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과잉'이 한국교회와 목회자 병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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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의 과잉'이 한국교회와 목회자 병들게 한다
  • 이현주 기자
  • 승인 2015.04.21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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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대 하재성 교수 “성과사회, 보이지 않는 자기 착취 심각”
▲ 지난 18일 열린 개혁주의생명신학회 제12회 학술대회에서 고신대 하재성 교수(사진 가운데)가 목회자의 우울증과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지나친 자기 착취를 지적했다.

부흥과 성장 스트레스에 ‘목회자’는 아프다
개혁주의생명신학회 ‘제12회 정기학술대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긍정의 과잉’이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개혁주의생명신학회가 지난 18일 유나이티드아트홀에서 개최한 ‘제12회 정기학술대회’에서 ‘목회자의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대해 발표한 고신대 하재성 교수는 “목회자의 스트레스와 우울증은 과중한 자아 부담의 결과”라며 “교회의 양적 성장과 영적 부흥에 대한 부담을 최전방에서 홀로 담당하고 있는 목회자들의 어깨에는 보이지 않는 자기 착취와 그로 인한 소진과 우울증의 위험이 짊어져 있다”고 진단했다.

하 교수는 ‘목회’라는 특수한 구조가 가진 문제점도 지적했다. 전통적으로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죽음을 각오하는 목회’를 이상적인 목회자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자기를 돌보기보다 우선 교회를 돌보는 것이 목회자의 바른 이상이라는 생각이 ‘자기 착취’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상당수의 목회자들이 과로와 스트레스,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다. 논찬자로 나선 차병원 원목 손운산 박사는 “매주 월요일에 입원해 금요일에 퇴원하는 조울증 목사가 있다. 그가 입원한 것은 성도들에겐 비밀이었다”고 사례를 소개했다. 또 성도들에게 상처입은 경험을 가진 목사는 새로운 교인이 와도 반갑지 않은 자신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목회자의 스트레스는 아내인 사모와 자녀 등 가족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친다. 한 사모는 “남편 목사와 자주 싸우다보니 아이들이 불안해하고 손톱과 발톱을 다 물어뜯었다”고 고백했다. 이러한 임상사례를 통해 ‘상처 입은 목회자’의 증가를 증언한 손 박사는 “상처 입은 목회자는 상처 주는 목회자가 된다”며 “목회자의 스트레스와 탈진, 우울은 심각한 가족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도덕적 타락에 이르고 심한 경우 목회를 떠나게 된다”고 말했다. 목회자의 상처는 한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

손 박사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할 수 있다’는 긍정성의 사회이며, 이는 긍정의 과잉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할 수 있다”는 ‘긍정신앙’은 한국교회를 부흥시킨 대표적인 신앙이론이며, 결국 행위로 구원을 받겠다는 잘못된 신앙을 초래하고 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손 박사는 “성과사회의 교회에는 은총이 부재하다. 행위의 결과만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라며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주어지는 선물이 없다. 목회자 역시 성과사회의 구호인 행위 구원을 실천하다보니 교회는 은총의 공간이 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목회자들은 어떤 스트레스를 받을까. 하재성 교수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을 우울하게 하는 첫 번째 요인으로 교회의 ‘양적 부흥’을 꼽았다. 교인을 증가시켜야 한다는 부담이 스트레스의 가장 큰 요인이며, “할 수 있다”는 성과 패러다임과 생산성에 의해 움직이는 목회자들의 내적 목표는 궁극적으로 목회자 자신들을 약탈하고 있다는 것이다. “거절이 없는 과도한 사역은 성도들에게 긍정적으로 인식되지만,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목회자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하 교수는 말했다. 심지어 이러한 과도한 사역이 ‘자신을 돌보지 않는 헌신’으로 추앙되고, 교회를 위한 목회자의 탈진은 덕과 이상으로 간주된다는 것.

하 교수는 “경계선이 없는 목회자의 과도한 업무는 더 나아가 목회자 가족의 희생으로 이어진다”며 “목회자가 가정을 위해 공공연하게 경계선을 설정한다면 한국교회의 환경에서는 이기적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가족의 희생하고서라도 일부러 경계선을 헤쳐 버린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결과로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신체적, 정서적으로 스트레스와 탈진을 경험하고 있다고 진단한 하 교수는 “신체적 증상으로 고혈압과 불면증, 두통 등이 나타나며, 정서적으로 원망, 분노, 배신감, 불안감, 좌절감 등을 겪게 되며 영적으로 침체되고 목회 업무에서 피하고 싶은 증상 등을 겪게 된다”고 설명했다.

목회자 스트레스의 정도는 대형교회보다 소형교회 목회자일수록 더 많이 나타난다. 하 교수는 “소규모 교회의 목회자는 교회성장에 대한 부담도 크고 성도들의 요청을 상대적으로 중요시해 그것을 거절하지 못한다”며 “성과사회의 대표적인 특징이 ‘아니오’라고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교회가 건강하게 바로 서기 위해서는 목회의 스트레스와 탈진에 대한 치유가 시급한 가운데 결국 1차적 처방은 ‘안식’으로 꼽혔다. 목회자들이 무거운 책임감에 빠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중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 교수는 “소진된 목회자들의 마음에는 자신의 쉼 없는 노력으로 교회가 그나마 제대로 운영된다고 하는 착각까지 일어난다”며 “이것은 곧 일과 자신에 대한 심각한 ‘우상숭배’”라고 지적했다.

목회자들이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한 대안으로 월요일에는 교회 일에서 떠나 있고, 단순하고 일상적인 하루를 보내라고 조언했다. 또 주님의 교회를 위한 목회자의 헌신은 고귀한 일이지만 스스로의 소진을 ‘거룩한 희생’으로 합리화해선 안 된다고 하 교수는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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