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기획]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들꽃청소년세상’의 엑시트(EXIT)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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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기획]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들꽃청소년세상’의 엑시트(EXIT) 버스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5.01.29 13: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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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적인 세상에서 희망적인 세상으로 나가는 출구
▲ 도림천 옆에 서 있는 엑시트버스가 거리의 청소년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진정 필요한 것은 잠잘 곳 아닌 ‘가정’

거리의 아이들에게 사회적 안전망 역할

청소년 재능 계발로 주체적 성장 일켜내

 

신림역 옆 봉림교 사거리에 도림천을 끼고 버스 한 대가 서있다. 목요일 밤이 깊어가면서 어른스러워 보이는 아이들이 하나 둘씩 버스로 들어간다. 특이한 디자인의 버스를 다시 쳐다본다. 버스를 뒤덮은 ‘EXIT’(엑시트)라는 말. ‘출구’다. 건물 비상구 안내등이 그대로 버스가 됐다.

거리를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비상구가 된 버스. 거기서 맛있는 냄새가 풍겨난다. 오늘의 특별메뉴는 빈대떡. 버스로서는 공간이 모자라 버스 앞에 세운 천막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빈대떡을 부친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빈대떡처럼 둘러앉은 젊은이들이 수다를 떨고 있다. 버스 안에는 더욱 왁자지껄. 한쪽에는 밥을 먹고, 한쪽에서는 텔레비전을 보며, 한쪽에서는 이야기가 한창이다.

집 나온 아이들은 거리를 방황하지만 어디 깃들일 곳이 없다. 거리의 어른들 중에는 종종 이들을 돌봐주려는 것처럼 호의를 베푸는 이들이 있지만, 대개는 이들을 이용해먹으려고 발톱을 숨기고 있을 뿐이다. 이 버스는 이런 거리의 아이들이 쉴 수 있고 보호받을 수 있는 ‘움직이는 청소년 센터’다.

청소년들은 누구나 이곳에 들어와 밥을 먹을 수 있고 쉬면서 대화와 게임을 할 수 있다. 의료와 법률적 지원도 받을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취업 준비나 그밖의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과 연결시켜주기도 한다.

이 버스에서 ‘야전사령관’을 맡고 있는 변미혜 센터장은 “기존의 고정된 건물에 있는 청소년센터와는 달리 이 엑시트 활동은 거리의 버스 형태로 있기 때문에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청소년들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긴급한 상황을 당할 때에도 도움을 빨리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서 “길거리 상담도 해보았지만 그런 경우는 너무 오픈되어 있어서 청소년들이 상담을 꺼려하는 반면 버스는 접근성과 함께 밀폐성도 보장돼 청소년 상담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 버스 내부 한켠에는 주방이 마련되어 있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다.

청소년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이 버스는 올해로 20주년을 맞는 사단법인 들꽃청소년세상(대표:김현수 목사, 문의:02-866-8836)이 운영하는 ‘움직이는 청소년센터’다.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한 이곳은 청소년 지원기관으로 대안가정, 대안학교, 직업교육장 등을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의 활동으로 신뢰받는 시설이 된 이곳은 처음부터 의도하여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안산에서 목회하던 김 목사의 교회에 어느 날 동네 아이들 몇이 잠잘 곳을 찾아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됐다.

그 아이들은 사실 잠잘 곳뿐만 아니라 ‘가정’이 필요했다. 김 목사는 일반 목회를 접고 이 아이들과 함께 가족이 되는 ‘예수가정’(그룹홈)을 시작했다. 이어 제도권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이들을 위해 학교를 시작했으며, 이들이 자립할 수 있는 일터가 필요했기 때문에 ‘자립관’을 운영하게 됐다. 20년이 지난 지금 ‘들꽃청소년세상’은 가장 신뢰받는 건강한 청소년센터로 자리 잡았다.

지난 2011년 4월 시작한 엑시트(EXIT) 활동은 들꽃청소년세상만의 남다른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사역이다. 그 특성은 ‘청소년은 공동체와 사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는 핵심가치 속에 담겨져 있다.

