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뼈에 철심 박고 생명을 살리는 구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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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뼈에 철심 박고 생명을 살리는 구조자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5.02.25 18: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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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북민을 위해 일하는 갈렙선교회 대표 김은성 목사는 최근 자신의 생생한 경험을 담은 ‘구조자’라는 책을 냈다. 그는 남들이 자신을 ‘탈북 브로커’로 보든지, ‘쉰들러’로 보든지 상관없다고 한다. 그에게 중요한 건 오직 죽음의 땅에서 한 생명이라도 더 구조해 내는 일이다. 사진은 바다에서 접선한 북한 이탈주민 구출 현장.

북한 이탈주민 인권운동에 목숨을 걸었다

 

▲ 김성은 목사

렙선교회 대표 김성은 목사

갈렙선교회 대표 김성은 목사는 첩보영화에 나올 법한 인물이다. 북한을 탈출해 중국이나 제3국을 떠돌고 있는 탈북민들을 한국으로 구출하는 일을 한다. 북한에 살고 있는 사람을 탈북 시켜 한국에 데려오기까지 한다. 몇 개국을 거쳐 거친 야생의 산악지대와 정글을 뚫고 가기도 하고, 작은 보트에 목숨을 맡기고 바다를 건너기도 한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언급한 강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등을 그는 실제로 겪어왔다. 그 과정에서 목뼈에 철심 6개를 박는 사고를 당했다. 지금도 아들을 먼저 하늘나라에 보낸 참척의 슬픔을 짊어지고 산다. ‘목숨을 걸고’ 탈북민 구조에 헌신한 덕에 그는 많은 성과도 거뒀다.

밀항선을 이용한 탈북 루트를 최초로 개척했고, 북한 화폐개혁 실상을 영상으로 공개했으며, 북한 내부의 다양한 정보를 밝혀내기도 했다. 그의 탈북 다큐멘터리가 영국 BBC, 일본 NHK, 독일 ZDF에 방송되었으며, 그 밖의 미국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전 세계 언론에서 그를 다뤘다. 지금도 외국에서 탈북민 취재를 위해 입국하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바로 갈렙선교회.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는 통일을 향한 꿈이 서려있는 이곳을, 오늘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저는 좀 굴곡 있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어려서는 7남매의 맏이로 생계를 위해 중학생 때부터 배를 타고 돈을 벌었고요. 좀 커서 노동운동을 했는데, 약자를 위해 헌신했던 노동운동이 점점 변질되어 가더라고요. 그래서 노동운동을 떠나 사업을 했습니다. 그때 멘토로 삼고 있는 이형렬 목사님을 만나 민족선교에 눈을 뜨게 되었죠.”

 

‘꽃제비’와 운명적 만남

2000년 여름, 장마철이면 굶주려 죽은 시체가 두만강을 따라 하루에도 몇 구씩 떠내려왔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한 어린 소년이 그의 옷깃을 잡고 말했다. “같은 동포끼리 같이 좀 삽시다.” 구걸하는 북한 ‘꽃제비’였다.

“그 불쌍한 아이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내 삶을 회개하며 탈북자를 돕는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숨어있는 북한 동포들에겐 옷이 필요했습니다. 헌 옷 수백 벌을 40kg이 넘는 가방 세 개에 담아 하나는 목에 걸고, 두 개는 양 어깨에 메고 사선을 넘나들었죠. 그런데 어느 날 두만강을 가다가 빙판에 미끄러지고 말았습니다.”

목에서 우두둑,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이일로 그는 9시간 대수술 끝에 목뼈에 철심 6개를 박았다. 그러나 그는 원망도 없다. 오히려 장애 덕분에 탈북 선교 도중에 중국에서 공안에 잡혔다가 풀려난 일이 감사하고, 장애 혜택 받아 비행기 요금이 할인되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그는 계속 누워있을 수 없었다. 다시 일어난 그는 국경지대에서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성경백독반을 운영했다. 성경 100독을 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우리 돈으로 250만원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탈북선교회, 옥석 가려야

“그때 제 아내 박 에스더 목사를 만났습니다. 아내는 북한군 장교 출신 탈북자였어요. 저를 처음 보고 한 말이, ‘고저 키도 우리 장군님만하고 배도 나오고 꼭 우리 장군님 닮았습네다’라고 하더군요. 알고 보니 그게 칭찬이었어요. 정말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구사일생으로 아내가 탈북에 성공했습니다. 한국에 와서 결혼을 하고 신학도 해서 지금은 천안서평교회 담임목사로 저와 함께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군 장교 출신인 아내의 조언 덕택에 그는 탈북자 선교에 많은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기독교 관련 선교단체의 도움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탈북 선교사들을 ‘도깨비 방망이’로 오해하기 쉽다. 북한사회부터 탈북 과정에서까지, 어쩔 수 없이 받는데 익숙해진 탈북자들은, 한국에 와서도 쉽게 일터에 적응하기 어렵다.

