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세계의 추함,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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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세계의 추함,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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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2.1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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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의 예술을 향하여 - 시어벨트(Seerveld)의 개혁주의 미학 (32)

 

▲ 안용준 목사

시어벨트 개혁주의 미학은 창조된 세계의 아름다움뿐만이 아니라 타락한 세계의 추함도 강조한다. 아담의 타락은 인간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전적으로 부패하고 무능력한 상태로 만들었으며 죄로 말미암아 지상적 영역인 창조계가 광범위하게 오염된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조된 세계의 아름다움을 타락시킨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시어벨트는 인간이 하나님을 배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에 의하면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은 “신은 죽었다”는 좋지 않은 소식을 들어왔다”고 한다. 이 말은 적어도 19세기 말 이래로 보이지 않는 영원한 질서의 세계를 추구한 모든 생각이 단죄되었음을 의미하고 있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인은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면서 그 운명을 바꾸어 나가는 전사가 된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가 스스로 회의주의와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강한 신념인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 사상을 제시한 것은 이러한 맥락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미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가 발견했던, ‘고통과 파멸의 세계’에 관한 설명은 놀라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세계는 끊임없이 자기를 보존하기 위해 서로 싸우고 불안에 떠는 비극의 무대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기독교는 신과 초월적 세계를 만들고 거기에 복종할 것을 가르치는 ‘노예도덕’의 종교로 평가되기 일쑤였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은 삶의 실질적인 목적이나 자신을 합리화시키려는 생각으로 하나님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안락한 자살’을 범하게 되었으며, 죄의 반대는 불타는 믿음이 아니라, 미덕이고 순수한 행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하나님과 교회는 서구 문명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갔다. 이런 와중에서 1934년에 평화주의자인,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기독교가 “그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단순히 악에 저항할 뿐이다. ‘시대의 정신’(Der Zeitgeist)을 외면한 채 자신의 길을 간다.”고 비탄해 한 사실에 시어벨트는 공감한다.

문화 예술을 포함한 이 세상은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이다. 때로는 우리의 마음에 어둡고, 모호하고, 절망적인 모퉁이 그리고 잊거나 회피하고 싶은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위와 같은 심각한 문제를 앞에 두고 신앙의 백성으로서 마음 아파하고, 울부짖으며 하나님께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가장 절망적인 흐느낌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바울이 아테네이 선교할 당시, 그는 무언가 신비롭고 새로운 학문과 철학 그리고 예술적 작업에 목말라하는 그리스인들을 발견했다. 오늘날 우리 한국에도 이 이상한 전통이 지속되고 있다. 정체성과 뿌리가 모호한 예술작품이 도처에서 양산되고 있다.

그래서 시어벨트는 크리스천이 소유할 만한 시대에 알맞은 예술적 감각을 고찰하기 위하여 세상에서 발견될 수 있는 여러 예술적 상황을 고려한다. 우선 창조와 타락의 모습에 항상 열려 있는 예술의 다양한 모습은 기독교세계관이 부여하는 의미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해 왔으며 어떠한 성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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