대부분의 청소년센터들이 ‘문제 청소년’들을 일방적인 돌봄의 대상으로만 대하는 것과는 달리 들꽃청소년세상은 그들이 주도적으로 활동에 참여하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엑시트 활동 곳곳에서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이 눈에 띈다.

“보통 사회복지라고 하면 그 대상자들을 일방통행식으로 돌보고 지원하는 시각에서만 봅니다. 그러나 저희는 거리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주도성, 주체성, 자율성을 살려주려고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을 폅니다. 예를 들면 우리 버스에 청소년들이 운영위원으로 참여하여 여러 가지 활동에 주도적으로 담당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자기 자신의 재능을 자각하게 되고 책임감을 갖고 일하면서 자존감을 회복하게 됩니다.”

엑시트는 해마다 여름에 해변 아웃리치를 간다. 지난 해 을왕리로 갔을 때에는 거리에서 만난 청소년들이 팀장이 되고 활동가 선생님들이 팀원이 됐다. 선생님들은 보조역할만을 하면서 수혜자의 입장에서 아이들이 일하는 것을 지켜봤다. 두 달 남짓 기간 동안 스스로 프로젝트를 맡아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짜고 준비하고 재정까지 집행하면서 아이들은 부쩍 성숙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과정에서 누렸던 큰 성취감과 자신감은 그동안 사회의 ‘문제아’로만 찍혀왔던 낙인을 지울 수 있는 계기가 됐다.

▲ 버스 앞에서 거리의 청소년들을 반갑게 기다리고 있는 김현수 목사, 변미혜 센터장, 조순실 교수, 그리고 이들을 후원하는 김태진 썬미트 대표이사(오른쪽부터).

‘수다’ 속에서 회복과 성숙 추구

평상시 엑시트 버스에 청소년들이 찾아오면 일단 ‘먹이는’ 일부터 시작된다. 거리의 아이들은 항상 배가 고프다. 사먹는 음식도 대게 인스턴트 식품. 즉석밥도 사먹을 수 있지만 계속 먹다보면 ‘방부제 냄새가 난다’고 한다.

반찬은 고기반찬. 아이들은 고기를 좋아한다. 고기를 비롯한 반찬들은 교회를 비롯한 독지가들이 제공한다. 이날의 메뉴는 불고기. 특별간식은 버스 밖 천막에서 지지고 있는 빈대떡. 거리에서 마음과 몸이 허기진 아이들은 이곳에서 ‘집밥’의 위력을 경험한다.

굳었던 인상이 펴지고 닫혔던 마음이 열린다. 아이들은 집밥을 먹으면서 하나 둘씩 입을 연다. 쌀쌀한 겨울을 녹이는 김이 식탁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면서 풍성해지는 수다. 좁은 버스 안 공간에서 부대끼면서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좁혀진다. 버스 안 수다는 엑시트 활동의 중요한 사역 중에 하나다. 변 센터장은 이렇게 수다의 의미를 설명한다.

“거리에서 만난 친구들을 보니까 사회성이 좋아요. 이야기를 잘하고 수다 떠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이들이 잘할 수 있는 것을 통해서 회복되도록 돕자는 마음에서 스토리텔링을 생각했습니다. 여러 가지 이슈를 잘 다룰 전문가 강사를 모시고 친구들과 함께 그 주제로 수다를 떠는 겁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자기 의견을 내고 사고하는 능력을 발전시키면서 자연스럽게 성숙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활동가 선생님들의 교육시간에 거꾸로 엑시트 버스에서 배우고 성장한 청소년들이 특별강사로 참여했다.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교육하는 것은 선생님들과 비교될 수 없지만 아이들은 그들만의 경험과 시각이 있었다.

