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광기(Mania) 아닌 성령님의 역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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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광기(Mania) 아닌 성령님의 역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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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4.1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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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의 예술을 향하여 - 시어벨트(Seerveld)의 개혁주의 미학 (45)
▲ 안용준 목사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의 작가 중 미국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이 있다. 그의 작품 ‘No.5, 1948'은 2006년 1억4000만 달러(약 1316억 원)에 거래될 정도였다. 그 돈의 가치를 평가받을 만큼 폴록은 세계의 미술애호가들을 열광시켰다. 독특한 그의 방식은 무엇인가? 폴록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마룻바닥에 편 화포(畵布) 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마치 신들린 사람마냥 공업용 페인트를 흩뿌려대고 흘리고 붓기 시작했다. 이를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라 하는데, 폴록 자신의 고백처럼 작품에 몰두해 있을 때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폴록은 이 독자적인 기법을 개발하여 하루아침에 명성을 떨쳤다. 당시 모더니즘 예술운동을 지도하던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는 그의 적극적인 후원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피하여 미국으로 모여든 수많은 유럽의 예술가들과 사람들은 신지학(theosophy)에 매료된 폴록의 작품에서 알 수 없는 신비함과 자유 분망함을 느끼며 억압된 정신의 탈출구를 찾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폴록이 술이 취한 상태에서 교통사고로 요절한 이후에도 세계의 많은 화가들은 그의 기법을 차용했다. 어떤 이는 그림물감이 담긴 주머니를 총으로 쏘아 캔버스에 흘러내리게 하기도 했고, 에어브러시를 이용해 물감을 분사하거나 난도질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한 없이 발산되는 색채의 거대한 튀김은 어디를 향하여 소용돌이치며 움직이는 것인지, 시어벨트는 폴록에게서 발산되는 끊임없는 에너지의 근원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현대의 기독교 비평가들이 자주 오류를 범했듯이, 추상 현대미술이 파편화되었고 결함이 있다는 식의 게으른 견해에 그쳐”서도 안 된다. 시어벨트는 여기서 인간 내부에서 소용들이 치며 드러나는 조형 요소들의 방향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사실 예술에 있어 ‘정신성의 발현’이라는 명목 하에 역사적 진실과 현실 세계를 외면한 그림은 있어왔다. 이와 같이 예술이 ‘인간 정신의 순수 지각’이라는 목표 하에 공허한 시각적 표현으로 치닫는 다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만일 이 가능성이 현실로 드러난다면, 칼빈(John Calvin)의 견해대로 이러한 인간의 예술 활동은 단지 허무한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려주신 신비에 대하여 “인간의 방법으로 얻어진 의견은, 비록 그것이 항상 막대한 오류를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어디까지나 그것은 오류의 산실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칼빈신학대학원에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던 스택(John H. Stek)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어떠한 학문도 사물의 의미를 규정하진 못한다. 단지 창조에 주어져 있는 사물의 존재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물론 예술도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새롭다’는 이름으로 진리의 가치 기준을 땅바닥에 내던지며 ‘무(nothing)를 향하여’ 질주하는 미적 경험을 바로 볼 수 있는 지혜를 얻어야 한다. 무엇보다 지혜와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은 우리의 삶과 예술의 패러다임 안에 이미 들어와 계시다. 그분은 우리의 예술세계 안으로 들어와 모든 연약함과 죽음의 권세를 취하시고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기를 원하신다(겔 3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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