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소설] 이명도 멈추게 한 강도사님의 기도 … “내 귀가 호강했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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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소설] 이명도 멈추게 한 강도사님의 기도 … “내 귀가 호강했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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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2.31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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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실 작가의 신년 소설 “해피 뉴 이어”

벌써 한 달 째다. 귓속에서 자꾸 소리가 들린다. 위이잉… 윙…. ‘이명증인가?’ 피로감에 오는 현상으로 여기며 며칠을 보냈다. ‘괜찮겠지.’

연말이면 늘 정신없는 작업으로 녹초가 되지 않는가. 말 그대로 녹초! 녹은 초, 녹아들어가는 초. 그래서 심지마저 꺼져버리듯 허물어지는 몸!

택배기사인 내게 성탄절과 연말연시인 이 기간은 그야말로 죽음이다. 아직 전쟁이란 걸 겪어보진 못 했지만, 밥 먹을 틈 없고, 잠 못 자고, 이리저리 도망다니듯 숨 쉴 틈 없이 메뚜기처럼 좌우상하, 골목골목으로 뛰어다니고, 무전기로 통신하듯 고객들에게 계속 휴대폰 통화하고, 비밀교신하듯 연신 문자 날리고…. 이런 게 영화에서 본 전쟁터와 다를 바가 뭐랴! 총? 폭탄? 비유하자면 고객들의 갖가지 불평불만의 소리가 총이요, 꽉꽉 숨 막히도록 뚫리지 않는 도로가 폭탄이나 마찬가지다.

위이이잉…. 위잉…. 그런데 이 와중에 이명증이 더 심해지다니! 종일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 다녀서 그런가 하고 빼버리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으으으으…. 내 귀들아! 얌전히 좀 있어라!’ 나는 양쪽 귀에게 하소연을 할 정도였지만 병원이나 약국에 갈 시간을 낼 수 없었다.

“태석아!”

나는 운전하는 차 안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내 증세를 얘기하며 혹시나 하고 치료법을 물었다. 별명이 말폭탄인 태석이답게 단 일 초도 틈 없이 말이 쏟아져 나왔다.

“얌마! 내 전문이 자동차지 사람이냐? 너도 참 안 됐다. 그런 거 물어 볼 사람이 없어서 카센터로 전활 하냐? 가만있어 봐라. 민간요법의 대가이신 울 엄마한테 물어보고 알려줄게. 우리 어릴 때, 울 엄마랑 너의 엄마가 우리들 사고치고 깨지면 온갖 민간요법으로 낫게 해줬잖아. 그나저나 대한민국 택배가 이 나라 운명을 짊어졌냐? 어째 군인이나 대통령보다 더 바쁘냐? 병원 갈 시간도 없게?”

고향 친구인 나의 죽마고우, 태석이는 정확히 내가 한 집을 방문하고 난 뒤에 전화를 주었다.

“울 엄마가 그러시는데 그거 허해서 생긴 병, 아니 증세래. 잘 먹고 잘 자면 아무 소리도 안 난대. 이건 내 말이지만 슈퍼모델이 와서 속삭여도 안 들릴 정도가 된 대. 힛힛…. 우하하하하….”

친구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다음 말을 전혀 잇지 못하고 웃음소리만 퍼부었다. 내 두 귀에 선풍기가 고속 단계에서 윙윙 세차게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그만해라. 병 주고 약 주냐? 알았다. 어머님께 고맙다고 전해줘. 그런데 우린 언제 만나냐? 올해 가기 전에 짠! 해야지?”

“나는 오른 손바닥으로 오른쪽 귀를 힘주어 누르며 물었다.

“신년에 만나자. 우리 식구랑 처가댁이랑 모두 제주도 여행가기로 했거든.”

“캬아, 좋다! 사는 것 같이 사는구나! 그래도 너보담 내가 훨 행복한 연말을 보낼 것 같은데?”

나는 일부러 명랑 백배의 목소리로 말했다.

“왜? 너 여자 생겼어? 그래서 푸켓이나 싸이판이라도 가는 거야?”

“빙고!”

“야! 장진구! 뭐야? 뭐야? 대박! 대박! 어떤 여자야? 이뻐? 이뻐? 이쁘냐구?”

일산 카센터에 있는 친구는 단번에 전화기를 뚫고 나와서 서울 합정동을 달리고 있는 내 자동차 안으로 올라타고는 고함을 질러대는 것 같았다.

“나중에 말해줄게. 끊자. 나 지금 배달가야 해. 친구야, 안…뇽!”

