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물건이 굿윌스토어에선 ‘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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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물건이 굿윌스토어에선 ‘꿈’이 됩니다”
  • 정하라 기자
  • 승인 2015.04.14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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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이 아닌 기회를 주는 곳, 장애인직업재활시설 ‘굿윌스토어 밀알송파점’ 방문 취재

“안녕하세요? 어디서 오셨어요? 무엇을 찾으시나요?”

문을 열자마자 일반 매장이라면 묻지 않았을 시시콜콜한 질문을 던진다. 약간은 어눌한 말투와 행동. 하지만 어린 아이 같은 해맑은 표정에 냉랭한 아침 공기로 인해 굳어있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밝은 웃음으로 인사를 마친 직원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매장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정겨운 안내 인사를 받고 방문한 곳은 미래형 장애인직업재활시설 굿윌스토어 밀알송파점. 9일 오전 10시 비교적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매장 안에는 다소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곳곳에서 연두색 조끼를 입은 직원들이 분주히 매장 정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매장 안에는 기업과 회사에서 기증받거나 교회 및 개인으로부터 기증받은 물품이 진열돼 있다. 각종 의류에서부터 잡화, 생활용품, 소형전자제품까지 다양한 제품이 시중보다 훨씬 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다르지만 아름다운 ‘그린직원’

물품을 정리하며 선반 위에 올려놓는 작업을 하고 있는 직원, 색이 다른 의류가 뒤섞이지 않았는지 꼼꼼히 돌아보며 정리하는 직원, 매장의 안내를 위해 물건을 찾고 있는 방문객들에게 말을 건네는 직원, 질서정연한 모습이 언뜻 보기에는 일반 여느 매장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이곳이 다른 매장과 다른 구별되는 작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 굿윌스토어 송파점에서 일하는 그린 직원들은 모두 하나같이 밝은 미소로 고객들을 응대했다.

연두색 조끼를 입고 근무하는 직원들은 발달장애와 정신지체, 지적장애 등 장애 1․2․3급 판정을 받은 중증장애인이다. 이들에게는 ‘그린직원’이라는 호칭이 따라 붙는다. 차별이 아닌 ‘다름’의 눈으로 조금은 행동이 어리숙할지라도 이해해 달라는 작은 표식이다.

이곳에서는 총 53명의 중증장애인들이 도움을 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편견을 깨고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매장 직원들이 모두 밝죠? 청년 취업이 어렵다고 하는 마당에, 장애인 취업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 여기 일하고 있는 장애인 직원들은 일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감사해요. 안정적인 일자리에서 또래들과 함께 일하며 얻는 기쁨도 매우 크죠.”

이날 함께 동행한 굿윌스토어 기획팀 최회성 씨는 그린직원들이 근무를 시작한 초기에는 돌발행동으로 인해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점차 일에 익숙해져 이제는 업무를 제법 능숙하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작은 기증이 ‘일자리’를

굿윌스토어는 기증받은 물건을 싸게 팔아 이윤을 남기고 장애인을 직원으로 채용해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착한 기업’이다.

누군가에게는 집안 구석에 방치돼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는 쓸모없는 물건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이 된다.

따뜻한 나눔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일자리가 필요한 장애인들에게 자립의 기회를 제공한다. 소비자는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거래를 할 수 있을 뿐더러, 장애인의 자립까지 돕는 ‘착한 구매’를 할 수 있게 된다.

굿윌스토어 송파점에는 매달 6만5천여 개의 기증품이 들어온다. 모든 물품을 팔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접수된 기증품 중 판매 가능한 물품을 분리하고 세척하는 작업이 그린직원들의 몫이다.

계단을 올라가 2층에 들어서자 20명 남짓한 그린직원들이 가전제품, 전기기기, 도서, 의류 등 삼삼오오 모여 업무를 하고 있다. 마스크를 착용한 채 오래 사용한 전자제품을 면봉과 헝겊을 이용해 구석구석 닦는 손끝이 야무지다.

침묵을 지키며 말없이 일에만 전념하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노래를 부르며 벌떡 일어나 춤을 추는 직원도 있다. 하나같이 일을 즐기고 있다는 증거다.

▲ 굿윌스토어 송파점 2층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그린직원들의 모습.

“각자 역할 분담이 잘 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일할 수 있어요. 먼저 들어온 직원이 다른 직원들을 보고 가르쳐 주기도 하고요. 여기에서는 어느 한 명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예요.”

최회성 씨는 그린직원들이 같은 처지에 있는 장애인들과 일을 함께 일을 하고 배움으로써 결속력이 매우 강해지고 일의 효율도 높일 수 있다고 전했다.

일반 기업에서는 장애인 할당인원이 제한돼 동료의 수가 많지 않은 반면, 굿윌스토어에서는 그린직원들이 ‘함께’ 일하며 공감할 수 있다는데 큰 이점이 있다.

#일이 재미있어요

일터의 현장이지만 일하는 재미에 한껏 빠져 있는 그린직원들의 모습에 소소한 행복이 느껴진다. 중증장애인이 대부분인 까닭에 의사소통이 쉽지는 않았지만 이들의 얼굴과 말 속에서 ‘일’에 대한 애착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일이 너무 재미있어요.”

“일할 수 있어 행복해요.”

“더 열심히 일하고 싶어요.”

“물건이 더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일하고 월급도 받으니 좋아요.”

“내가 만진 옷을 다른 사람이 사가니 기분이 좋아요.”

일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그린직원들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자신을 포장하고 감정을 숨기는 것이 더욱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인 까닭일까. 일하는 게 단순한 보람을 넘어서 ‘행복’이라고 말하는 이들의 대답이 더욱 진정성 있게 느껴진다.

한 그린직원(정혜미․2014년 올해의 굿피플)은 “한동안 몸이 아파 오랜 시간 동안 일을 못했는데 집에 있는 동안은 극도의 우울감을 느꼈다”며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갈 곳이 있고 만날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행복하다”며 밝은 미소로 답했다.

▲ 굿윌스토어 송파점에서는 일자리를 통해 장애인들에게 자선이 아닌,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굿윌스토어는 장애인 직원들이 일에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안정된 분위기 속에서 일할 수 있도록 1인 6시간 근무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또 50분을 일하고 나면, 10분간의 휴식하도록 해 기초체력이 약한 장애인 직원들을 배려한다. 휴식시간에는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며 휴게소에서 재충전을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단순한 일자리 제공뿐만이 아니라, 노래교실, 체육교실, 생일파티, BBQ파티, 나들이 등 각종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장애인 직원들의 정서적 안정 및 지원까지 돕고 있다는 것이다.  

취재를 마치고 내친 김에 생활용품 몇 가지를 산 후 문을 나서는 순간 한 그린직원이 문 밖을 따라 나와 “조심히 가세요”라고 인사한 뒤 정겹게 손을 흔든다. 착한 가격에 물건을 구매하고 인정을 덤으로 얹어 나오는 길. 괜스레 가슴이 뭉클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기증이 삶의 ‘희망’이 되고 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을 1년간 안정적으로 고용하기 위해서는 약 6천점의 기증품이 필요하다. 손상되거나 상태가 불량하지 않은 의류, 잡화, 생활용품, 문화용품, 건강미용, 소형가전가구 등을 기부하기 원할 경우 굿윌스토어 송파점(02-6913-9191)에 문의하면 된다.

※굿윌스토어란?

굿윌스토어는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가게로 전 세계 14개국에 2,900개의 매장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물건을 주는 것보다 ‘일자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에드거 헬름 목사가 1902년 미국의 가난한 이민자들을 위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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