엔 또 칼 같다. 그건 주일성수와 술 담배 및 골프 금지다. 신앙적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시간이 없다. 큰 안경점을 운영하는 그로서는 교회 봉사와 안경봉사만으로도 시간을 쪼개서 살고 있다. 그래도 그는 행복하다. 한없이 가난했던 그가 지금 안경 업계에서 우뚝 선 건 하나님의 은혜라는 걸 잊지 않기 때문이다.

 

술, 담배, 골프는 금지

“충청도 내판이 제 고향인데, 스물한 살 때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먼저 올라온 동네 친구 다락방 신세를 지면서 구로 공단에서 일했죠. 한 달에 월급 3만 원 정도 주더군요. 한두 달 일해 보니 비전이 없더라고요. 이건 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때마침 교회 청년 회장이 안경 쪽에서 일하면 어떻겠느냐고 권했습니다.”

소위 ‘나까마’라는 것을 시작했다. 남대문에서 안경을 떼어다가 서울 시내 안경점들을 돌아다니며 팔았다. ‘시골 촌놈’이라, 서울 지리를 몰라 애 많이 먹었다. 탄 버스 또 타고, 문전박대에 설움도 많이 받았다. 신발이 닳도록 다닌 끝에 오토바이를 장만했다. 날아다닐 것 같았다.

“그때부턴 서울을 벗어나서 의정부, 성남까지 돌아다녔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상관없었어요. 한번은 겨울에 짐을 많이 실고 달리다가 빙판 길에서 벌러덩 뒤로 넘어지기도 했죠. 그래도 다치지 않았어요. 10년 오토바이 타고다니면서 한번도 사고가 안 났습니다. 기적이죠. 하나님이 지켜주신 겁니다. 저는 오토바이 타고 다니는 사람에겐 딸 안줍니다. 그만큼 위험해요.”

오토바이에서 이번엔 자가용으로 승격했다.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다. 망우리 쪽에 소매상을 두고 그는 계속 영업을 뛰었다. 1991년 주택부금 든 것이 당첨되어 수원으로 내려왔다. 구운동 삼환아파트에 입주하면서 샤론안경점을 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25년째 한 자리에서 성실하게 일한 덕에 소문이 나서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안경점이 됐다.

타고난 영업의 달란트가 그에겐 있었던 듯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탓에 7남매 중 막내인 그에게까지 공부할 혜택이 미치지 못했다. 장을 돌며 장사하시던 아버지를 종종 따라다녔다. 초등학교 5학년 때에는 혼자 동네 아저씨 따라 마산까지 가서 노점을 하기도 했다. 거기서 먹은 갈치국, 지금도 추억이다.

“거의 40년 가까이 안경 일을 하면서 영업하느라 또 연합회 일을 하느라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 비즈니스니까 술자리도 가게 되고 영업상 필요하긴 한데, 제가 술 담배를 안 합니다. 그래서 처음엔 건방지다는 오해도 많이 샀죠. 그러나 나중엔 이해하고 도리어 정직하다고 신뢰하더라고요.”

모든 사람에게 크리스천이라고 광고한 탓에 그는 더욱 신의를 지키려고 애쓴다. 지금까지 뜯긴 건 있어도 떼어 먹은 건 없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교회 밖에서도 신자답게 살아야 한다고 그는 믿는다. 그 세월이 헛되지 않았다. 거래 업체에게 “안경 1천장 보내 달라”고 하면 아무런 토 달지 않고 외상을 준다. 이런 신뢰가 그의 재산이다. 2011년도엔 한국기독교실업인회 새수원지회 지회장도 역임했다.

▲ 시력검사를 통해 적절한 안경을 무료로 나눠주는 최 집사.

장삿속으로 봉사하지 않는다

“10년 전에 친구가 천이백만 원짜리 골프채를 선물해줬어요. 같이 골프 치자고요. 몇 달 뒀다가 그냥 줬어요. 골프 칠 시간과 돈으로 더욱 봉사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주변에선 골프도 같이 안친다고 다 뭐라고 하죠. 사정도 모르고요. 안경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일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안경이 없어 침침한 인생을 살다가 제 눈에 딱 맞는 안경을 쓰고 좋아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마음이 뿌듯하다. 잘 안보이다 보이면 세상이 천국 같다. “이거 얼마냐”고 돈 내려고 하면 사양하면서 대신 복음을 전한다.

시골에선  돈이 있더라도 어디 나가 안경 맞추는 게 쉽지 않다. 그런 분들을 찾아가는 일이 그래서 더욱 귀하다. 캄보디아 같은 외국 선교지에는 선글라스를 보낸다. 그런 지역에선 선글라스가 꼭 필요하다. 그러나 비싸다. 선교사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건 당연하다.

“봉사를 나가면 더 많은 분들에게 혜택을 드리고 싶어요. 그만큼 제가 더 손해 본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생각하면 이런 봉사 못하죠. 안경을 얻으신 분들이 감사하다고 제게 농사하신 걸 택배로 보내주기도 합니다. 충북의 어떤 분은 사과 한 박스를 무공해라고 보내주셨어요. 그때마다 큰 보람을 느끼죠.”

안경 봉사를 하면서 그가 지키는 원칙이 하나 있다. 그의 사업장 상호를 절대 알리지 않는다. 안경집이나 닦는 천에 그의 가게 이름을 쓰지 않는다. 봉사를 통해 광고를 하고 사업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오해를 사고 싶지 않다. 오로지 교회를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을 뿐이다.

단골이 많은 안경원으로 소문난 샤론안경원은 오랜 세월 자리를 지키며 쌓아온 성실함이 명성이 됐다. 시중가보다 많이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해 지역민들의 부담을 덜어준다. 한번 방문한 손님은 거의 단골이 된다.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에서도 주문이 온다. 목회자들에겐 50%까지 할인도 해주고 있다.

 

▲ 새벽기도 안내 봉사 중인 최 집사

봉사의 기쁨은 멈출 수가 없다

지난 부활절 때에는 사순절 기간 동안 교회 새벽예배 안내 때문에 바빴다. 그가 안수집사로 섬기고 있는 수원중앙침례교회는 일 년에 두 차례 특별새벽기도회를 하는데 그때마다 새벽안내를 섰다. 벌써 11년차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2005년도에 새벽 안내를 할 때인데, 함께 안내 서시는 권사님과 교회 가다가 차사고가 난 거예요. 상대방이 중앙선을 넘어 제 차를 받았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음주운전을 했더라고요. 나중에 우리 쪽으로 보험회사에서 배상금이 나왔어요. 꽤 큰 돈이었는데, 권사님과 합의해서 교회와 극동방송에 다 헌금했죠.”

“어차피 인생이란 빈 몸으로 왔다가 빈 몸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부자가 되기보다는 하나라도 더 나누는 삶을 살고 싶다”는 그에게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기쁜 일과 슬픈 일을 물었다. 기쁜 일은, 예상했던 대로 뻔한(?) 답이었다. “봉사하는 게 기쁘죠. 슬프고 힘든 일은… 아직까진 없네요.”

없을 수가 없다. 가난한 시골 청년이 상경해서, 지리도 모르는 서울을 헤매며 영업을 하면서, 문전박대를 수없이 당하며, 때로는 물건을 떼먹고 달아나는 일도 겪으면서, 여기까지 왔다.  슬프고 힘든 일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봉사하는 기쁨은 그 아픈 기억들을 다 치유해주었다. 그래서일까. 처음 시작할 땐 3만개를 목표했는데 4만개 넘은지 오래다. 오늘도 그의 안경 봉사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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