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익과 공익
상태바
이익과 공익
  • 운영자
  • 승인 2015.01.21 13: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인찬 목사•백석신학교 학장

이익은 개인의 이기주의에서 나온 산물이요, 공익은 이타주의에서 나온 산물이다. 말세의 징조 가운데 하나가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딤후3:2)이다. 이타도 이신도 아닌 자기 사랑의 도취에 빠진다는 말이다.

현대인의 특징가운데 하나가 말세의 징조와 같이 하나님도 남도 배려치 않는 이익만을 추구하는 심성으로 변질 될 것을 말하고 있다. 인간이 이익관계로 맺어지면 남을 이용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이용하는 것이다. 마치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는 말씀과 같이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 남을 위한 희생과 배려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철저히 남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익공동체를 만들고 마는 것이다. 마치 성도가 없는 사업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물건을 매점매석하며 남을 죽이고 자신만 살겠다는 얄팍한 상술을 이용하여 돈을 추적하는 사람같이 이익, 경제, 이익관계, 이익공동체, 이익국가를 만들어 전혀 공익이 없는 자신의 배만 채우는 삶을 말한다. 이런 사회는 생존경쟁과 적자생존 생애를 원칙만 있어 사랑도 희생도 찾아 볼 수 없는 사회를 만들고 마는 것이다. 이는 바벨탑을 쌓아 자신의 이름을 내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는 자들이 만드는 사회와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이들에게는 동반 성장도 없고 남을 위한 희생도 배려도 철저히 배제 되는 것이다. 이익만을 앞세우는 사회로 모두 죽고 마는 것이다. 상생이 아니라 동반자살행위가 되고 마는 것이다. 같이 죽는 것이다.

그러나 이익이 아니라 공익을 위한 삶은 철저히 남을 먼저 배려하고 생각하고 행하는 삶이다. 이는 마치 꽃이 벌에게 꿀을 내어 주나 열매를 맺는 것 같고, 과일 나무가 주인에게 과일을 내어주지만 주인이 두루 파고 거름을 주고 돌보아 주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는 이익의 삶을 살지 않으시고 이신과 이타의 삶을 사셨다. 자신을 위한 삶을 완전히 배제되고 공생애를 사신 것이다. 소인은 사소한 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맞추어 행하나 대인은 큰 이익도 공익을 위해 내어놓고 희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익공동체를 만들지 않고 사랑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교회도 이익공동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사랑의 제 1원리는 주는 것이다. 사랑은 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여 독생자를 주셨고, 독생자 그리스도는 우리를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주신 것이다. 주께서는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고 성경은 피차 물고 먹으면 멸망 받으나 서로 나눠주기를 힘쓰고 한 알의 밀처럼 자신은 죽어도 많은 열매로 남을 살리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다. 이익은 자신만을 위한 것이요, 공익은 남을 위한 것이다. 이 세상에 세워져야 할 나라는 이익추구의 사회 곧 이익 공동체가 아니라 남을 살리는 공익 곧 사랑의 공동체가 세워져야한다. 하나님나라는 이익 공동체가 아니라 사랑의 공동체이다.

우리 모두 자신의 이기심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역사하여 공익을 위한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하였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이며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자들이 아니라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이타주의 하나님을 위한 이신주의자들의 사랑이다.

우리 모두 이기주의의 한계를 넘어서 공익을 위한 새로운 삶의 차원으로까지 자라가야 하겠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그리스도의 사랑의 증인 될 수 있을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