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에서 섬기다 보니 ‘노숙인들의 성지’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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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낮은 곳에서 섬기다 보니 ‘노숙인들의 성지’ 됐죠”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5.03.02 2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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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섬김의 현장을 가다 ① 집창촌 한가운데서 노숙자들을 섬기다. 가나안교회

2천 년 전, 사람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은 가난하고 더럽고 병든 자, 그리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시길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나에게 행한 것과 같다’며 어려운 이웃을 위한 사랑과 섬김을 명령하셨다. 손양원, 장기려, 한경직 등 한국교회에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믿음의 선배들이 있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의 성도들 역시 이 땅의 ‘작은 예수’로서 믿음의 선배들이 걸어왔던 섬김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 가나안교회는 서울의 대표적 '음지'인 청량리 집창촌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로 분주한 청량리역 바로 옆, 그 분주함과는 조금 동떨어져 보이는 세상이 있다. 이른바 ‘청량리 588’로 불리는 집창촌. 과거에 비해 많이 위축됐다고는 하지만 밤이 되면 청소년들의 출입이 통제될 만큼 여전히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음지’다. 이런 음지 한가운데 섬처럼 동떨어진 노숙인들의 ‘성지’가 자리하고 있다.

바로 올해로 창립 29주년째를 맞은 가나안교회.

전도가 최고의 섬김이다

매일 아침 9시면 가나안교회에서는 하루를 시작하는 예배가 열린다. 예배에 앞서 노숙인으로 구성된 찬양팀이 찬양을 인도한다. 오늘의 본문은 미가서 1장. 이 교회 담임목사이자 노숙인 쉼터의 ‘대장’인 김도진 목사는 “모든 흥망성쇠는 성경을 보면 답이 나온다. 세상 속에서 답이 나오지 않는다”며 성경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렇게 매일 하루 3번씩 예배가 진행된다. 김 목사는 “예배야말로 노숙인들이 변화되는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말한다. 본인 스스로가 깡패에, 칼잡이 노숙자 출신인 만큼 노숙자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성경이 자신을 변화시킨 것 처럼 다른 이들 또한 완전히 변화시킬 수 있다고 장담한다.

“우리 같은 사람들 돌봐주는 것은 예수님 밖에 없어요. 여기에는 살인자도 오고 다른 시설에서는 안받아주는 흉악범들도 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성경뿐이에요. 저 같은 사람도 성경을 보고 0.1초 만에 변화됐는데 누가 안 바뀌겠습니까.”

▲ 노숙인들의 대부를 자처하는 김도진 목사. 김 목사는 소비적인 섬김보다 생명력 넘치는 생산적인 섬김을 강조했다.

청량리 588을 화평케 만든 교회

78살이라는 나이에 걸맞게 머리에는 흰 서리가 내리고, 얼굴에는 주름이 깊게 팼지만 그래도 ‘왕년에 한가닥 했던’ 남자답게 김도진 목사의 얼굴과 목소리에는 청년 같은 자신감이 가득하다. 지금이야 집창촌의 위세가 많이 줄어들고 주변 상권(?)과 융화를 이루며 사랑을 받고 있지만 처음 교회가 들어선 당시만 해도 인신매매로 들어온 아가씨들과 이를 감시하는 깡패들로 득실대던 살벌한 지역이 이곳 청량리 588이었다.

김 목사는 이런 살벌한 곳에 스스로 걸어 들어와 교회를 세웠다. 신대원 졸업을 앞둔 어느 새벽. 기도 중에 ‘청량리로 가라’는 음성을 듣고는 곧장 순종하는 마음으로 청량리로 향한 것. 사창가 한복판에 교회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퍼지자 깡패들이 찾아와 그를 위협했다. 깡패들은 ‘목사 놈이 누구냐’며 윽박을 질러댔다. 그럴 때마다 김 목사는 ‘내가 목사’라며 호통을 쳤고 이런 팽팽한 기싸움은 오랫동안 계속됐다. 지금은 지리한 싸움이 완전히 끝났다. 오히려 당시 깡패들의 우두머리가 예수를 믿고 집사가 됐다.

“집창촌 한가운데 교회가 있다는 것은 인간의 생각에서는 사실 말이 안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를 이곳으로 보내셨죠. 가나안교회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생각을 깨뜨리고 놀라운 부흥으로 역사를 세웠습니다. 교회를 괴롭히던 독종들이 예수님을 믿으면서 역사가 일어났죠. 이 모든 것은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지금 588은 힘을 잃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승리하셨죠. 예수님은 화평의 왕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동네에 들어오면 자연히 그 지역은 화평케 됩니다.”

▲ 올해로 창립 29년을 맞은 가나안교회는 한국의 대표적인 노숙인 쉼터이자, 노숙인들의 '성지'로 발돋움했다.

