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그 후 생명을 생각하다
상태바
세월호, 그 후 생명을 생각하다
  • 운영자
  • 승인 2015.04.15 14: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라이프호프와 함께하는 ‘생명목회이야기’ (51)

지난 해 4월의 기억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읊었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우연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는 이상하게 4월에 가슴 아픈 일들을 많이 겪어왔다. 304명의 우리 가족들이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참사로 목숨을 잃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사건이 아직 미해결로 남아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세월호 참사로 많은 희생자가 생겼을 때 모두가 우려했던 것은 그 사고 후에 일어날 일이었다. 대중은 망각의 습성이 있어서 처음에는 지나칠 정도의 관심을 보이다가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세월호의 일은 절대 그래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런데 예견했던 대로 세상은 단지 아프다는 이유로 그 기억을 서둘러 덮으려고만 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형 사고가 일어났을 때, 공통적으로 겪었던 일은 유가족들의 고통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마음은 너무나 아프다. 참으로 견디기 힘든 총체적 고통이 그들을 휩싸고 있다.  더구나 그 사건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이 한 두 마디 생각 없이 뱉는 말들 때문에 심지어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다. 아니 정말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이 있다. 공감의 결여가 얼마나 큰 후유증을 양산하게 되는지 분명하게 드러내 주는 모습들이다.

때로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양비론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 유독 세월호 희생자들과 그 가족에 대해서만 이렇게 크게 이야기하느냐고 따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생명에 관해서는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결코 어떤 경우, 어떤 사람의 생명은 더 소중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와 사람의 생명은 하찮다고 말할 수 없다. 모든 생명이 소중하고 유일무이하다. 특히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와 직장 동료를 잃은 그 상실의 아픔은 경중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그 경중을 따진다면, 그것은 마치 왼손을 망치로 내려치고, 오른손은 해머로 내쳐지고서 어느 손이 더 아프냐고 묻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해머로 맞은 오른손이 망치로 맞은 왼손보다 더 아프다고 할 수 있을 것이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망치로 맞은 손이나 해머로 맞은 손이나 다 내 몸이요 아프기는 마찬가지이다. 그 고통에 경중이 따로 있을 수 없다.

공감을 잃은 세대와 사회는 위기를 만났을 때 그것을 이길 수 있도록 힘을 공급하는 지지기반의 역할과 치유와 회복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오히려 상실감과 정서적 고통을 더 많이 재생산하는 역기능만이 있을 뿐이다. 오직 소유와 공로와 업적만을 우선하는 맘모니즘에 빠진 사회는 생명을 제대로 보듬거나 살리지 못한다.

여기서 세월호 사건 일주기를 맞이하면서 우리가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서와 그 생명을 보듬기 위한 사회로서 우리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성찰해 보게 된다. 특히 신앙공동체인 교회가 세월호 사건 후에 어떠한 모습이었나를 되돌아보는 것이다. 구원의 문제는 결국 생명의 문제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했다(요 17:3).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의 공동체는, 그러기에 생명공동체여야 한다. 생명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생명을 보듬고 살리는 일에 그 누구보다도 구체적인 프로그램과 협동심을 가지고 앞장서서 달려가야 한다.

노용찬 목사(라이프호프기독교자살예방센터 공동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