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눌 수 있는 것, 줄 수 있는 건 모두 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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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눌 수 있는 것, 줄 수 있는 건 모두 주고 싶어요”
  • 공종은 기자
  • 승인 2015.03.25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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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용 전도사-한현주 사모의 장기기증 이야기

군인으로 그렇게 철저하게 자신을 관리하시던 아버지는 큰아이의 돌잔치 때, 그렇게 쓰러지셨다. 급하게 달려간 병원에서 들은 소리는 청천벽력이었다. “신장 기능의 95% 이상이 손상됐습니다.”

담당 의사는 “신장 이식을 받아야만 살 수 있다”고 했다. 군에서 연대장으로 예편한 후 부산에서 교회를 개척해 20년을 묵묵히 목양에만 전념하던 아버지. 평생 상록수로 살아가실 것만 같던 아버지였다.

‘나는 누구보다 건강한데.’ 큰아들 최재용 전도사의 생각이었다. 내 몸의 일부를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아버지에게 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내는 더 그랬다. 그것도 핏줄이 아닌 시어머니에게 준다는 생각은 꿈에서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났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신장을,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간을 떼어 주었다.

▲ 첫째 딸 지원이의 초등학교 졸업식.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과 며느리, 자녀들 모두가 사랑과 신앙으로 살아가는 가족이다.

사람들은 “참 보기 힘든 경우”라고 입을 모았다. “아버지와 아들은 모르겠지만 어떻게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그렇게 딱 맞아떨어질 수 있느냐”고 말했다. 한현주 사모도 그게 궁금하고 신기했다. 맞아도 너무 잘 맞았고, 검사 한 번에 완전 일치했다.

# 아버지의 쓰러짐과 신장 이식

아버지 최정수 목사(부산 하얀교회)는 고혈압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신부전증을 앓았다. 그렇게 건강했던 아버지가 목회를 하면서 이렇게까지 건강이 나빠질 거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1년 6개월 정도를 투석하셨는데, 목욕탕에도 못 갈 정도로 힘들어하셨어요. 아무 준비 없이 맞닥뜨린 현실 앞에서 ‘자식 된 도리를 다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아버지를 보고 내린 최 전도사의 결론은 간단했다. ‘내 신장을 드리자.’ 다른 대안은 생각하지 않았다. 나눌 수 있는 것, 줄 수 있는 것은 모두 주고 싶었다.

“재용아, 성급하게 할 게 아니다. 검사부터 하자”며 아버지는 시간을 끌었다. 아들의 의지를 꺾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도 많았다. 하지만 아들을 이기지 못했고, 2008년 3월 3일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대가 십자가 모양이었어요. 수술대에 눕자 두 팔을 벌리게 하고 수술대에 묶는데, 마치 제가 십자가에 달리는 것 같았죠. 그때 예수님이 떠올랐습니다. 손과 발에 박힌 못, 옆구리를 찌른 창 때문에 전해지는 그 극심한 고통을 온전히 몸으로 감당하신 예수님이 큰 위로요 용기였습니다.”

수술은 잘 끝났다. 수술 후 병실에서 만난 아버지는 말 없이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말로 표현하는 것 이상의 사랑과 고마움을 담아.

# 시어머니에게 간을 내준 며느리

오히려 더 대단한 사람은 아내 한현주 사모다. 시아버지가 쓰러진 후 시어머니 장용순 사모 또한 간경화가 발견되면서 간을 이식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쓰러지고 병원에 가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한현주 사모는 오히려 담담했다. 남편의 모습을 보았고, 지금까지 옆에서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내가 간을 기증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어머니에게 간을 기증하겠다고 하니까 남편이 담당 의사를 찾아갔어요. ‘제가 한 번 더 간 이식 수술을 하겠다’고 말했더니 의사가 펄쩍 뛰면서 ‘안 된다’고 하더라구요.” ‘죽을 수도 있다’는 대답이었다.

“결국 저밖에 없었어요. 오히려 감사했죠.” 병원에서는 ‘안 맞을 수도 있다’며 만류했다. 아버지에게 신장을 기증한 최 전도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며느리가 “일단 검사부터 해보자”고 하니 난감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한현주 사모는 막무가내였다. 검사 결과는 뜻밖이었다. 조직 일치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 비해 간 크기가 컸고 누구보다 건강했기 때문이었다.

시어머니 장용순 사모와 며느리 한현주 사모는 지난 해 4월 2일 고마움과 기쁨으로 수술대에 올랐고, 시어머니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기도로 잘 견뎌냈다.

# 15년 교직생활 정리하고 목회자의 길로

“수술 후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고 감사했습니다. 숨쉬는 것, 먹는 것, 작은 것 하나까지도 감사했습니다. 모든 것에, 모든 일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최 전도사의 말이다.

현재 부산학생교육원에서 체육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최 전도사와 보육교사로 일하고 있는 한현주 사모는 2녀 1남 다자녀 부부다. 지원(14살), 예원(11살), 선우(4살)가 예쁘게 커간다.

“아이들이 우리가 장기를 기증한 것을 알고 있어요. 첫째 지원이가 여덟 살 때 ‘아빠, 나도 그런 상황이 오면 나도 기증할 거에요’라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 말을 들은 최 전도사 부부의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가, 아내가 행동으로 보여주니까, 굳이 말로 교육하지 않아도, 효에 대해 교육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스스로 알고 배우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참 훤칠하고 잘생겼다’. 최재용 전도사를 만난 첫 느낌이었다. 악수를 하는 기자가 고개를 젖혀야 할 정도로 키도 컸다. 지난 21일에는 강도사 고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제 조만간 15년의 교직생활을 정리하고 목회자의 길을 걸어야 한다. 아버지는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신학의 길, 목회의 길을 선택한 아들의 결정을 반겼고, 어머니도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으로 기도로 누구보다 큰힘을 보탠다.

“부산에서 학생들과 노인들을 위한 목회를 하고 싶다. 이 땅에서 학생과 어르신들이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도록, 행복하도록 돕는 목회자가 되고 싶다”는 최 전도사의 ‘더 좋은 날’은 이제부터, 더 밝은 웃음과 건강한 행복도 이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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