나는 한껏 여유 넘치는 목소리를 냈다. ‘여자? 이뻐? 나도 남자지만 그저 남자란 동물은 에그….’ 나는 좌회전 신호를 놓치지 않으려고 재빨리 핸들을 돌렸다.

내 나이, 이제 새해가 되어 마흔이다. 하지만 손에 쥔 건 없다. 사십 년 인생동안 특별하게 한 거라곤 학교 다니고, 군대 제대로 마치고, 회사같은 회사에 세 번 다닌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말 그대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 것이라곤 군대생활한 게 전부이며, ‘가정과 가족을 위해’ 한 것은 부모 속 별로 안 끓이고 학교생활한 거랑 그동안 월급 바친 것뿐이다. 그리고 ‘나를 위해’ 한 것은 친구들과 동업하여 컴퓨터 게임회사를 차린 것이다. 하지만 일 년도 안 되어서 ‘나’ 뿐만 아니라 우리 온 가족을 힘들게 하고 만 꼴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나라와 민족이나 가족과 가정은커녕 내 한 몸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한 채 사십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증까지 생겼으니…. 그래도 두 눈은 멀쩡한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한 달 전에 황씨 아저씨는 송장에 적힌 주소를 잘못 본 바람에 대형사고를 낼 뻔 했잖은가! ‘참, 이상하네…. 어제까지만 해도 개미 목젖까지 다 보였는데…. 하루아침에 시력이 바닥이라니! 이게 다 술 때문이야. 술 좀 줄이든 해야지.’ 황씨 아저씨는 일부러 목소리를 크게 내며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퇴근했었다. 그때 누군가 아저씨의 등에 대고 소리쳤다. ‘술 핑계 대지마! 아닌 건 아니야! 이젠 너도 다 됐어. 할배들 하는 택배회사로 가!’ 무슨 일인지,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사사건건 아저씨와 어긋나는 조씨 아저씨였다.

다른 때 같으면 ‘이 자식이!’ 하며 달려들 황씨 아저씨인데 그날은 싸움에 끼어들지 않으려는 착한 학생처럼 앞만 보며 총총 퇴근했었다. 하지만 결국 며칠 만에 스스로 사직서를 내지 않았던가!

‘안 돼! 난 안 돼!’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래. 태석이 엄마 말처럼 속이 허해서 그런 걸 거야. 아침은 바나나 우유 하나로 때우고, 점심은 거의 라면, 그리고 저녁은 대충 국밥으로 때우는 몸이 견디겠어? 몸무게도 줄었잖아!’ 나는 오늘 저녁에는 기필코 삼겹살을 잔뜩 사서 곧 집에 가리라 마음먹었다. ‘지글지글 구워서 배가 터지게 먹어보자! 그럼 이명증도 싸악 사라지겠지. 그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야! 허한 데는 삼겹살 기름이 최고일 거야!’

일을 마치자마자 나는 “내일 봅시다!”라고 외치며 사무실을 나서려했다. 그러자 동료들이 가로 막았다. 

“새핸데 기념으로 한 잔 해야지!”

“새해 첫 잔 거부하면 일 년 내내 재수 없을 걸!”

“독거남이 뭐가 좋다고 맨 정신으로 집에 가는 거야?

나는 온갖 유혹과 협박을 물리치고 집으로 향했다. 성탄절에도 12월 31일에도 즐기지 못했던 나 홀로의 삼겹살 파티를 위해! 내 귀의 평화를 위해!

나는 집 건너편에 새로 생긴 대형마트로 갔다. 9시가 다 되어가지만 마트 안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돼지 삼겹살 한 근, 아니 두 근  주세요!”

나는 호기롭게 외쳤다. 도대체 얼마 만에 주문해보는 말인가! 날마다 고객들의 ‘빨리 갖다 줘요!’ ‘12시까지 오세요!’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 세탁소에 맡겨줘요!’ ‘A쇼핑몰 택배랑 같이 안 오나요?’ ‘배송비는 경비실에 맡겨 놨으니까 찾아가세요!’ ‘왜 이제야 배달하는 거죠? 어제 왔어야죠!’ ‘누가 보낸 거라고요? 안 받아요. 도로 보내줘요!’ 이 정도는 양반이다. 소위 ‘진상’ 사례를 말하자면 끝도 없다. 하지만 오늘은 삼겹살 파티이자 내 두 귀의 힐링을 위한 날이니 참아야지. 그만 둬야지.

나는 묵직하지도 가볍지도 않은 고기를 들고 마트를 빠져나왔다.

“으으, 추워라! 으으으으…. 이 놈의 소리….”

