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을 ‘엄마’라 부르던 딸… 서울대 합격으로 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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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을 ‘엄마’라 부르던 딸… 서울대 합격으로 보은
  • 이성원 기자
  • 승인 2014.12.10 0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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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채꽃이 만발하는 들판에서 이수경 양이 승리의 브이를 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달려라 하니'처럼 믿음 안에서 당차게 꿈을 이루어 '두 엄마'의 자랑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딸이 됐다.

‘아름다운 모녀’ 천영자 권사와 이수경 양 이야기
추운 날씨에도 마음을 훈훈하게 덥히는 미담이 있다. 경남 함안군에 있는 명덕고 3학년 이수경 양과 함안여중 천영자 교사 이야기다. 지난 5일 발표된 이번 서울대학교 수시전형에서 이 양은 간호학과에 합격했다. 깜짝 놀랄 일이었다. 1951년에 개교된 이래 명덕고에서 서울대에 합격한 학생은 이 양이 처음이다. 학교에 경사가 난 건 말할 것도 없다.

“너는 내 딸 해야 겠다”
그 기쁜 날, 이 양의 마음에는 ‘두 엄마’가 떠올랐다. 한 분은 낳아주신 엄마, 한 분은 길러주신 엄마. 당장 전화할 수 있었던 길러주신 ‘엄마’ 천영자 선생님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이 사연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경북 경산에 살던 이 양의 어머니는 유방암으로 투병 중이었다. 결국 그해 겨울방학 때 친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홀로 남겨진 이 양은 친척이 사는 함안으로 오게 됐다. 함안여중에 친척의 손을 잡고 등교한 그날을 천영자 교사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제가 당시 교무부장이어서 전학 온 아이를 제일 먼저 만나게 되어 수경이를 처음 봤죠. 아이의 상황을 그 친척을 통해 듣다 보니, 너무 딱하고 안쓰러웠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 달도 안된 상황이었거든요. 갈 곳이 없어 함안에 있는 친척 집에 오게 된 건데, 그 친척 분도 사실 형편도 어려웠거든요. 수경이를 보자마자 ‘너는 내 딸 해야 겠다’라는 맘이 들었습니다. ‘보호해줘야 한다’는 마음이었죠.”

하나님이 주신 귀한 마음이었다. 그 전부터 마산유로교회(담임목사: 이영진) 권사인 천 교사는 혹시 이런 일이 생기면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이 양을 바라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가 많아졌다. 학교생활을 상담해주고 집에도 데려가 남편과 아이들에게 인사도 시켰다.

가족 사랑으로 성적 ‘쑥쑥’
“어려운 상황이 오면 언제든지 도움을 주고 싶다”는 선생님의 말을 기억한 이 양은 중3 후반기에 천 교사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됐다. 어려움은 크게 없었다. 이미 그 전부터 집을 오가며 남편 박원명 안수집사와 두 아들과도 친해진 상태. 이 양을 가족으로 받아들여 함께 생활하자는 천 교사의 말에 온 가족이 기꺼이 호응했다. 양녀로 호적에 넣은 건 아니었지만 어떤 부모자식 간보다 살뜰한 추억이 쌓여갔다.

“제가 먼저 아이에게 그랬습니다. 같이 한집에서 지내면서 ‘선생님’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뭐하다. 괜찮다면 엄마, 아빠라고 불렀으면 좋겠는데 너는 어떠니, 라고 물었더니, 수경이가 자기도 엄마, 아빠라고 부르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그날부터 엄마, 아빠라고 부르며 친부모 자식같이 지냈습니다.”

예명도 지어줬다. ‘예쁨이’. ‘예수님이 주신 기쁨’의 약자란다. 선생님을 엄마라고 부르며 안정된 집에서 생활하면서 이 양의 학교생활도 점점 달라졌다. 공부를 잘한 편이었지만 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낼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엄마’가 새로 생긴 다음부터 이 양의 성적은 눈에 띄게 향상됐다. 고교 입학 이후로는 인문계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다른 건 신경 쓰지 않고 공부만 신경 쓰고 싶다”는 이 양의 소원이 이루어진 덕분이다. 엄마 천 교사는 이 양이 다른 데 신경 쓰지 않고 공부만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 낯선 곳에 적응하기 힘들 때마다 늘 ‘힘들지 않느냐’하면서 챙겨주었다. 때로 공부가 힘들고 지칠 때는 ‘잘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아빠’ 박원명 집사의 역할도 컸다. 평소 자상한 성품이었던 박 집사는 이 양과 다정한 대화의 상대가 되어 주었다. 오히려 이 양에겐 아빠가 더 인기가 있을 정도. 늘 아빠와 기도하며 진로상담을 하면서 안정된 학업을 유지했다.

