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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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5.03.10 22: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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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삶 노숙인의 새삶을 위한 행정 구제사역
▲ 왕년에 하버드대 다닌 사람부터 미국 요리사 출신에 날 때부터 고아였던 이들까지, 별별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아있는 신앙은 변화된다’ 구호 아래 활짝 웃는다. 도움을 받기만 하던 사람들이 이곳에서 무료 급식 봉사를 하며 변화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살맛나는 교회’다. 가운데가 이병선 목사.

살맛나는교회 공동체 이병선 목사

세상에 이런 재미난 일도 다 있다. 서울역 근처에서 노숙인 사역을 하는 이병선 목사는 지난 해 건물에서 쫓겨날 뻔했다. 옆방에 살던 조직폭력배들이 예배 시간에 담배를 꼬나물고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다는 거였다. 태권도 공인 4단의 이 목사, 그래도 싸울 수 있나.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 비싼 근처 건물을 계약했다.

그 소식을 우연히 접한 어떤 분이 “예배를 방해하는 흉측한 놈들을 손봐주는 건달이 있다”면서 걱정마라고 했다. 얼마 후 두 사람이 이 목사를 괴롭히던 옆방 조폭들을 찾아왔다. 요란한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일주일 후에 그 사납던 조폭들이 조용히 사라졌다. “전국구 건달이 레이저 광선 한번 쐈더니, 그렇게 되었다”는 소문만 남겨놓고. 그날이 바로 만 2주년 되던 날이었다.

쫓겨나기는커녕 되레 그 조폭 방까지 터서 지금의 근사한 예배당으로 확장했다. 다른 건물 계약하느라 걸었던 2백만원은 손해 봤나? 그 건물주가 교회가 들어오는 건 안되겠다고 먼저 해약해줘서 2백만원 더 얹어 4백을 돌려받았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더니, 그 말씀이 딱 맞았다.

‘살맛나는교회’ 공동체의 이병선 목사는 노숙인 사역을 하면서 별 별일을 다 겪는다.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4백여명 노숙인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일은 사실 ‘별 일’ 아니다. 공인 행정사이며 1급 사회복지사인 그는 서울역의 수많은 무료급식단체들 중에서 유일하게 행정구제사역을 펼치고 있다.

 

밥 주는 것만으론 한계

“토요일마다 행정법률상담을 해주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지금까지 300여명 해주었죠. 내용증명 써주고 채무를 해소해주고 형사 사건에 연루된 것들도 해결해줍니다. 돈과 술로 노숙자들을 유인해서 노래방이나 단란주점 같은 곳에 바지사장을 시키는 거죠. 그리고 떼먹고 도망가면 사업자로 등록된 그 노숙인이 다 뒤집어쓰는 겁니다.”

그러나 노숙인들은 그것을 해명할 지식도, 행정적으로 대처할 능력도 없다. 이 목사는 이 모든 절차를 도와준다. 경찰서를 비롯한 관련 관공서에 각종 필요한 서류를 대신 작성해서 제출해주고 그들과 협력을 통해 각종 횡령, 사기로 지명수배된 노숙인들의 족쇄를 풀어준다.

“어떤 노숙인은 집에서 사망신고를 해버려서 기초수급을 받을 수가 없어요. 이런 저런 모든 분들을 도와줍니다. 여기 밥 주는 곳은 많지만 사실 밥만 주면 뭐합니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줘야죠. 이게 ‘프락시스’죠. 복음이 들어가기 전에, 당신 문제가 뭐냐, 그걸 해결해주면서 복음이 들어가야 합니다.”

▲ 노숙자 무료급식을 돕고 있는 이병선 목사(가운데)

돌아오는 한사람을 위해

최근에 살맛나는 공동체에는 경사가 많았다. 18세 가출, 25년 노숙인이었던 장교순 씨는 이 목사를 만나 새 세상을 경험 중이다. 방통고를 졸업하고 이번에 신학교에 들어간 그는 작년엔 같은 처지였던 한 여인과 결혼해 가정까지 꾸렸다. 최근 어떤 가출 청소년이 교회에 새로 왔는데, 25년 가출 경력(?)의 장 씨가 그 소년의 ‘멘토’가 되어 선한 길로 인도 중이다.

