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대해 직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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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에 대해 직면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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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2.11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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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호프와 함께하는 ‘생명목회이야기’ (43)

1994년도는 유엔이 정한 ‘세계 가정의 해’였다. 전 세계적으로 가정이 급격하게 붕괴되는 현상을 예감했기 때문이었다. 그해 7월, 나 역시 가정사역에 큰 관심을 가지고 가정상담소를 개설하고 가정사역을 시작했었다.

그때 가장 먼저 시작한 프로그램이 ‘성인아이 치유그룹’이었다. 이 그룹은 일종의 자조그룹(self-help group)으로, 공통적인 성장과정의 트라우마로 심리, 정서적 고통만이 아니라 충동적 행동의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의 경험을 함께 나누며 서로 돕고 치유해가는 모임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중압감도 커져갔다. 국내 기독교계에서는 이 모임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급한 대로 미국 교회 중에 자조그룹을 잘 운영하고 있는 교회에 연락하여 비디오 자료를 구하고, 때론 직접 전화로 자문을 구해가면서 정말 열심히 그룹원들에게 도움이 되어주려고 애를 썼다. 미국 사회와 교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자조그룹에 대한 경험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풍부한 사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는데, 그중에는 자살과 관련된 사례도 꽤 많았다.

어느 저녁 그룹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한 젊은이가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머리를 숙인 채 앉아서 그룹이 진행되는 시간 내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인도자는 내심 걱정이 되면서도 ‘별일 아니겠거니’ 생각하고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하였다. 잠시 쉬는 시간이 지나고 다시 그룹원들이 모였을 때, 그 젊은이가 먼저 자기 이야기를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그런데 그 첫 마디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난 오늘 이 자리에 많이 망설이다가 왔습니다. 지금 너무나 힘들거든요. 정말 살아야 할지 죽어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난 지금 조금 전에 화장실에 가서 이미 약을 먹은 상태입니다. 살 의욕도 잃었고,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

그 순간 인도자는 물론이고 그룹원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인도자는 위급상황을 알리고 급히 911에 신고를 하였다. 그리고 그 젊은이를 안정시키고자 가진 애를 다 썼다. 다행히도 재빠른 구급 조치와 함께 했던 그룹원들의 도움으로 그 젊은이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여기서 생각해 본다. 왜 인도자를 비롯해서 12명이나 되는 그룹원들은 그 젊은이의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을까? 아니 정말 알아채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알아채고도 모른 척 한 것일까?

나중에 알아보니 사실은 많은 그룹원들이 그 젊은이의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있었다는 것이다. 인도자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그 젊은이에게 먼저 말을 걸지 못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거기에는 ‘설마’ 하는 안일한 생각, 자살이라는 말을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죽음 혹은 자살의 문제는 누구에게나 두렵다. 그래서 서로 말하기를 꺼려하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는 암시적이거나 간접적으로 말하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심지어는 죽음과 자살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마치 믿음이 없는 것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그래서는 자살의 위험에 빠진 사람을 도울 수 없다.

자살예방교육에서는 누군가가 자살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피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혹시 지금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까?” 직접 묻고, 명료화해야 한다. 그리고 진지하게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어야 한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은 잘잘못을 따지거나 혹은 성급하게 교리적인 잣대를 들이대어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죽고 싶을 만큼 힘들다는 것을 공감해주는 것이고, 그 충동적 생각에서 구해내는 것이다.

노용찬 목사(라이프호프기독교자살예방센터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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