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달라도 "새해도 소원은 통일"
상태바
이유는 달라도 "새해도 소원은 통일"
  • 손동준 기자
  • 승인 2015.01.07 14: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통일의 꿈 자라는 두리하나 국제학교

연초부터 광복 70년이니, 분단 70년이니 하는 말들이 연일 매스컴을 타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 거론되는가 하면 한국교회도 새해 첫날 임진각에서 평화통일기도회를 여는 등 올 한해 ‘남북 통일’은 한반도의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그런데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꼭 통일을 해야 한다’는 응답은 절반을 겨우 넘어서는 수준이다. 이슈와 여론 사이에 적지 않은 온도차가 있는 것.

지금 이 순간 통일을 누구보다 열망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탈북민들이다. 특히 북에서 온 아이들은 자신들이 통일의 주역이 되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새해를 맞고 있다. 통일의 푸른 꿈이 영글고 있는 두리하나 국제학교에서 탈북민 아이들을 만나봤다.

“북한의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싶어요”

11살 광혁이와 8살 광명이(가명)는 함경북도 회령 출신의 형제다. 또래의 남한 아이들보다 한 뼘은 작은 키의 두 아이는 지난해 아버지와 함께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형 광혁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형제가 살던 회령은 “차는 두세 대 밖에 없지만 기찻길 넘어 사람이 ‘대박’ 많고, 겨울이면 강이 얼어 중국을 마음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곳”이란다. 중국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아버지 덕에 “고기는 못 먹어도 굶지는 않았다”는 두 형제.

“엄마는 지금은 천국에 있다”고 말하는 동생의 손을 형은 말없이 꼭 잡는다. 올해 소원이 뭐냐는 질문에 두 아이는 “올해는 꼭 아빠와 함께 살고 싶다”며 수줍은 소원을 꺼내놓는다.

영하의 추운 날씨 속에서도 새로 선물 받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며 밝게 웃는 두 아이. 지금도 북에 있는 친구들이 몹시도 그립다며 꼭 올해는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 두리하나 국제학교 학생들이 문화 체험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수용소에 있는 부모님, 꼭 데리러 갈께요”

열다섯 살 원석(가명)이는 열 두살이던 2012년 북한을 떠났다. 양강도에 살던 원석이의 부모는 먹고 살 길이 어려워지자 자녀들을 먼저 탈출시키기로 했다. 6살 위의 형이 먼저 떠났고, 한 달 뒤 원석이도 강을 건너 중국과 태국을 지나 남한에 들어왔다. 하지만 남겨진 아버지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는 탈출에 실패했다. 남한의 친척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남은 가족들은 현재 정치범 수용소에 있다고 한다.

가족을 두고 남한에 온지 벌써 3년. 원석이는 명절이면 형이 사는 경기도로 가 형과 함께 밥을 먹고 돌아온다. 새해를 맞은 요즘 원석이는 마음속에서 가족들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원석이의 올해 소원은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오는 4월에 있는 중졸 검정고시를 먼저 통과해야 하지만 수학을 잘 못해 고민이라고 한다. 원석이는 시간이 나면 위인전을 읽는다. 특히 베토벤을 좋아해 벌써 여러 번 읽었다고 한다.

“귀가 안 들리지만 끝까지 노력해 훌륭한 음악을 만들어 낸 베토벤처럼 저도 어려움을 딛고 열심히 공부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그래서 꼭 부모님을 데리러 북한에 갈 겁니다. 그 전에 통일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 두리하나 국제학교 학생들이 춤을 배우고 있다.

“꿈보다 통일이 먼저”

황해도에서 온 23살 송수향 씨는 올해 대입 수능 시험을 준비 중이다. 남한의 또래들은 대학교 4학년이 되는 나이지만, 송 씨의 경우 6년 전 한국에 들어와 초등학교 과정부터 다시 시작하려다보니 이정도 늦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송 씨의 꿈은 디자이너가 되는 것. 때문에 입시를 위해서는 실기준비까지 해야만 했고, 지난 2년간 미술학원을 다니며 실기를 준비했지만 입시에서 번번이 좌절을 맛봐야했다.

올해부터는 디자이너에 대한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현실적으로 입학이 가능한 전공으로 목표를 수정했다.

