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교회의 몰락 보며 병든 어머니 생각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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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교회의 몰락 보며 병든 어머니 생각났죠”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5.02.03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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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 발원지에 성경학교 세우는 김위식 선교사
▲ 김위식 선교사가 자신의 설교노트를 보여주고 있다.
 
종교개혁자 존 낙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스코틀랜드에서 술집으로 바뀐 교회를 다시 세우는 사역을 하는 김위식 선교사. 한국나이로 57살. 이제는 사역에서 한 발 물러나 은퇴를 생각해도 될 만한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사역을 시작한지 18년. 김 선교사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장로교 신학의 본산지에서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는 성경학교를 세우겠다는 것. 유창한 영어실력보다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복음을 전한다는 김 위식 선교사를 만나봤다.
 
1990년대 초반, 선교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종교개혁자 존 낙스의 고향 스코틀랜드 교회들이 술집으로 팔려가고 있다는 것. 당시 신학교에서 사역을 준비하던 김위식 선교사는 이 이야기를 듣고, 본래 계획했던 인도 선교를 접고 무작정 스코틀랜드로 향했다. 당시 나이 40살. 이미 적지 않은 나이에다 아는 영어라곤 세 마디 뿐이었지만 교회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말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스코틀랜드 교회의 안타까운 소식에도 불구하고 당시 주변에서는 '스코틀랜드가 왜 선교지냐, 유학가는 것 아니냐'는 오해도 적지 않았다.
 
"시선이 곱지 않았어요. 장로교의 본산지인데 무슨 거기가 선교지냐는 말을 많이 들었죠. 그런데 직접 가서 목격한 스코틀랜드 교회는 마치 전세계 교회를 위해 헌신하다 돌아가시기 직전의 부모님 같았습니다. 8남매를 키우다 89세에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돈이 없어서 병을 고쳐보지도 못하고 안타깝게 돌아가셨거든요. 마찬가지에요. 그 곳의 교회도 가만히 놔두면 손도 못써보고 죽게 생겼더군요. 안타까운 마음을 품고 뭐라도 해보자는 각오로 무작정 스코틀랜드로 향했습니다."
 
어렵게 몇몇 개척교회의 도움을 받아 선교를 시작했다. 김 선교사는 자신이 아마 정식 선교 비자로 스코틀랜드에서 복음을 전한 첫 번째 선교사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신만고 끝에 사역을 시작했지만 현지인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유색인종에다 영어도 잘 못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무슨 선교를 하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 처음 몇 년 동안은 지속적으로 김 선교사의 집에 오물을 던지고 가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 하지 않았다. 김 선교사는 힘들때마다 어렸을 적 엉겅퀴 밭에 떨어져 크게 다쳤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전역에 흐드러지게 깔린 엉겅퀴를 보며 이 가운데서도 분명 하나님이 자신을 건지실 것을, 그리고 이땅의 회복을 위해 목숨을 걸겠노라고 믿고 다짐했다.
 
"처음에는 의심의 눈초리, 그리고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던 현지인들이 하나 둘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눌한 영어지만 분명하고 진실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여기에 한국의 호떡과 김치를 나누며 사랑을 전하자 일이 되기 시작했죠. 그때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선교는 언어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에 심장에 있다는 것을요."
 
서른 살이 넘으면 언어는 포기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다수의 선교사들이 언어의 문제로 선교에 어려움을 겪는다. 김 선교사 역시 마찬가지. 자동적으로 늘기는 하지만 현지인 수준에는 많이 미치지 못한다며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이내 자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오히려 부족한 입술을 쓰시는 하나님'이라며 그간의 성과를 조심스럽게 자랑한다.
 
"저는 보통 NIV 성경을 보며 설교를 준비합니다. 그러다 한 단어를 뽑아 그 단어를 중심으로 설교를 합니다. 보통 40분에서 50분짜리 설교를 하는데 어떨 때는 일곱 시간씩 설교를 하기도 하죠. 사실 말도 안 되는 설교를 할 때도 많은데, 신기한 건 그 와중에 성도들이 감동을 받는다는 겁니다. 스코틀랜드에는 박사학위를 받은 목사들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그 교회가 무너져 술집으로 넘어가죠. 하나님은 오히려 약한 자를 들어 쓰시고 부족한 입술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느끼고 감사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에 내가 아닌 하나님이 하셨다는 증거가 되니까요."
 
그렇게 시작된 홀리그라운드 커뮤니티에는 현재 30여명의 성도들이 매주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김 선교사가 사역중인 스트란라 지역에는 한인이 전무한 실정이라, 자연스럽게 성도 대부분은 현지인들로 구성돼있다. 노인과 노숙자 등 사회적 약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4퍼센트에 불과한 스코틀랜드의 복음화율을 생각하면 참으로 귀한 영적 자원들이다. 김 선교사는 성도들과 함께 매일 새벽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한국식 목회’를 고집해왔다. 이들을 시작으로 미약하지만 스코틀랜드 전역의 재복음화의 꿈이 이뤄질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올해 4월부터는 순수 성경만 가르치는 성경학교를 시작한다. 정식 교육기관은 아니지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성경을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 무료로 성경을 가르친다는 목적이다. 현지인 장로들과 목사들로 구성된 교수진도 이미 준비를 마쳤다. 김 선교사는 이 성경학교를 잘 키워서 기독교세계관을 바탕으로 가르치는 정식 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다.
 
“한때는 모든 학교가 채플을 드리던 스코틀랜드 땅에서 크리스천 스쿨이 멸종해가고 있습니다. 학교는 마약과 동성애, 다원주의에 물들고 있습니다. 다음세대가 없으면 교회에는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장로교 신학의 본산지인 이곳에서 다시금 복음의 물결을 이뤄내려면 결국 예배가 살아나야 하고 말씀이 살아나야 합니다.”
 
어려운 와중에도 학교 건물은 해결된 상태. 문제는 교실을 꾸미고 도서관에 자료를 구비하는 등의 비용이 마련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김 선교사는 한국교회가 사랑으로 이 일에 동참해 달라고 간절히 촉구했다. 스코틀랜드 교회가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말씀의 회복이 간절하다는 것.
 
“150년 전 대동강변에서 목이 잘려 돌아가신 첫번째 순교자 토마스 선교사님은 영국 사람이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님을 필두로 수많은 스코티쉬 언약도들의 피와 눈물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교회도 있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스코틀랜드 교회가 신음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빚을 진 한국교회가 선교사님들의 은혜를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병든 어머니에게 자식들의 사랑이 필요하듯이 스코틀랜드 교회에는 한국교회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함께 기도해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시길 간절히 바라고 바랍니다.”
 
한편 지난 2일부터는 ‘홀리그라운드 커뮤니티 성경학교 세우기’를 캐치프레이즈로 성화전시전이 진행되고 있다. 전시전에는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서봉남 화백의 성화 30점이 전시된다. 김 선교사는 많은 이들이 전시전을 찾아 스코틀랜드 교회의 회복을 위한 기도에 동참하고, 사랑을 나눠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전시회는 압구정역 2번출구 앞 창의보석예술관에서 오는 28일까지 무료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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