“그때 이 친구들이 자기들의 입장에서 버스에서 느낀 것을 활동가 선생님들에게 조언해주더라고요. 더 효과적으로 청소년들을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법을 자기들의 눈높이에서 가르쳐주니까 활동가 선생님들이 크게 배우는 계기가 됐지요. 어떤 아이는 전국 38개 쉼터를 다 가봤대요. 평가가 장난이 아니었어요. 이 쉼터에는 이런 감수성이 부족하다, 저 쉼터에는 인권 쪽이 잘되어 있다,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쉼터에는 이런 특징이 있다, 이렇게 평가해줘서 저희 청소년 활동가들에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작년에는 숭실대에서 청소년 관계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강에 엑시트의 한 청소년이 강사로 초청받았다. 대학생들이 청소년들에게 내놓은 질문지들을 검토한 이 ‘특강 강사’는 일침을 놨다. 청소년들을 이해하는 척 하지만 실상은 현실을 모르는 질문들이라고.

엑시트 버스의 수다는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소외된 자들과 먹고 마시며 대화 가운데 그들을 회심케 했던 사역을 연상시킨다. 이렇듯 들꽃청소년세상과 엑시트 활동은 청소년들이 잘하는 것을 계발하여 주체적으로 성장시키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고 있다.

▲ 엑시트 버스를 찾은 의료진들이 학생들의 건강검진을 해주고 있다

희망 여행의 승객을 오늘도 기다린다

버스로 가는 봉림교 위에서 누군가 ‘목사님’하고 살갑게 부른다. 들꽃의 대표 김현수 목사와 조순실 교수 부부가 반갑게 맞이한다. 들꽃청소년세상은 교회에서 시작되었고 신앙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종교시설은 아니다. 따라서 모든 활동에서 종교적 색채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이들이 ‘목사님’하고 정답게 부르는 그 목소리 속에 신앙적 감화가 느껴진다. 한국교회가 한국 사회로부터 냉랭한 시선을 받고, 목사가 ‘먹사’로 개명되는 이 시대에, 소외된 영혼들에게 ‘목사님’이 정답게 다가온다면 이미 선교의 효과는 잔잔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보인다.

일주일에 두 번 떠나는 엑시트 버스는 목요일 밤 8시부터 1시까지는 신림역에서, 금요일밤 8시부터 2시까지는 안산중앙역에서 희망 여행의 승객들을 기다린다. 요즘 이용하는 청소년들은 대략 40-50여명 정도. 아무래도 여름보다는 겨울이 좀 드물다.

버스가 문을 닫는 새벽 1시.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집으로 가지만 갈 곳 없는 아이들도 있다. 그들을 또 다른 쉼터에 연계하는 것도 일이다. 일주일에 두 번 운행되지만 현장에서 처리하지 못한 일들을 나머지 시간에 후속 처리해야 한다.

“이 친구들이 대개 처음에 보면 무기력하고 꿈이 없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왜 부당한 일들과 맞서 싸우지 않느냐고 하면 이들이 그래요. ‘세상이 내편이 되어준 적이 없다, 믿었던 어른들에게 계속 피해를 당했다’고요. 실제로 저희도 아이들을 도와 어떤 문제에 개입했을 때에 무력감을 똑같이 느끼거든요. 저희도 그런데 이 친구들은 오죽 하겠습니까. 그러나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함께 힘을 합해서 대안을 만들자고 말하죠. 끝까지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독특한 엑시트 버스의 디자인은 당시 뉴욕에서 활동하던 이제석 광고디자이너의 작품. 처음에 버스를 기획할 때에 그에게 이메일로 설립 취지를 설명하고 디자인을 부탁했더니 흔쾌히 재능기부를 약속했다. 몇달 후 비상구 모양의 디자인이 왔다.

그렇게 해서 거대한 비상구가 탄생했다. 거리의 아이들에겐 암울하고 우울하고 위험하기만 한 세상. 여기서 탈출해보자. 이 버스를 통해 새로운 희망의 세상으로 나가보자. 엑시트(EXIT)는 절망의 세상에서 탈출하는 출구이면서 동시에 더 나은 희망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하지만 주변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거리의 아이들이 서성이는 엑시트 버스를 탐탁찮게 바라보기도 한다. 동지들이 더 필요하다. 도우미들도, 후원자들도 더 필요하다. 함께 더 나은 세상으로 아이들과 함께 떠날 승객들을 엑시트 버스는 오늘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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