연말에는 제법 따뜻했는데 새해부터 한파가 몰아치는 듯 했다. 정신차리라고 하나님이 보낸 선물인가? 하지만 나같은 사람들, 그리고 대리기사나 노숙자들에겐 선물이 아니라 저주야! 그리고 이놈의 이명증! 추워서 그런가? 추위 속에서 귀가 울리니까 더 춥네. 스산하다, 스산해!

나는 목을 자라처럼 집어넣고 종종 뛰었다. 가로등이나 상가들의 불빛이 없다면 칠흑같은 어둠일 거다. ‘그래서 옛날에는 귀신이나 도깨비 이야기가 그렇게 많았나보구나. 옛날 사람들은 얼마나 살기 힘들었을까?’ 삼겹살 때문에 넉넉해진 나는 별 걱정을 다하며 집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장진구 형제님!”

귀에 익은 목소리에 두 발이 저절로 멈춰졌다. ‘작년에도 만나지 않은 전도사님을 왜 새해 벽두부터 만나는 거야?’ 그러면서도 나는 웃는 얼굴로 돌아섰다. 하지만 두 귀에서 지이이이잉…. 울리는 소리 때문에 저절로 얼굴이 찡그려졌다.

“퇴근하세요? 정말 오랜만입니다. 형제님, 새해에는 다시 교회에 나오셔야죠?”

“전도사님은 별고 없으시죠?”

“저는 이제 강도사가 되었어요.”

“아하…. 승진하신 거나 마찬가지네요. 하하하….”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한 손으로 두 귀를 번갈아 때렸다. ‘이 놈의 귀가 왜 더 울리기 시작하는 거야?’ 사실 더 울린 게 아니라 전도사, 아니 강도사님을 만나서 긴장이 된 탓이다.

“네, 맞아요. 하나님께서 저같은 사람도 승진시켜주셨네요. 그런데 어디 안 좋으세요?”

“아,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얼굴을 활짝 펴지 못했다.

“내일부터 새해 사경회가 있어요. 정말 잘 됐네요. 새벽에는 못 나오시더라도 저녁에 퇴근길에 잠시라도 들리세요. 제가 형제님을 생각하며 날마다 기도한다는 걸 모르시죠? 아마 그래서 주님이 오늘 만나게 해주신 것 같아요.”

강도사님은 어느 목회자라도 할 것 같은 뻔한 말로 나를 유혹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가 볼게요. 시간 되면 가지요.”

나는 얼른 이 자리를 피하려는 생각에 마음에도 없는 약속을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다시 한번 정말 강력하게 두 귀에서 우이잉…. 울림이 터졌다.

“윽….”

나는 그만 돼지고기가 든 봉지를 땅에 떨어뜨린 채 두 손으로 두 귀를 마구 눌러댔다.

“왜 그러세요?”

강도사님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어린 학생처럼 온순하게 대답했다.

“귀에서 소리가 나요…. 허해서 그렇대요….”

“잠깐, 잠깐만요…. ”

강도사님은 장갑을 벗어 외투 주머니에 급히 넣고는 자신의 두 손으로 내 두 귀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개의치 않은 채 기도하기 시작했다.

“이건 뭐야?”

나는 돼지고기 봉지를 집어들지도 못한 채, 두 귀를 잡힌 채 순한 양처럼 가만있어야 했다. 강도사님의 기도가 마쳐질 때까지….

“…아멘. 형제님. 저도 신학생 시절에 자주 이런 적이 있었어요. 병원에서 진찰 한번 받아보세요. 하지만 주님께서 분명 만져주실 겁니다. 형제님의 귀와 마음을. 그럼 다음 주에 교회에서 만나요.”

강도사님은 돌아섰다. 나는 잠시 멍하니 강도사님의 등을 바라보다가 달렸다. 돼지고기 봉지를 집어들고 달렸다.

“강도사님! 이거 새해 선물이요!”

빈손으로 돌아서 집으로 가는 길,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했다. “해피 뉴 이어!” 여기서 ‘이어’는 영어로 귀, ‘EAR’이다. 분명 내 두 귀가 평안해지고 행복해진 듯했다. 나 홀로 삼겹살파티는 못하게 됐지만 내 귀가 해피해졌는데 무슨 상관이람! 

▲ 노경실 작가한국일보,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소설과 동화 당선됨. 현재,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국립중앙도서관 소리책나눔터 부위원장.작품은 ‘상계동아이들’, ‘복실이네 가족사진’, ‘열네 살이 어때서’, ‘사춘기 맞짱뜨기’, ‘우리 아빠는 내 친구’, ‘철수는 철수다’, ‘짝꿍 바꿔주세요’ 등 많은 책을 펴내고, 활발한 번역작업을 하고 있음. 일산 벧엘교회 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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