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더욱 빛나는 생명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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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2.09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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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의 예술을 향하여 - 시어벨트(Seerveld)의 개혁주의 미학 (30)

▲ 안용준 목사
예술은 구속의 의미를 전달하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예술이 구속의 의미를 담아 삶의 의의를 탐색하고 보람과 좌절, 고뇌와 환의의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진정한 크리스천 예술가는 그저 세속적인 돈벌이나 성공의 수단으로 자신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급변하는 포스트모던의 예술 환경아래 쉬운 일은 아니지만, 종교의 영역을 넘어서 생활체계와 문화의 영역까지도 ‘생명’을 제시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헬라어로 ‘디아스포라’라는 용어가 있다. 바벨론 포로 이후 해외에 살게 된 유대인을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대인들이 소유했던 ‘흩어진 교회’의 의식이다. 한곳에 모여서 예배드리고 성도 간에 교제하는 것이 ‘모인교회’의 사명이라면, 세상의 일터와 예술현장에서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드러내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생명’의 의미를 표현하는 일은 ‘흩어진 교회’인 우리가 감당해야할 사명이 된다.

시어벨트에 따르면, 오늘날과 같은 과학기술의 시대에 예술은 매력적인 우상으로 다가서는  경향이 있다(마 24:22-24). 우리가 꿈꾸는 가치와는 너무 달라 보이는 세속적 가치가 미디어로 포장되어 널리 유통되고 있다. 드라마나 영화, 인터넷 공간에 담긴 재미와 가벼움은 인간의 죄에 대한 성찰과 구원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는 너무 거리가 있어 보인다. 창조에 담긴 하나님의 질서가 어디에 있나 싶어 보인다. 하지만 죄악으로 망가져 “헛되고 헛되며 모든 것이 헛되” 보여도 성경은 끊임없이 생명과 소망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 7:1-2, 요1 4:1, 빌 1:9-11의 말씀과 함께, 예술 작품을 맛보고, 느끼고, 지각할 정도로 즐기고, 기억하고, 해석하고 비교하며 특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 스스로 옳다고 인정되는 미학적 판단(Die ästhetische Urteilskraft)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예술 작품에 내재된 정신성을 검증하는 상상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죄악과 의심과 무의미와 좌절로 살 소망이 없는 존재에게도 새로운 생명과 소망과 비전을 꽃피울 수 있다.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강물처럼 넘치는 특별한 생명과 사랑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어벨트는 이처럼 일반적 예술 개념으로서 전통과 다르게, 온 인류에게 통용될 수 있는 구속적 예술을 전하고자 생명력 있는 개념으로서 예술을 제창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업은 시어벨트에 의하면 죄의 오염으로 인해 긴장되고 깨어진 예술 환경에 대해 바르게 대응하지 못한 사실을 인식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문화적 죽음의 종말에 붙잡힌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처치를 알면서도 성경적 의사소통의 가능성을 타진하지 못한 우리의 죄를 바로 알아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며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통해 죄인인 모든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분이라는 사실을 믿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 고백이 우리의 가슴에 울릴 때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아름다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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