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를 이성애로 바꾸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책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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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를 이성애로 바꾸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책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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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11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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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서 목사(양지평안교회)

교회가 동성애 문제에 방관하거나 배타적인 태도로만 일관하는 동안 최근 급속히 동성애자들의 세력화 조심이 확산되고 있다. 이제는 기독교인들까지도 동성애을 공감하고 받아드리는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어 동성애의 문제에 교회가 더 이상 뒷짐만 지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 되었다.

교회와 기독교는 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에 대한 연구와 토론, 임상사례 발표 등을 통해 이들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해야 한다. 성 대상 도착이 심하지 않은 동성애자의 경우 이성애로 데려올 수 있는 가능성은 높다고 할 수 있다. 동성애자이면서 이성과 교제하며 이성을 통해 자녀를 낳는 경험까지 한 양성적인 사람들의 경우도 이성애로 되돌릴 가능성은 있다. 이들을 돕는 일에는 절대적으로 ‘신앙의 은총’과 ‘교회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들의 상실은 어쩌면 신이 정해준 안전한 틀에 머물지 못했던 그 누군가의 과실로 인한 것이다. 이들의 그 원초적 욕망은 그들의 성적 욕망을 포기할 수 없는 것으로 만든다. 다른 돌파구를 찾지 못한다면, 그들의 삶은 비관적이고 우울하게 마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을 기독교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동성애는 인간의 정신적 심리적 성숙을 가볍게 여기고 감각과 쾌락의 보이는 것에만 치중한 결과다. 자본주의의 저급함이 바닥까지 내려간 표상이 바로 동성애라는 사실을 교회는 인지해야 한다. 동성애의 간접적 원인에 교회가 참여하고 있다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동성애에 대해 오직 배타적으로 일관하는 교회의 모습은 곧 자신의 그림자를 외면하고자 하는 무의식적 도피 행각이 아닌지 살펴야 한다. 

동성애가 유전적이거나 선천적이라는 주장에 대해 기독교는 정확히 반론할 수 있는 지식과 자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동기에 발생하는 병리는 신경증이고 치료가 가능한 병이지만, 유독 같은 시기에 발생한 동성애를 치료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정신과학의 입장은 이미 오래전에 사도 바울이 동성애를 진단한 말씀과 일치한다. 동성애를 이성애로 바꾸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책무는 아니다. 성경도 동성애자가 이성의 사랑으로 바뀌는 방법에 대해서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동성애자가 뉘우치고 돌아설 수 있는 가능성 역시 부인되어서는 안된다.

교회는 자신의 동성애를 부끄러워하며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동성애자들이 교회에 올 경우 그들에 대한 배타성으로 인해 교회에 적대감을 갖게 하는 일을 지양해야 한다. 누가 택함을 받은 자이며 누가  유기된 자인지 판단하는 것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뉘우치고 돌아서길 원하거나 자신의 병리를 치료하기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동성애를 치유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복음이 제시되기 위한 전초작업이 동성애라는 이유로 거절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도 하나님은 은총아래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물론 그들이 돌이킬 가능성을 전제해야 한다.

이를 위한 기독교적 차원의 연구소라든가 교단차원의 특수사역 팀을 만들어야 한다. 교회는 그들의 병리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대책 또는 치유책에 대한 자체 매뉴얼을 갖고 있어야 한다. 교회는 그들의 상처를 만지고 사랑하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들이 회개한다면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그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단 이러한 긍휼은 개별적 만남으로 제한되어야 한다. 그들이 집단화된 세력으로 또는 운동으로 확산되는 것에 대해서는 분명한 문제의식을 갖고 조직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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