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소방관의 기도… “주여, 올해도 지켜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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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소방관의 기도… “주여, 올해도 지켜주소서”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5.01.20 2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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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완승 진압대장

광진소방서 이완승 진압대장

앞이 캄캄하다. 앞으로 나아가기도 어렵다. 불꽃은 어디 있을까. 숨이 가빠온다. 매캐한 유독가스만이 가득 차있다. 지하에서 일어난 화재는 불꽃연소를 하지 않는다. 불이 난 발화점을 찾기 어렵다. 진화하기가 쉽지 않다.

그날도 그랬다. 라마다 르네상스 옆 지하 룸살롱. 방 20여 개가 미로처럼 얽혀있었다. 어디선가 타고 있는 발화점을 찾아야 하는데,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때 산소가 떨어져 의식을 잃은 선배가 보였다. 2~3초만 늦었어도 생명을 잃을 수 있었다.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보인 것 자체가 기적. 순간 생명줄인 소방줄을 놓아버렸다.

시간이 없었다. 선배를 이고 본능적으로 암흑 속을 뛰었다. 빛이 보였다. 몇 초 만에 출구를 찾아 나왔다. 지금 생각하면 기적 같은 일이었다. 생사를 오가는 이런 일들이 소방관의 일상 속에 늘 도사리고 있다.

생과 사의 기로에서

정년이 4년 남짓 남은 광진소방서 진압대장 이완승 대장(높은뜻정의교회 집사)은 아직도 이런 현장을 지킨다. 더 편한 업무를 택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노하우를 후배들과 나누고 싶어서다.

“언젠가 다쳐서 잠시 회복을 기다릴 때에 소방 관련 설비기사 자격증을 두개 땄습니다. 현장 경험과 함께 이론까지 겸비하고 싶었어요. 화재 진압 경험과 함께 시설에 대한 이해를 갖추니까 현장에 가면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지하의 경우엔 불보다는 연기가 많다. 발화점만 잡으면 수 천 만원 피해를 수 십 만원으로 줄일 수도 있다. 흔히 소방관들은 무조건 불만 끄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진압과정에서 재산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까지 세심하게 살핀다.

언젠가 수 천 평되는 면적의 지하건물에서 큰 불이 난적이 있다. 랜턴을 비춰도 1미터 앞이 겨우 보일까. 150미터를 내려가는데, “여기서 인천거리”같이 느껴졌다. 30분짜리 산소통을 천천히 숨을 쉬어 45분까지 늘여 썼다.

긴박감 속에 심장박동은 거세지지만 가라앉혀야 한다. 냉정해야 한다. 발화점을 못 찾고 산소 때문에 철수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장갑을 벗었다. 손을 휘저으며 감각으로 불꽃을 찾았다. 바닥의 재가 보였다. 40여 분만에 발화점을 찾아 진압했다.

단점도 선하게 쓰신다

그가 처음부터 이런 투철한 소명의식으로 소방관의 업무를 시작한 건 아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결혼한 후 형이 있는 호주로 가려고 모든 준비를 끝냈다. 그런데 갑자기 호주법이 바뀌었다. 깊은 좌절에 빠졌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갑자기 호주를 가려던 계획이 무산되자, 마음도 낙심되었지만 당장 먹고 살 수 없었어요. 라면 먹을 돈은커녕 아이 분윳값도 없었습니다. 하늘 밖에 쳐다볼 데가 없더라고요. 아내도 늘 울고 있고, 저도 그렇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과정이 감사합니다.”

다른 진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소방관 시험을 봤다. 격일제 근무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쉬는 날 다른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 않았다. 3-4년 방황하는 나날이 계속됐다.

“생과 사를 오가는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신앙이 오히려 깊어졌습니다. 화재 현장에 있으면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방관이 제 천직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선 우리의 약점과 단점까지도 선하게 쓰시는 것 같아요. 청년시절엔 제가 좀 거칠게 살았거든요.”

일제시대 때 조선 국가대표 역도선수를 지냈던 아버지의 힘을 물려받은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6학년 형도 못 드는 역기를 번쩍번쩍 들어올렸다. 100미터를 11초에 주파했고, 턱걸이를 하면 배꼽까지 올라갈 정도로 힘이 넘쳤다. 한 펀치가 있어서(?) 그의 어머니는 늘 아들이 '별'이라도 달까봐 노심초사하며 지냈다.

“군대에서 특전사 팀장으로 있을 땐 온 몸이 성한 데가 없었어요. 제가 좀 과격하고 승부욕이 강했습니다. 그런데요, 하나님께선 저의 그런 못된 기질까지 선하게 사용하시더라고요. 소방관으로서 화재를 진압하는데 그 적극적인 기질을 쓰시는 것을 보고 감사하죠.”

강한 기질 때문에 후배 직원들이 좀 힘들 수 있다고 그는 미안해하기도 한다. ‘저 사람은 시작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에 동료들이 어려울 수도 있단다. 중요하지 않는 문제는 쉽게 넘어갈 수 있지만 소방관으로서 인명구조와 관련된 안전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

▲ 화재진압 후 이완승 대장(왼쪽)과 여기대 소방사.

신앙이 지켜주는 인생

“교회는 어렸을 때 이모 손을 잡고 처음 나갔습니다. 순복음교회가 서대문 영천에 있을 때 전철 타고 다녔던 추억도 있고요. 하나님이 천국도 보여주셨습니다. 고등학교 때에는 성령체험도 했고요. 교회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젊은 시절에 방황도 많이 했다. 제 멋에 살았다. 그러나 교회는 결코 떠나지 않았다. 그는 그 믿음생활이 지금까지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고 감사해한다. 용인에 살 때에는 죽전 아파트가 당첨이 된 적이 있었다. 이미 집이 있었던 이들 부부는 하나님 앞에서 이 축복의 의미를 물었다.

“그때 마침 제가 다니던 교회가 교회를 지어야할 상황이었는데 워낙 작은 교회라 아무도 할 수 있는 분이 없었어요. 이걸 팔아야 교회를 지을 수 있겠다는 마음을 하나님이 주시더라고요. 또 이미 집이 있었고요. 그래서 정말 망설임이 없이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이 일로 경제적으로는 좀 손해를 봤지만 더 큰 복을 받았다고 그는 믿는다. 온 가족이 함께 교회를 나가며 하나님을 잘 믿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복이다. 유일한 소망이 있다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싶은 것 뿐.

“먼저 하나님과 가까워지니까 가정 문제, 직장 문제 다 해결되더라고요. 죄송한 건 저희 소방관들은 주일날에도 근무할 때가 있어서 주일성수를 못하니까 그게 좀 죄송하죠. 그러나 주일성수하는 마음으로 일을 합니다.”

암흑 속에서 불꽃이 튄다. 건물이 무너지고 독가스가 자욱하다. 기도가 저절로 나온다. 소방관의 기도다. 동료가 산소통을 교체하러 나갈 때엔 혼자 어둠 속에 남겨진다. 무겁고 두려운 고독이 음습한다. 그때 하나님을 느낀다. 마음 속에서 성경 구절들이 떠오른다. 마음이 평안해진다. 그는 다시 전진한다.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사 43:1~2).

▲ 겨울철에 잦은 화재 속에서 시민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광진소방서 대원들이 함께 했다. 이완승 진압대장(사진 가운데)은 항상 자신을 믿고 따라주며 최선을 다하는 팀원들이 자랑스럽다. 위험이 늘 도사리는 화재현장에서 ‘소방관의 기도’는 늘 절실할 수 밖에 없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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