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위한 국가와 교회의 파트너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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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위한 국가와 교회의 파트너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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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05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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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홍(설립 명예회장, 백석대 교수)

현존하는 세계 유일의 국가분단인 남북한의 분단은 어느 사이 70년이 지났다. 종전 62주년이 되었지만, 한반도에서는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성난 활화산을 방불케 하고 있다. 아울러 2015년 현재 남북관계는 진전이 없고, 시계추마냥 좌우로 오고갈 뿐이다. 이러한 현실에 서서 답답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가야할 길을 숙고하며 남북통일을 향한 한국정부의 파트너로서의 할 일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만약 한국정부가 땅의 정복으로 인한 법의 통일을 전제로 한다면, 전근대적 통일구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21세기 지구촌 시대에 적합한 통일론인지 조심스럽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물론 북한붕괴를 전제로 하지 않은 평화통일을 추구하고 있음을 통일부가 분명히 밝혔지만, 상대인 북한이 한국정부의 입장을 흡수통일 내지는 북한붕괴를 겨냥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여러 차례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한국전부의 통일구상을 원천적으로 새로이 조정하는 열린 자세가 요구된다 할 것이다.

국경을 뛰어넘어 지구촌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욱 요구되는 것은 이 글로벌한 시대에 영토의 통일보다는 사람의 통일이라 할 것이다. 사람이 만나고 하나 되면 국경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실 이미 국경이 무너지는 시대가 왔다. 그 예로 유럽연합(EU)이 그렇다. 유럽연합에 비해 남북관계는 그야말로 전근대적 분단을 강제하고 있는 점은 판이하다. 그럼에도 미래지향적으로 남북관계를 본다면, 대만과 중국의 양안관계처럼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또는 동독주민이 그러했던 것처럼 북한주민이 주도적으로 한국과의 평화통일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하겠다.

사람의 통일을 이룩하는데 교회의 역할은 너무도 중요하다. 통일은 다양한 면에서 함께 준비되어야 한다. 만약 정치적으로만 남북관계를 열어가려고 한다면, 오늘의 현실을 뛰어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점에 있어서 상대인 북한정권의 독점적 통일전략에 지혜로운 대처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체제 경쟁에서 확실하게 우위를 점해야 하는 정치보다는 인도주의에 입각한 교회의 순기능은 필히 요구된다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남북통일을 위한 교회의 역할은 한국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활용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독일의 통일을 ‘조용한 개신교 혁명’으로 일컫고 있음을 볼 때이다.

독일통일이 ‘조용한 개신교 혁명’으로 일컬어지는 이유는 다름 아닌 서독교회의 동독을 향한 비대칭적 사랑의 실천이 가져온 통일이었다는 표현이다. 동독을 향한 서독교회의 돕기는 분단 45년 동안 한 번도 중단되지 않았는데, 이는 특별한 공동체 die besondere Gemeinschaft를 형상하고 있었다는 말일 것이다. 국가가 이 특별한 관계를 독자적으로 길을 갈 수 있도록 후원했으며, 그러한 교회의 역할을 신뢰했다는 말이다. 안타깝게도 남북관계는 모 아니며 도라는 점이다. 정치의 길이 막히면 모든 길이 막혀서 남북 간 설치한 특별 전화도 불통이 되고 마는데, 답답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 특사인데, 이제 한국정부는 상설 특사들을 여러 차원에서 가져야 될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그저 통일은 좋다는 식이 아니라. 통일을 좋은 통일로 열매가 맺힐 수 있도록 분명한 지체로서의 할 일을 해야 한다. 남남갈등, 남북갈등, 동서갈등으로 치달을 때 한국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미리부터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몸가짐을 바로 하는 거듭난 거룩한 한국교회로의 꿈을 꾸어야 하겠다. 독일 통일이 서독교회의 거대한 역할에 큰 힘을 입었듯이, 한국정부도 열린 자세로 한국교회를 파트너로 삼아 함께 남북통일을 준비하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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