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에서 감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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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에서 감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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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1.07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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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호 목사(춘천동부교회)

사업을 하는 분들은 이맘때가 가장 분주합니다. 매상의 많은 부분을 이때에 올려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가 되었는데 매상에 변화가 없어 마음이 무거워 지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교회도 이 시기가 1년 중 가장 분주한 시기입니다. 어느 교회든지 목회자들이 가장 잠 못 자고 힘들어 할 때입니다. 이렇게 분주하다 보면 사람들이 이 시기를 특별한 의미 없이 그저 하나의 행사로 여겨 4주는 강림절이고 그 다음은 성탄절 그리고 송구영신예배로 흘러 보내기 쉽습니다.
우리는 1월 1일부터 새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력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새해가 시작된 것입니다. 언제부터냐고요? 바로, 강림절부터입니다. 강림절이 무엇입니까? 기다림입니다. 사실 신앙이 그렇지 않습니까? 기다림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의 한 해는 기다림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한해의 끝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감사로 마치게 됩니다. 우리의 지난 모든 생애를 생각해 봅시다. 얼마나 많은 것을 기다렸습니까? 학교에 자녀가 입학하는 것, 대학에 가는 것, 직장에 취직하는 것, 결혼하는 것……. 그리고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생입니다.


구약의 내용을 보세요. 곧 오소서 임마누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다림입니다. 구약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오실 메시야”입니다. 신약에 오면 어떤가요?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메시야”입니다. 성서도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기다림이 쉬운가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의 집에서는 누군가를 기다릴 때 꼭 저에게 머리를 긁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앞을 긁으면 빨리 온다하시고 뒤를 긁으면 아직 많이 기다려야 한다고들 하셨습니다. 이는 휴대폰도 없던 시절 기다림이 힘들었기에 무엇이든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선조들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메시야를 기다린 자들로 성서에는 목자들과 여인들이 나옵니다. 당시 목자들은 남의 양을 훔치는 일이 많아 당시 사회에서는 신뢰할 수 없는 인물로 낙인 찍혀 법정에서 증인의 자격도 주어지지 않던 하류 계층의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메시야를 기다리던 여인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연세가 드신 과부 안나가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소외된 자들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린 사람은 모두 소외된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누가의 의도는 복음이 이방인들, 즉 사회의 천대받는 자들에게 복음이 들어가도록 기록한 것입니다. 탄생의 장소도 짐승의 집입니다. 이들에게는 예수의 오심만이 희망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유대계 정신분석학자 빅터 플랭크리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음을 넘나들었던 시간들을 기억하면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한 인간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지만 한 가지 자유는 빼앗을 수 없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삶에 대한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아 갈 수는 없다.” 그는 매일 가스실에 불려가는 동료들을 보면서 언제 자기 차례가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깨진 유리 조각으로 면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은 얼굴에 상처가 나더라도 삶의 희망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희망을 기다린 것입니다. 희망을 기다릴 때 결국 죽음의 공포에서 이길 수 있었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에 감사가 나옵니다.


그래서 기다림으로 시작한 한해의 마지막은 감사로 끝이 납니다. 생각해 보면 경제적인 어려움, 부부 간의 갈등, 자녀들과의 관계, 사람과의 상처, 불신, 보이지 않는 많은 스트레스 때문에 감사의 제목이나 감사 조건을 잊고 살아온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매년 감사절을 맞이하면 감사의 한 해를 살게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곤 합니다. 감사조건이 많아서 감사하고, 감사의 제목들이 많아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감사를 선택하는 자유를 누린다면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빅터 플랭크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던 목자들도, 여인들도 절망을 뛰어넘어 희망을 선택하며 감사한 일을 기다린 것입니다. 이 선택은 누구도 방해할 수 없습니다. 수없이 많은 기다림에서 그렇게 감사로 마쳐지시는 우리의 인생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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