개중에는 탈북자가 신학교를 가면 감동하고 후원하지만 사실은 식당가서 일하는 것보다 더 쉽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잘못된 동기로 우후죽순 생겨나는 탈북 선교회도 적지 않다고 한다.

“사실 탈북 선교나 북한 선교는 영수증을 끊을 수 없는 사역이거든요. 신뢰성이 꼭 보장되어야 합니다. 저희 선교회는 우리가 가져오는 북한 관련 동영상이나 정보, 구출해내는 탈북자들이 곧 우리의 사역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최근 ‘구조자’라는 책을 써냈다. 그 동안 탈북민들을 구조해 내면서 그가 겪은 고난, 위기, 위협, 그리고 배신은 언제나 이중의 고통이다. 탈북 선교를 하다 아들을 잃고 흘린 눈물은 아직도 그의 심장에서 마르지 않고 있다. 때로는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럴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돈을 의미있게 쓰는 법

“탈북은 결국 돈입니다. 사람 생명 구하는 일은 결국 돈이에요. 늘 돈이 부족합니다. 한번은 배를 타고 탈북한 사람들을 바다 한 가운데서 만나 데려와야 하는데, 마중 나갈 배가 없는 거에요. 돈을 더 달라는 거죠. 이해도 됩니다. 목숨 걸고 가야 하니까요. 이런 일이 태반입니다.”

자기 먹고 살기도 어려운 형편에 생명을 구하라고 후원하는 이들이 있다. 전세금 빼고 사글세로 가면서 그 돈을 기부한다. 김밥장사로 어렵게 모은 돈을 보내준다. 후원금에 담긴 그들의 마음이 항상 그의 용기를 북돋아 준다. 그렇게 해서 탈북자들을 한국으로 데려올 때의 감동은 뭐라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요즘 그는 꽃제비 탈북에 전념하고 있다. 어른 탈북자들에 비해서 아이들은 쉽게 변화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은 북한과 남한의 미래다. 최근에 김 목사에게는 딸이 생겼다. 최근 한국에 들어와 기관에서 보호받고 있는 ‘지향’이와 통화를 녹음한 것을 기자에게 들려준다.

김 목사를 ‘아빠’라고 부르는 목소리가 통통 튄다. 명랑한 음색에는 꽃제비로 떠돌던 어두운 그림자가 전혀 없다. 두 달 만에 새로운 아이로 바뀌었다. 통화를 듣는 김 목사의 얼굴이 딸 바보의 흐뭇한 미소로 가득 찬다. 먼저 간 아들 대신에 하나님은 그에게 새로운 자녀들을 주셨다.

북한을 탈출한 지향이와 함께 한 김 목사

“예전에 어떤 분이 서울에서 목회하면 교회를 하나 세워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서울에서 활동하는 게 여러 면에서 탈북 선교에 유익하죠. 사실 전철로 올 수 있는 곳인데, 어떤 분은 와서 돕겠다고 하다가 천안이라니까 돌아서시더라고요. 그러나 저는 임대료가 싸니까 그냥 천안에 있습니다. 커피가 맛있다고 소문나면 논두렁 밭두렁에 놔도 잘 되잖아요.”

그는 우직한 스타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위험하지 않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그는 되묻는다. “세상에 위험하지 않는 일이 있나요. 가게 하나 해도 목숨 걸어야 제대로 하지 않나요?”

몇 개국을 돌아 정글과 광야를 지나야 하는 1만 킬로미터의 고단한 여정 속에, 북한군 수비대와 중국 공안의 위험을 비껴, 2인 정원에 13명이 탄 보트로 5미터 파도를 뚫고 가야할 일들이 앞으로 또 있을 지라도, 지금까지 하나님이 도와주신 기적들을 생각하면, 그는 두려울 게 없다며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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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2016-06-25 01:18:23
사실 기획탈북의 원조격으로 불리운 목회자로는 갈렙선교회 김성은 목사님이 아닌 두리하나선교회인 천기원목사님이랑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