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산’, 시나이반도일까, 사우디아라비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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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 시나이반도일까, 사우디아라비아일까
  • 정하라 기자
  • 승인 2014.12.10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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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년 전, 출애굽의 비밀 그 발자취를 찾아서(1)

6년 동안 12차례의 탐험 ‘라오즈산’=시내산이라는 증거 확보
애굽 영토 내 이스라엘 백성의 40년간 방황 이해할 수 없는 가설
이스라엘 백성 출애굽 후 사우디아라비아 ‘미디안 땅’으로 도주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하나님의 성산(聖山)인 시내산. 구약 성경을 논함에 있어 시내산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3500년 전,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민족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처음으로 만났으며, 여호와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로 처음 언약을 맺은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경에서 이토록 큰 의미를 차지하는 ‘시내산’의 위치는 여전히 논쟁 중에 있다. 크게는 시내산이 이집트 시나이반도에 있다는 것과 사우디아라비아반도에 있다는 두 가지 주장이 오랜 가설로 존재해 왔다. 모세가 하나님을 대면해 십계명을 받고, 성막과 법궤를 완성한 거룩한 장소. 창조주가 머물렀던 곳인 만큼 시내산을 찾고자 하는 기독교 순례객들의 바람은 더욱 간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시내산의 위치는 여전히 베일에 둘러싸여 있다.

▲ 김승학 권사가 추정한 시내산 경로('떨기나무2' 수록)
#‘진짜’ 시내산 찾아 물음 지속

시내산이 시나이반도에 있다는 전재 아래 성지화 작업이 이뤄진 것은 AD 527년부터 시작됐다. 호렙산 또는 제벨무사(모세의 산)라고도 지칭되는 시내산에 대한 언급은 출애굽기, 민수기, 신명기에 나타난다. 특히 이중에서도 유일하게 시내산의 위치에 대한 거리상의 정보를 명확히 담고 있는 구절은 신명기 1장 2절이다. “호렙산에서 세일산을 지나 가데스 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더라” 이 구절은 출발지를 시내산으로 잡고 있어, 어느 방향으로 가는 지 알 수 없지만, 시내산에서 세일산까지 도보로 11일 걸리는 거리라는 것을 알려준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 지난 장소들에 대해 성서적, 지리적, 고고학적 근거를 들어 분명한 지명의 확인이 가능한 장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렇기에 오늘날 시내산 후보로 거론되는 여러 장소들 중 ‘성지’라는 사실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도 역시 부족하다.

현재 이집트 시나이반도 남단에 자리하고 있는 시내산이 기독교 성지로 전 세계인에게 알려져 있지만 많은 신학자들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북서쪽에 위치한 ‘라오즈산’이 진짜 시내산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국가적 보안 문제로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 그런데 최근 국내에서 라오즈산이 ‘진짜’ 시내산이 이라는 주장과 함께 다양한 사료적 증거를 담은 책이 출판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내산은 ‘라오즈산’? 주장 높아

사우디아라비아 왕실 주치의로 일하던 김승학 권사(오목천교회)는 시내산이 시나이반도가 아닌,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라오즈산’이라는 신학계의 오랜 가설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진짜’ 시내산을 찾는 일에 대한 막중한 사명감을 느낀 그는 예수님을 믿는 것만으로도 엄벌에 처해지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목숨을 걸고 6년 동안 12차례나 북부 아라비아를 탐험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두 권의 책으로 펴냈다(떨기나무1,2). 이슬람 국가의 정책상 지역적 특성에 대한 조사가 어려웠던 것을 감안하면 그가 얻은 고고학적 증거는 역대 최다라고 할 수 있다.

김승학 권사는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 당시 시나이반도는 분명히 애굽에 속한 지역이었다”며 “이집트 시나이반도 안에 시내산이 있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출애굽을 하지 못한 것이 되는데, 애굽 영토 안에서 2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애굽 병사들의 공격도 받지 않고 40년간 방황했다는 것은 성경적으로나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주장했다.

홍해에 대해서는 “홍해는 구약성경에서 갈대바다라고도 표기하지만, 이는 상징적 표현”이라며 “시나이반도에 시내산이 있다는 주장은 수에즈만의 홍해를 건넌 것이라고 보지만 성경에는 홍해를 건너갔다가 다시 건너와 시내산으로 가는 여정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도 제시했다. 김 권사는 “고센 지역에서 시나이반도를 가로질러 아라비아의 미디안 땅으로 가는 것이 모세가 가장 빨리 애굽 국경을 넘어 안전한 곳으로 도피하는 방법”이라며, 그 예로 현장 답사를 통한 이드로의 동굴, 호렙 우물, 미디안 제사장, 구유 등의 사료를 제시했다.

특히 ‘수르광야’는 시내산이 시내광야에 있는지 미디안광야에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첫 번째 기준이다. 출애굽기 15장 22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후 들어간 곳이기 때문.

김 권사는 “사우디아라비아 홍해 변에는 ‘수르’라는 족장이 이 땅을 소유하고 있어서 그 지역을 ‘수르 광야’라고 한다”며, “그는 미디안인이었고, 미디안인은 아라비아 반도에 위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 역시 사우디아라비아 사람이요, 미디안 땅에 살았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 미디안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려오라고 말씀하셨다는 것.

이밖에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말렉족과 전투를 벌였는데, 이 아말렉족은 미디안 광야 인근에 살던 아라비아인이라고도 주장했다. 그는 “이들이 어떻게 애굽 군사들이 진치고 있는 시나이반도에 들어와 이스라엘 백성들과 싸움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사도바울 역시 사도행전 7장 29절에서 모세가 미디안 땅으로 도주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시나이반도의 시내산은 급조된 성지?

한편 김승학 권사는 사나이반도의 시내산이 급조된 성지라고 비판했다. 그는 “당시 시나이반도는 이스라엘에 의해 1967년 침공 당하기까지는 외부인으로부터 침략이나 점령을 한 번도 당한 적이 없는 애굽 땅이었다. 또 시나이반도의 시내 산 아래에서는 이스라엘 백성 2~3백 명이 11개월 5개월 간 지내기에는 협소한 지역”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이집트에서 탈출하고자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이집트 영토인 그 곳으로 돌아가 11개월을 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 또 그는 “시나이반도를 고고학자와 지질학자들이 바둑판 쪼개듯 잘라가며 면밀히 뒤졌으나 광야생활 40년의 흔적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시나이반도의 시내산이 AD 527년 순례객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급조된 성지일 뿐이라는 것이 그의 관점이다. 김 권사는 “주후 5세기 이전에는 그 어느 기록이나 누구도 이것을 시내산이라 부르거나 기록한 적이 없다는 시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시나이반도의 시내산 앞은 온통 협곡으로 만 명이 앉을 광야가 없다는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김 권사는 “사나이 반도의 시내산 앞에는 250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앉은 만한 광야가 없다. 또 고센에서 시내산까지는 육로로도 올 수 있는 길로 굳이 홍해를 건널 필요가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 권사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실 한방주치의로 일하면서 사우디 국왕과 각부 장관을 비롯해 여러 왕자들을 치료했다. 16년 동안 메카 주지사(마지드 왕자) 주치의로 일했다. 그런 그가 숱한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현지를 답사해 방대한 자료를 얻으며, ‘라오즈산’이 진짜 시내산이라는 숱한 증거를 확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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