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의 교회가 어두운 세상 밝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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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의 교회가 어두운 세상 밝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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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1.0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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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화 목사(경동교회)

교회는 세계를 위한 ‘영적, 정신적 목회자’로서 존재한다고 본다. 이것이 교회의 세상을 한 ‘제사장적’ 직분이라 할 것이다. 오늘날 세상이 거꾸로 교회를 염려한다는 현실에서 보면, 교회의 세계 내적 존재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는 증거이고, 불필요하기에 밖에 버려져 밟혀버릴 수 있음을 뜻한다. 세상의 요구는 교회가 시대의 정신으로, 세계의 혼으로, 인간사회의 영혼으로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라 본다.


이것을 소자는 세계의 알맹이인 평화의 실체라고 보며, 세상의 소금으로 자처하는 한 교회의 평화사역은 권력, 부, 폭력, 전쟁과 지배가 아닌 십자가 사랑의 헌신과 섬김을 바탕으로 하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른 주님의 평화”(요14:27)의 사명이라 생각한다. 즉 ‘그리스도의 평화’(엡2:14)를 구현하는 교회의 사명이라 본다.


‘소금’의 또 다른 기능은 세상을 썩지 않게 하는 기능일 것이다. 이는 사회를 부패하지 않게 감시하며, 비판하며, 변혁하게 하는 ‘예언자적’ 직분이라 할 것이다. 이것은 바로 소금된 교회가 해야 할 ‘정의’의 대변자로서 부름 받은 사명을 뜻한다. 이 땅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아5:24) 해야 한다. 교회는 세상을 썩지 않게 하려면 먼저 교회 자신이 정의의 공동체로 변화해야 한다. 그리고 정의의 대변자로 그 예언자적 소임을 다해야 한다. 또한 교회가 ‘빛’으로 부름 받은 것은 먼저 ‘어둠을 밝히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절망 속의 어둠을 희망의 빛이 몰아낸다. 무지의 어둠을 지혜의 빛이 비추어 앎을 준다. 질명의 어둠을 치유의 빛이 고친다. 교회가 빛의 공동체인 것은 축복이요 과제이다. 교회는 스스로의 광채를 발하는 빛이 없다. 달과 별이 모두 태양이라는 빛을 반사하는 ‘반사 빛’이듯이, 교회는 세상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창조의 빛을 이어받아 세상에 구원을 선포하는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하는 ‘반사 빛’일 뿐이다. 기억해야 한다. “교회가 있는 곳에 그리스도가 계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계신 곳 마다 교회가 있다”(Ubi Christos, Ibi Ecclesia)는 신앙고백 말이다.


‘소금’이 주님의 십자가에 나타나는 사랑과 구원의 표현이라고 한다면, ‘빛’으로 부름 받은 교회는 주님의 ‘부활’의 영광과 부활의 광채를 스스로 힘입으라는 말로 이해하고 싶다. 주님의 십자가를 선포하고 십자가의 복음대로 살아가는 자는 항상 자신에게 지워진 작은 십자가를 지고 살듯이(막8:35), 빛으로 부름 받은 자는 항상 부활의 증인(행1:8)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됨의 존재양식 곧 “Being Church”의 모습이라고 믿는다.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위대한 과거를 지니고 살아왔다. 한국경제의 급성장에 맞추어 세계 유례가 없는 압축된 양적 성장을 이룩했다. 하지만 오늘날 그 결과는 참담하다. 십자가 아래에서 신음하는 세상이 십자가 혼을 망각하고 물량에 취한 교회를 대담히 염려하고 있고, 동시에 십자가를 팽개친 교회를 떠나고 있다. 해마다 교인 수가 줄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의 무관심과 비토 현상은 심각하다. 미래가 어둡다.


하물며 교회의 ‘빛’ 됨을 도대체 누가 인정하고 따라올 수 있을까 하고 서글픈 자책의 질문이 교회 내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다. 십자가를 멀리하면 부활은 그 만큼 멀다. 부활은 십자가에서 잉태되었고, 십자가는 부활을 낳았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이제는 십자가 아래 다시 모여야 한다. 십자가의 교회로 탈바꿈해야 한다. 그 후에 부활의 촛불을 들어야 한다. 세상은 십자가 없는 교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부활 희망이 안 보이는 십자가도 세상을 끌어드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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