▲ 연극공연 출연자들과 기념촬영한 수경 양 가족. 앞에 줄 오른쪽부터 엄마 천영자 권사, 가운데가 이수경 양, 왼쪽이 아빠 박원명 안수집사.

주일예배는 꼭 드렸던 고3
무엇보다 신앙의 힘을 빼놓을 수 없다. 어릴 적부터 교회에 나갔던 이 양은 엄마의 병 때문에 못나가다가 천 교사의 집에 들어오면서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학교 기숙사에서 돌아오는 주일이면 꼭 교회에 나갔다. 고3 수험생 시절에도 주일날 대예배와 학생예배를 빼먹지 않았다.

천 교사는 “수경이의 신앙생활을 옆에서 지켜보면 신앙이 믿음 안에서 바로 서있고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면서 “늘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정도로 감사한 마음을 자주 표현했다”고 돌아보았다.

명덕고 개교 이래 첫 서울대 합격자가 된 비결에 대해 이 양은 “기본적으로 학교 수업에 충실했고 또 간호사는 환자와의 소통이 중요한 직업이라서 교내 상담 동아리 활동을 하며 자기소개서나 면접에서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애썼다”고 소개했다. 사교육이 힘든 지방의 특성상 학교 수업을 중심으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공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 교사는 “수경이가 기숙사에 목표를 써놓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정말 이런 날이 현실로 다가올지 생각 못했는데 이런 일이 생겨서 너무 감사하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한다고 좋아했다”고 흐뭇해했다.

이 양은 “서울대에 가면 가장 먼저 학교 안에 있다는 간호학박물관에 가서 간호의 역사를 살펴보고 싶다”고 밝혀 아직 어린 나이에 비해 학구열이 뜨거운 당찬 소녀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어린 소녀답게 입시가 끝났으니 극장도 가고 싶고 잠도 푹 자고 싶다고.

간호학과에 들어간 이유
합격이 발표된 다음 주일인 지난 7일 주일날도 ‘세상에 둘도 없는 모녀’는 함께 손을 잡고 교회를 갔다. 이날 교회는 추운 날씨에도 형형색색 웃음꽃이 만발했다. 소식을 들은 교회 선생님들, 친구들 등 모든 교우들은 자기 일처럼 축하하고 기뻐해주었다. ‘엄마’가 되어 이 양을 잘 보살펴준 천 교사에 대해서도 칭찬이 이어졌다.

“사실 저는 별로 한 것이 없어요. 그저 예수님이 하신 걸 보면서 저도 아주 조그만 사랑을 나눈 것뿐인데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칭찬을 받으니 오히려 당황스럽고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앞으로 수경이가 대학을 들어가면 더 큰 세상으로 나가게 되는 데 늘 하나님이 지켜주시길 기도할 뿐입니다.”

이 양이 간호학과를 택한 사연을 들으면 마음이 짠해진다.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아쉬움에서 꿈은 시작됐다. 모녀가 단 둘이 살아가는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딸을 위해 희생했던 어머니. 그 어머니가 병으로 고통 받고 있었지만 정작 딸은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무기력하게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그 상처가 꿈이 되고 소명이 됐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꿈꾼 간호사. 환자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 그 꿈이 드디어 이뤄지고 있다. 고교 1학년 때부터 이 목표를 앞에 놓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낸 이수경 양, 그리스도의 사랑 가운데 새 엄마와 아빠가 되어 잘 보살펴준 천 교사 부부, 그리고 이들을 위해 응원하며 기도해준 교우들과 이웃들이 모두 함께 만들어간 아름다운 이야기다. 하늘에 있는 엄마가 환히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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