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의 의도하지 않은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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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의 의도하지 않은 거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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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1.1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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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돈 교수 /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얼마 전 라디오를 통해서 설교를 듣는데 거북한 이야기가 들렸다. 설교는 요한복음을 본문으로 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제자들을 찾아온 이야기였다. 설교는 예수님이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질문에 베드로가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하고 대답하는 장면이다.


설교는 이 부분에서 성경이 쓰여 있는 그리스어를 가지고 단어 풀이를 진행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질문을 하시는데 사랑이라는 단어를 아가페로 이야기하고 계시다는 것이다. 이를 동사로 ‘아가파스’라고 묻는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아가페로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필리오’, 즉 ‘필로’라는 동사로 대답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설교자는 한국말로는 아가페나 필리오나 모두 사랑이라는 단어로 번역이 되지만 그리스어에서는 구분이 된다는 것이다. 아가페는 신적인 수준의 사랑을 의미한다고, 그것은 조건 없는 사랑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리고 필리오는 좋아한다는 수준의, 인간적인 사랑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아가페의 사랑을 요구했는데 베드로는 끝내 필리오의 사랑을 대답한 것이고, 끝내 예수님도 포기하고 그래 네가 필리오의 사랑이라도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가페의 사랑으로 예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감동적인 설교였다.


아마 교회를 좀 오래 다녔던 분들은 이러한 설교를 한 번 쯤은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설교자의 입장에서도 이 본문을 가지고 이렇게 설교했던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지극히 자의적인 해석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예수님과 베드로는 그리스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히브리인으로, 그 당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아람어를 사용하였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베드로는 설교에서 분석하고 있는 바와 같이 아가페와 필리오를 가지고 그렇게 중의적으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을 것이다. 굳이 이렇게 아가페와 필리오를 가지고 뜻을 나누고자 한다면 그것은 예수님과 베드로의 심리적인 갈등이나 중의적인 깊은 대화가 아니라 이 요한복음의 저자인 요한의 입장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즉, 아람어의 대화를 그리스어로 옮기며 요한 사도가 그러한 의미를 첨가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설교자는 잘 못된 지식을 기반으로, 또는 잘 못된 성경 해석을 기반으로 설교를 한 것이다. 나는 이것을 설교자의 의도하지 않은 거짓이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알면서도 하는 거짓말이 아니라 설교자의 부주의 내지는 무지로 인해서 생긴 거짓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설교자의 이야기를 무한 신뢰한다. 그것도 강대상에서 선포되어지는 이야기라면 그것은 성도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다.


실제적으로 성도들과 이야기해 보면 ‘우리 목사님이 그러시는데’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펼치는 경우를 본다. 심지어 의견 충돌이 일어나면 ‘우리 목사님이 그랬어’라고 자신의 주장에 근거를 내밀기도 한다. 마치 우리가 신문에 난 것이라면 무조건 진실이고 사실이라고 믿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거짓된 것을 전했다면 우리는 설교자로서 커다란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설교 중에 나타나는 ‘의도하지 않은 거짓’은 단지 성경에서 그치지 않는다. 설교자가 설교 중에 자주 언급하는 시사적인 문제들이나 상식적인 문제들도 마찬가지이다. 설교자의 주관적인 입장에서, 죄송한 표현이지만 새벽기도를 하다가 갑자기 떠오른 계시(?)를 기준으로 마음대로 이야기한다면 ‘의도하지 않은 거짓’을 피할 방법이 없다. 특히 예언하듯이 내어 놓는 진단들은 일반적인 상식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경우들이 많다.


일이 이렇게 되다 보면 성도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말도 안 되는 목사님의 이야기에 실망하여 설교에서 귀를 닫는 것이다. 둘째는 그래도 목사님의 이야기인데 싶어서 그 때부터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여 주변에 이야기를 전하고, 결국 왕따가 되는 것이다.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를 받아들이는 성도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자신의 설교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설교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조심해야 할 것이다. 자신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이 되고, 주의 진리가 거짓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할 것이다. 이를 위해 설교자는 더욱 성실히 본문을 살피고, 신문을 살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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