“남한에 와서 가장 힘들었던 건 공부에요. 처음에는 그럭저럭 할 만했는데 중고등학교 수준으로 올라갈수록 힘들더라고요. 실기는 더해요. 남한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준비해왔기 때문에 저랑 비교하면 격차가 정말 크다는 걸 여실히 느끼죠. 꼭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저는 통일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러려면 돌아갈 줄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올해는 일단 대학에 들어가는 게 목표에요.”

5살 때 부모를 여의고 혈혈단신으로 북한을 나온 그녀는 중국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내가 왜 살아야 하나’ 시시때때로 고민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매일 새벽기도를 하며 자신을 여기까지 인도한 하나님께서 커다란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밝견했다고 한다. 한 번도 엄마의 사랑을 느껴보지 못한 것이 가장 서럽다고 말하는 그녀. 하루빨리 통일이 되서 엄마와 함께 있던 고향 땅을 꼭 한번 다시 밟아보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올해는 좀 더 자연스러워지고 싶어요”

한편 두리하나 국제학교에는 북한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탈북자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중국에 살다 한국으로 온 탈북민 2세들도 적지 않다. 탈북민 2세인 16살 소녀 정화(가명)의 기숙사에는 아이돌 가수 EXO의 사진이 가득하다. 탈북민인 엄마와 조선족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정화는 불과 얼마 전까지 엄마가 북한에서 왔다는 사실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중국 산둥에 살 때, 같이 살던 삼촌이 ‘너희 엄마는 북한사람’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지만 믿지 않았죠. 엄마는 북한에 대해 전혀 얘기해 주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지난 열다섯 살 생일날 ‘이제는 너도 알 때가 됐다’면서 말해주셨어요. 처음에는 많이 놀랐지만 이제는 받아들이고 있죠.” 한국에 오기 전까지 중국어를 모국어로 써왔기 때문에 우리말은 아직 어눌하다. 최근에는 정화처럼 탈북자인 엄마를 따라 한국에 온 2세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 이들은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우리말과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한다.

정화의 꿈은 외교관이다. 외교관이 되면 여러 나라를 다니며 남과 북이 가까워지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정화는 한 번도 못 가본 북한이지만 남과 북이 하나 될 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도,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좀 더 자연스러워 질 거라고 믿는다.

“한국에서 제일 어려운 것은 인간관계에요. 중국에서는 중국인 친구가 많았는데, 한국에 와서는 한국인 친구를 아직 한 명도 못 사귀었어요. 올해는 한국 사람으로서 좀 더 자연스러워 지면 좋겠어요.”

외로움 치료하는 사랑 필요

두리하나 국제학교 교장 천기원 목사는 탈북민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바로 ‘외로움’이라고 꼽았다. 이질감의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되지만 그리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진다는 것. 천 목사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향하는 사랑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90년대 중 후반 탈북민들이 처음 왔을때는 한국사회가 이들에 대한 일종의 환상과 신기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들과 부딪혀보니 이질감을 생각보다 컸던 겁니다. 물론 이들이 우리 기준에서는 거칠기도 하고, 거짓말을 잘하고, 질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국경을 넘어오면서 부인이 남편과 자녀 보는 앞에서 팔려가거나, 어린 나이에 중국 남자에게 팔려가 아이를 빼앗기고 쫓겨 오는 등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으로 이들을 안아주지 않으면 둘 사이의 거리는 좁혀질 수 없습니다.”

천 목사는 분단 70년인 올해 교회에서도 ‘통일’의 목소리가 높지만 지금 이대로 통일이 된다면 오히려 큰 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북한은 물론 북한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 그는 “이미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탈북민들과 접점을 확대해나가는 것은 통일을 위한 연습”이라며 “특히 지금 자라나는 탈북민 아이들은 통일의 주역인 만큼 한국교회가 기다려주고 품어준다면 통일이 한걸음 더 가까워 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두리하나 국제학교에는 현재 100여 명의 아이들이 공부와 공동체 생활을 함께하고 있다. 올해로 문을 연지 만 6년째를 맞은 두리하나 국제학교는 매일 열리는 새벽기도와 일주일에 3번 진행되는 예배를 통해 공부보다는 아이들의 영혼을 먼저 치유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