대학교 사회복지과를 들어가고, 직업전문학교를 다니고, 장애인학교에서 일반학교로 편입한 노숙자들도 있다. 미국 하버드대학을 나와서 노숙하던 사람, 또 미국에서 요리사로 있다가 마약 때문에 추방되어 온 사람,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이들이 이곳에서 도리어 노숙인을 섬기며 새 삶을 배워가고 있다.

성경말씀이 딱 떨어지게 맞을 때가 있다. 깨끗함을 받은 열 명의 나병환자 중에 한 명만 돌아와 감사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아버님, 형님”, 하고 머리를 조아리다가도 막상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열 명 중에 겨우 한 사람 찾아올까 말까 하다.

“그래도 그 한 사람이 어디입니까! 그 한 사람을 성경 공부시켜 말씀이 들어가고 삶이 달라지는 걸 보면 너무 보람됩니다. 감옥 갈 사람 구제해주니까 너무 감사해 하는데, 제가 그래요. 돈 필요 없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하는 거니까 하나님만 잘 믿어라. 은혜 갚을 생각 말고 신앙생활 잘해서 KBS의 강연 100도씨 같은데 나갈만한 인생이 되라.”

그는 작년에 평신도로 돌아갈까, 엉뚱한 고민까지 해봤다. 그만큼 힘들었다. 천안에 있는 주유소에서 나오는 돈으로 그동안 이 공동체를 운영해왔는데, 작년에 임대한 사람이 가짜 석유를 팔다 적발 되서 문을 닫았다. 그가 남에게 후원해 달라고 손을 잘 내밀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직업군인으로 일할 때에 보직이 워낙 좋은 곳에서 일했고요, 또 제가 워낙 부유한 집에서 자랐어요.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안하고 자랐죠. 어려서는 교회랑 거리가 멀었습니다. 어머니가 집에다 법당을 만들 정도였으니까요. 그것 때문에 집안이 많이 시끄러웠죠.”

이대 약대를 붙었지만 장신대 신학과를 간 여동생을 통해서 복음이 가정에 들어왔다. 신학교 갔다고 집에서 등록금을 대주지 않자 오빠인 그가 도와주며 장신대 기숙사까지 데려다 줬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기도하는 여동생이 또라이같이” 보였다.

 

담 넘어 새벽기도의 힘

 “89년 대구에서 군생활 할 때, 큰 사고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배운 게 도적질이라고, 엄마의 영향이 있어서 절을 찾아갔는데 마침 스님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철학관을 갔더니 어머니 죽은 귀신이 붙었다고 액땜을 하래요. 어느 날 새벽, 비가 오는데, 갑자기 교회에 들어가고 싶더라고요. 전혀 하나님을 모르던 때였는데, 왠지 어머니가 믿은 신은 망하게 하는 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릎 꿇고 있는데 그동안 잘못한 일들이 막 생각나는 겁니다. 소위 그날 제가 회개를 한 거죠.”

그날부터 매일 새벽기도회를 갔다. 정문으로 나가면 보초들이 “충성” 경례하며 소란하게 만드니까, 어쩔 수 없이 매일 담을 넘어갔다. 1년 만에 세례를 받았다. 154명을 전도해 전도상도 받았다. 제대하고 주유소를 경영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작년에 너무 힘들어서, 돈이 마르면 그거 핑계대고 이 사역 그만 둬야겠다고 했는데, 하나님이 ‘한 달란트 묻은 사람’을 생각나게 하시면서, 다시 붙드시더라고요. 또 어떤 사람을 통해 물질도 주시고, 내복도 백 여벌 주시고요. 주유소도 판결이 나서 밀린 것도 받게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이 뭡니까? 내일 일은 몰라요. 오늘, 그냥 ‘두 유어 베스트 인 지저스’ 하는 거죠.”

노숙인 사역을 한다고 목사도 노숙인 취급하며 하대할 때가 있다. 사실 속상하다. 때로 노숙인 무료급식 명목으로 후원금을 챙겨 자기 배를 채우는 삯꾼 목자 때문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피해를 입기도 한다. 서울역 노숙인 무료급식단체 연합의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마음 상할 때도 있었는데요, 요즘엔 도리어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너는 자식아, 돈이라도 있으니까 마이너스라도 쓰잖아’. 그래서 에이, 나나 잘하자구요. 생각하면 감사하죠. 우리 공동체 친구들, 정말 변한 친구들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변해서 새사람이 되어 가고 있거든요. 이게 기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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