쉼터를 넘어 발판으로

가나안교회의 노숙인사역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IMF 외환위기가 터지기 1년 전인 1996년부터다. 당시 많은 이들이 갑작스럽게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렸다. 교회는 청량리역을 중심으로 ‘갈 곳 없는 이들은 찾아오라’ 는 메시지가 담긴 현수막을 일곱 개나 걸어놓고 교회의 문을 활짝 열었다. 예배당은 거리의 노숙인들로 가득 찼고 교회는 이들과 함께 먹고 자며 1년 365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예배를 드렸다. 밥을 끓여줄 여력이 없어 수제비를 끓여 먹일지언정 배가 고픈 이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한해 5-600명에게 숙식을 제공했다. 지금까지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가나안교회 노숙인 쉼터를 거쳐 갔다.

교회는 단순한 숙식을 제공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쉼터를 찾는 이들 대부분이 알코올 중독이나 도박중독, 채무의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받아들이는 순간 중독의 문제와 질병의 문제, 빚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 줘야했다.

때문에 의료기관과 연계해 치료를 받게 해주는 것은 물론, 개인 신용면책과 파산 신청, 주민등록 재등록 등 한 사람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발판을 마련해주고 있다.

▲ 매일 낮 12시. 쉼터의 노숙인들은 직접 만든 도시락을 들고 인근의 독거노인들에게 배달을 간다.

소비적 섬김보다 생산적 섬김

하지만 단순히 주기만 하는 섬김은 지양한다. ‘노숙자 생활 3개월이면 재활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있을 만큼 노숙인 생활에 적응만 하면 노숙만큼 편한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 기자가 찾아간 날도 교회는 일찍부터 몹시 분주했다. 다리를 저는 한 형제가 절룩거리며 청소를 하고 있었고, 건물 한켠에 마련된 작업장에서는 20여명이 종이가방을 접는 일을 하고 있었다. 작업장에서 만난 39살 김 아무개 씨는 지난달부터 쉼터에서 생활해오고 있다. 어렸을 때 교회에 다녔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가지 못했다는 그는 “교회에 온 뒤 마음이 편하다. 예배를 드리면서 새로운 힘을 얻고, 의지를 얻는다”며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단순한 종이 가방 접기에 불과하지만 일을 통해 성취감을 얻고 다시 세상에 나갈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 교회 한켠에 마련된 작업실에서 종이 가방 접기가 한창이다.

이밖에도 가나안교회 쉼터에 머무는 이들은 병원의 간호사 보조는 물론 장애인 복지, 환경미화 등 공공근로를 통해 스스로 자립해 나갈 길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매일 낮12시가 되면 15개의 도시락이 지역의 독거노인들에게 배달된다. 도시락의 제작부터 배달까지 모두 쉼터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이 직접 담당한다. 김도진 목사의 큰 아들로 아버지를 도와 노숙인 사역에 뛰어든 사무국장 김정재 목사는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들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남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존감을 높여준다”며 “이것이 생산적 복지요, 생명력이 넘치는 섬김” 이라고 말했다.

▲ 종이 가방 접기는 단순한 일이지만 이들에게는 스스로 해냈다는 자존감을 주는 중요한 작업이다.

한편 교회는 지난해부터 노숙인 자활과 쉼터의 자립을 위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경기도 파주에 8천평 규모의 ‘가나안자활농장’을 세운 것. 농장에서는 양봉과, 양계, 약초재배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양봉을 통해 120병의 아카시아 꿀을 생산해 600여만원의 소득을 올리기도 했다. 매일 닭들이 130개씩 알을 낳고 여주와 아로니아 등 값이 나가는 작물들도 쑥쑥 자라고 있다.

김도진 목사는 “사람을 도울 때 그냥 밥만 줘서는 안 된다”며 “이들을 데리고 농사를 지으면 병아리가 크는 모습, 그게 다 커서 알을 낳는 모습, 벌이 꿀을 따오는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근심걱정이 사라지고 생명력을 받게 된다”고 말한다. 김 목사는 복지기금이 100억이 있어도 그저 주기만 하면 아무 효과가 없다”며 “그 돈 빼먹겠다는 생각으로 하면 다 망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스스로 땀 흘려 소출을 이뤘을 때 노동의 보람도 삶의 의지도 생긴다는 것. 김 목사에게는 꿈이 있다. ‘가나안자활농장’을 성공적인 자립․자활의 모델로 만들어 노숙인 뿐 아니라 버림받는 노령인구들을 위한 일터 마련에 나서고 싶다는 것. 김 목사는 하지만 이 모든 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라며 자신은 그저 기도할 뿐이라고 말한다.

한편 내년에 30주년을 맞이하는 가나안교회는 창립 이후 최대의 어려움에 처해있다. 지역 재계발이 확정되면서 이달 말까지 이전 계획서를 제출하라는 독촉을 받고 있는 상황. 더 큰 문제는 서울시내에서 200명이나 되는 노숙인들을 반기는 지역을 찾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노숙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공공근로소가 주로 서울시내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서울을 떠나기도 어려운 상황. 하지만 김도진 목사는 “이 역시도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며 “가장 선한 것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고 노숙인들이 갈 곳을 잃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한국교회가 기도로 후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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